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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 대선 모두 실시간 대응
기업 전략의 나침반 역할
'정치 리스크' 규제 해석, 대응까지
법무법인 태평양이 지난 2월 '관세청의 관세조사, 외환검사, 범칙조사 동향과 대응방안'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태평양

지난 6월 4일 새벽. 대선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기업 대관팀의 메일함에 가장 먼저 도착한 파일이 있다. 국내 주요 로펌이 대선 이후 영향을 분석한 정책 영향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는 이재명 정부에서 예상되는 주요 정책 변화와 규제 흐름, 산업별 영향과 기업 시사점까지 담겨 있었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 결과 발표 직후에도 로펌들은 어느 집단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동원하고 워싱턴 로비 기업과 협업하며 기업을 위한 해설서를 작성해서 뿌렸다.
민간 싱크탱크 사라진 한국, 로펌이 채웠다
국내외에서 정치가 경제를 흔드는 핵심 변수가 된 이후 대형 로펌들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소송과 자문을 넘어 국내외 정치 이벤트 직후마다 기업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민간 싱크탱크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변호사뿐만 아니라 고위 정책당국자와 관료 출신, 교수, 연구원 등 전문가 집단이 머리를 맞대고 쓴 보고서는 고객사뿐만 아니라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된다.

민간 싱크탱크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한국에서 로펌은 규제 해석, 입법 대응, 기업 전략 수립까지 실질적 정책 지원을 수행하는 거의 유일한 외부 자원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기업들이 정책 리스크에 즉각 반응해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법적 해석과 대응 전략을 동시에 줄 수 있는 로펌의 입지가 커진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 기업의 길라잡이 역할을 했던 건 기업이 운영하는 민간 싱크탱크였다. 삼성, LG, 대우, 현대 등 대기업 소속 싱크탱크가 경제 전망과 산업 동향을 분석했고 이들이 낸 보고서는 경제 관료들에게 상당한 반향을 얻었다. 막강한 인력풀과 자금력을 등에 업고 국책 연구기관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특히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는 전망은 모든 기업의 바이블이었다. 대부분의 기업이 삼성경제연구소가 내는 전망 자료를 펴놓고 1년 치 사업 전략을 짰다. 하지만 기업에 기계적 중립성을 요구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로 인해 여러 잡음이 생기자 기업들은 자사 싱크탱크 역할을 내부 전략 수립용으로 전환했다.

현재 한국에서 국책연구기관이나 행정조직 산하 연구원만 국가의 브레인 기능을 한다. 하지만 공공연구기관이 기업의 현실을 파악하고 긴밀하게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다지만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는 의견을 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로펌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홍정석 법무법인 화우 GRC센터장은 “기업의 조직은 기획, 전략, 재무, 법무 등으로 세분화돼 있지만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정책 환경에 입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업은 손에 꼽힌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로비가 합법화되지 않아 기업이 정부나 국회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홍 센터장은 “로펌이 법과 정책의 경계를 해석하고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 역시 기업의 감정적 민원보다 분석과 근거를 갖춘 요청을 기대한다”고 했다.
‘폴리코노미’ 최전선에 있는 로펌

싱크탱크 기능을 가장 먼저 갖춘 로펌은 광장이다. 광장은 2017년 내부에 ‘국제통상연구원’을 설립했다. 국제무역, 해외투자, 글로벌 규범 및 정책 변화에 특화된 리서치 조직으로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이 초대 원장을 맡았다. 통상 전문 로펌으로서의 전략적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은 통상 실무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고문들이 포진했다. 글로벌 네트워크 한·미 FTA 교섭 대표, 세계무역기구(WTO)가 위치한 제네바 대사, 산업부·외교부 차관, 국무조정실장, 대통령실 통상비서관 등을 역임한 5명의 고문이 국제통상그룹을 전담한다.

광장은 2024년 미국 대선 당시에도 민첩하게 움직였다. 개표가 마무리되기도 전 도널드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실시간 분석해 결과 직후 대응 리포트를 배포했다. 이 과정에서 워싱턴·브뤼셀·제네바에 구축한 광장의 국제통상 네트워크가 핵심 역할을 했다.

태평양은 새 정부 출범 전부터 정책 분석 대응 체계를 가동했다. 내부에 조직된 ‘새 정부 정책 TF’는 대선 전부터 각 정당의 공약을 분석해 국내외 고객에게 전달했으며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인 6월 4일에는 예상 정책 방향을 다룬 리포트를 발간했다.

태평양은 입법부와 행정부를 동시에 장악한 이재명 정부가 전례 없는 정책 추진력을 확보한 만큼 기업들은 단순한 정권교체 자체보다 ‘구체적인 정책 방향’과 ‘변화의 속도’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리더십 변화가 산업에 미칠 영향과 노동시장, 통상 관계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말부터 비상계엄, 탄핵 선고 등 정국이 불안정한 가운데 현안에 대한 분석·요약 리포트를 영문으로도 제공해 외국인 임원이나 글로벌 기업에도 정책 정보를 전달했다. 로펌의 리포트는 단순 번역 수준을 넘어 해외 본사의 의사결정 라인까지 고려한 구성으로 높은 활용도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율촌은 전문가 6명이 전담하는 리서치팀을 상시 운영하고 있다. 특히 타이밍과 실무 적응력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미국 대선과 한국 총선뿐 아니라 이번 대선 역시 TF를 꾸려 정치가 국내 산업 구조와 규제 환경에 미칠 영향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특히 통상, 기업환경, 금융, 반도체·AI, 헬스케어, 부동산, 방위산업, 에너지, 법조개혁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파급효과를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각 분야 기업과 이해관계자가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전략적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율촌 관계자는 “컨설팅사나 회계법인의 분석이 시장·재무 중심이라면 로펌 리포트는 법적 리스크와 실제 분쟁 가능성에 대한 실전적 해법을 제공한다”며 “기업의 의사결정과 리스크 관리를 지원하는 데 로펌의 역할은 점점 더 전략적 가치로 확장되고 있다”고 밝혔다.

세종은 ‘입법전략자문팀’을 핵심 조직으로 운영하며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2024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세종이 발간한 뉴스레터만 480건, 개최한 정책 세미나는 100여 차례에 이른다.

특히 2025년 조기 대선 직후에는 가장 빠르게 리포트를 낸 로펌으로 주목받았다. 선거 다음 날부터 대통령 임기가 시작되는 초유의 상황에서 세종은 선거 결과 발표와 동시에 공약 해설과 산업별 시사점을 담은 분석 자료를 배포했다.

이는 총 100여 명 규모의 TF가 한 달 전부터 가동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 관계자는 “‘정치는 생물’처럼 역동적인 정치 상황이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만큼 복합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법률을 넘어 정책과 산업 통찰이 결합한 자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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