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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찾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노후 주택가에서 붕괴한 옹벽이 복구되지 않은 채 방수포에 덮여있다. 최현수 기자

“비 오면 위험하지. 근데 동네가 오래돼서 어쩌겠어. 당장 이사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고. 큰 사고 나야 그제야 고치잖아?”

서울에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며 시간당 40㎜ 가까운 세찬 비가 쏟아진 20일 오전, 서울 강북구 번동의 한 산비탈에 빼곡하게 들어찬 노후 주택들을 바라보며 심아무개(75)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사진 산동네에 집을 짓기 위해 세운 옹벽과 축대들은 노후한 채로 윗부분에 금이 가 있거나 가운데 부분이 부풀어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16일 오후 5시13분께 이 동네에선 빌라에 맞붙어 있던 옹벽이 무너져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당시에도 ‘비’가 문제였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빗물이 침투하며 토압이 강해져 붕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도시 곳곳에 놓인 ‘위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마철, 저지대와 반지하 등 ‘낮은 곳’뿐 아니라 축대나 옹벽을 쌓고 집을 세운 산비탈 주택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경고가 나온다. 축대가 무너지며 건물이 함께 내려앉거나 옹벽이 붕괴해 건물을 덮치는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 탓이다. 전문가들은 장마철에 한층 취약해지는 노후 옹벽 문제에 지방자치단체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금이 간 노후 옹벽은 장마에 크게 취약하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옹벽이 노후화되면 (벽 안에 자리 잡은) 배수관로가 부식돼 좁아지거나 이물질이 끼는 등 배수 기능이 전반적으로 약화된다”라며 “배수가 잘되지 않으면 옹벽 뒤쪽에 물이 고여 압력이 점점 높아지고, 이를 견디지 못해 무너진다. 비가 오면 지반이 약해져 옹벽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무너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옹벽이 무너졌던 번동 주택가에서도 주민들은 잦은 붕괴 사고를 전하며 불안을 토로했다. 한 주민은 “벽이 무너지는 일은 종종 겪는다. 얼마 전 건너편 벽도 무너졌다”고 전했다. 번동 주택가와 비슷하게 산비탈에 노후주택이 자리 잡은 서울 성북구 삼선동의 한 동네에서 만난 주민 장아무개씨(54)는 “사람이 지나가다 벽이 무너지면 죽는 거다. 장마철이 됐으니 한 번은 꼭 무너질 것 같은데 조처가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 7월 삼선동의 한 노후 주택가에선 호우로 옹벽이 무너져 도시가스관이 파손돼 주민들이 대피하는 일이 벌어졌고, 2022년 태풍 ‘힌남노’ 당시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단독주택 옹벽이 붕괴해 주민 5명이 대피했다.

20일 찾은 서울 강북구 번동의 재개발 예정인 한 노후주택 밀집 지역의 옹벽 중앙과 근처에 금이 가 있다. 최현수 기자

문제는 부실한 옹벽과 축대가 대개 ‘사유물’이라 지방자치단체의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구청들은 위험이 발견되면 소유주에게 통보하고 설득하는 정도의 조처만 취한다고 했다. 강북구청 관계자는 “(신고) 전과가 있다든지 현장 점검을 했을 때 문제가 있으면 소유자에게 수리하라고 통보하고, 개선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한다”고 했다.

노후한 옹벽이 많은 산동네가 대개 재개발 예정지라 소유자들이 관리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 이날 찾은 번동의 노후주택 단지도 재개발이 예정된 지역이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조만간 재개발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소유주들이 문제가 있어도 보수를 잘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안전은 더 보장되지 않는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장마철 시설 관리 전반을 ‘시민 안전’의 관점에서 접근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지자체는 소유관계를 넘어 주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며 “옹벽 등 내부에 빗물이 흘러내리는 관은 제대로 되어 있는지 등을 지자체가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송규 협회장도 “균열이 점점 더 커지고 물이 나오거나, 이상한 소리가 나는 붕괴의 전조현상이 나타나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특히 소유주들의 안전 관리가 소홀한 재개발이나 재건축 예정지는 특별히 안전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령 제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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