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철강기업 유에스(US)스틸 로고. AP 연합뉴스
일본제철이 미국 철강기업 유에스(US)스틸의 100% 지분 인수 계약을 최종 마무리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밀고 당기기를 하는 과정에 상당한 규모의 ‘양보'를 내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19일 “일본제철이 하루 전 유에스스틸에 대한 인수절차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며 “일본제철이 이 회사의 보통주 100%를 취득해 완전자회사로 편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2023년 말, 두 기업 간에 인수 계약을 맺고도 미국 정치권과 철강 노동계 반발에 부딪혀 천신만고 끝에 1년 6개월만에 최종 계약을 확정했다.
일본제철은 이번 거래를 통해 철강 생산량을 세계 4위 수준에서 2위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제철의 연간 철강 생산량은 4400만여톤으로 바오스틸(중국·1억3천만톤), 아르셀로미탈(룩셈부르크·6500만톤), 안스틸(중국·6000만톤) 뒤를 잇고 있다. 유에스스틸은 100만톤 수준으로 29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향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유에스스틸 생산량을 5800만톤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두 회사를 더하면 세계 2위 철강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 일본제철은 앞으로 5년 정도면 두 회사의 합병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제철은 이번 계획이 미국 내 제조업 부활과 고용확대, 무역적자 축소 등 트럼프 정부 대통령이 내세웠던 목표와도 부합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일본 선진기술을 이전해 하향세를 걷고 미국 철강 산업을 부활시키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한 전략도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식 ‘끝장 거래’ 과정에 막대한 부담을 감수해야하게 됐다. 일본제철은 이번 계약의 열쇠를 쥔 트럼프 정부에 미국 국가안보에 위험이 없다는 점을 설득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와 국가안전보장협정(NAS)를 맺었다.
일본제철이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협정에 따라 미국 정부는 유에스스틸의 황금주 1주를 무상으로 받게 됐다. 황금주는 단 한 주만으로도 회사가 결정한 내용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주식이다. 의결권이 없지만, 회사의 핵심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일본제철은 2028년까지 미국 현지 투자 110억달러(15조원)와 이후 추가 투자도 약속했다. 이어 유에스스틸의 본사 소재를 현재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유지하고, 이사회 구성원 과반을 미국 국적자로 유지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경영 핵심 멤버들도 미국인으로 하기로 했다. 유에스스틸 회장은 일본제철 모리 다카히로 현 부회장이 겸임하기로 했다. 미국 시장에서 필요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공장에서 철강 생산 및 공급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고, 미국 정부가 취하는 통상 조처에 대해서도 일체의 방해나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 정부에 건넨 황금주에도 엄격한 권리가 보장됐다. 우선 황금주에는 미국 정부가 유에스스틸의 독립이사 1명 선임권을 주도록 했다. 또 일본제철이 미국 정부와 맺은 국가안보협정에서 약속한 설비에 대한 투자 감축이나 유에스스틸 회사명 또는 본사 소재지 변경, 생산 고용의 미국 밖 이전, 미국 내 경쟁 사업의 인수, 미국 내 제조 시설 폐쇄·중단·노동 등에 관해 미국 대통령 또는 지명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까다로운 내용도 담겼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미국 “미국 정부가 경영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만큼 일본제철이 경영의 자율성을 확보하면서 거액의 투자에 걸맞은 수익을 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한겨레
홍석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