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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를 받아 간 곳은 오랜만의 그 동네였다.
내가 장례지도사로 일했던 곳.
유품정리사로 새로 업을 시작했던 곳.
옛 직장과 새 사업의 장소였고, 내 직업의 모든 ‘추억’은 죽음과 관련돼 있다.
씁쓸한 생각과 함께 초보 유품정리사 시절, 그 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이 떠올랐다.

의뢰는 옛 직장 동료를 통해서 왔다.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참인데 고인의 아들이 ‘유품정리’에 대해 묻더란다.
그래서 얼마 전 독립한 내 생각이 났고 안부도 물을 겸 일감을 건네준 게다.
자기는 시신을 수습할 테니 현장에서 직접 의뢰인을 만나 유품정리 상담도 해보라는 배려였다.
사업 초기라 한가했고 아는 동네라서 흔쾌히 수락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경찰이 많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동료와의 통화에선 서로 안부를 묻느라 어떤 사연을 지닌 현장인지를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했던 터다.
동료를 기다리며 뻘쭘하게 서 있는 동안 고인의 아들로 보이는 이가 눈에 띄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소개를 받고 온 유품정리사입니다.”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지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안녕이라니….
이런 현장에선 적절하지 않은 인사다.
죽음의 현장에선 모든 일상이 뒤틀려 버린다.
평소의 흔한 인사도 낯설게, 날선 말로 벼려져 상대를 후벼판다.

뜨끔한 속내를 들킬까봐 말을 이어간다는 것이 또 너무 단도직입적이었다.
“단순 사고가 아닌가 보죠? 시신 수습하는 곳에 경찰이 이렇게 많이 오진 않던데…”
“아버지께서, 뺑소니를… 택시를 하셨는데, 사람을 치어 죽였다고…. 경찰이 찾아와 보니 집에서 아버지도 사망해 있더라고….”

사고를 낸 곳은 도심 한복판이었다.
수많은 CCTV가 달린 대로에서 뺑소니라니.
하물며 택시기사라면 그런 것들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어떻게 달아날 생각을 했을까….

고인은 60대 남성이었다.
성장한 아들과는 10여 년 전부터 연락을 끊고 살았다.
그래서 의뢰인도 아버지가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몰랐단다.
경찰로부터 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듣고서야 처음으로 부친이 사는 곳, 사는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을 치고 신호등을 들이받았나봐요. 병원에 안 가고 집으로 오신 거 같아요. 잠깐 들어가봤는데 피도 많고….”

이지우 디자이너
택시기사가 뺑소니 사고를 내고 도주한 것이다.
하지만 경찰은 금방 차량을 확인할 수 있었을 터다. 피의자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주소지로 찾아와 보니 범인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현장의 복잡한 사연을 대충 윤곽 잡는 사이에 장례식장 옛 동료가 늦게 도착했다.
단순 돌연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시신 수습이 복잡했다.
장례식장으로 바로 가는 게 안 맞을 것 같았다.

안면이 있던 경찰에게 물어봤다.
“이 사건은 부검해야 돼. 사망자가 안전벨트도 안 맸나 봐. 아마 복강내출혈인 거 같은데. 이마도 찢어져서 피가 엄청 났고….”

부검실로 가거나 장례식장으로 가거나 남은 일은 같았다.
나는 유품을 정리해야 한다.
경찰의 지시와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갔다.

고인은 일반 주택의 반지하 전세로 살았다.
방은 10평 남짓한 공간.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곰팡이, 쓰레기, 홀아비 냄새가 진동했다.

(계속)


베개를 피로 시뻘겋게 적신 현장.

“이래서 도망갔구먼”

단순 뺑소니 사건이 아니었다. 경찰이 전한 믿을 수 없는 이야기.
그날 택시 기사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10여 년 만에 아버지를 마주한 아들은, 왜 그 죽음에 왜 슬퍼하지 않았을까.
사건의 전말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2647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부모 죽음 값으로 여행 다녔다…집 경매 넘어간 84년생 최후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31928

“내 삶 찾고싶다” 이혼 1년뒤, 전남편 울린 그녀의 약봉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9207

“사람 죽은 집, 못 좀 빼줘요” 미신 씐 집주인의 섬뜩한 의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44430

“20대 내 딸이 늙은 남자랑 왜?”…그놈만 살았다, 엄마의 절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16109

“나쁜 새끼” 아내는 오열했다, 11층 아파트의 ‘피칠갑 거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709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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