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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 인지도를 겸비하며 한국 중식계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은 정지선 셰프. 본업인 셰프로서 ‘티엔미미’ 1·2호점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방송 출연에 한 달에도 수차례 국내외 출장을 오가며 누구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인물로 업계에서 알려져 있다. 비결은 끊임없는 노력. 지금도 잠들기 전까지 해외 사이트를 둘러보며 중식 트렌드를 공부할 정도다. 메뉴 개발이든 사업이든, 무엇이든 제대로 해내고 싶다는 그의 원칙 때문이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티엔미미 2호점에서 진행한 레드리본 위크에서 자신만의 메뉴를 선보인 정지선 셰프. 사진 한국코카-콜라

브랜드 협업에서도 그의 세심함은 빛을 발한다. 최근 코카-콜라(이하 콜라)가 블루리본서베이와 함께 특별한 미식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기획한 ‘레드리본 위크’에서도 그 진가가 드러났다. 지난 12일, 홍대 티엔미미 2호점에서 열린 레드리본 위크 행사에서 그는 콜라를 활용한 다채로운 메뉴를 선보였다. 단순히 콜라와 잘 어울리는 요리를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콜라에 닭고기를 재우고 소스를 만들며, 번(빵)에는 콜라 로고를 새겨 넣는 등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눈과 입을 모두 사로잡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쉴 틈이 없어 보여요. 무리는 되지 않나요?

“전혀요.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서 ‘답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웃음). 몸 좀 쓴다고 죽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바쁘게 움직여야 더 많이 보고, 듣고, 배울 수 있어요. 그런 경험이 요리뿐 아니라 사업에도 큰 도움이 돼요.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 간접 경험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Q : 레드리본 위크 행사에서 선보인 메뉴가 의외였어요. 티엔미미의 시그니처 메뉴가 나올 줄 알았거든요.

“대표 메뉴를 그대로 내놓는 건 쉬운 선택이죠. 하지만 협업은 늘 새롭게 배우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직원들과 함께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보자’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예를 들어, 콜라 제로를 활용해 만든 파나코타 푸딩이나 떡, 그리고 콜라에 24시간 재운 닭다릿살로 만든 BBQ 같은 메뉴요. 닭을 콜라에 재우니까 잡내도 줄고, 식감도 훨씬 부드러워지더라고요. 또 대만 길거리 음식인 꾸아빠우에서 착안해, 이베리코 갈빗살에 땅콩버터와 콜라를 더해 재해석한 메뉴도 선보였고요. 번에는 오징어 먹물로 로고를 새겨 넣어서 정체성도 표현했어요.”


Q : 방송에서는 ‘무서운 사장님’ 이미지인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소통을 많이 하려고 해요. 오늘처럼 협업 메뉴도 다 같이 모여 얘기하면서 구상해요. 직원들에게 자신이 먹어본 것, 본 것들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낼 기회를 주죠. 예를 들어 번에 고기를 넣기로 했다면 ‘무엇을 더하면 좋을까?’를 함께 고민해요. 생강채나 홀그레인 머스터드처럼 다양한 아이디어가 오가고, 그 과정을 통해 메뉴가 완성돼요. 그런 시간이 재미있어요. 보상도 확실히 해요. 영업 끝나고 회의를 하더라도, 단 몇 분이라도 그 시간에 대해 보상을 하죠. 해외 출장은 물론이고요. 예전엔 일 자체가 보상이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잖아요. 남편과 저는 ‘직원에게 아낌없이 퍼주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물론 원칙도 있어요. 매달 평가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하고요. 또 최소 한 달, 길게는 석 달 치 계획을 공유해요.”

레드리본 위크 당시 선보인 메뉴, 왼쪽부터 스페셜 디시인 '코카콜라 제로 판나코타 푸딩&떡', 마라크림 새우딤섬. 사진 한국코카-콜라


Q : 여성 중식 셰프가 지금도 드문데, 처음 중식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대학교에서 호텔조리를 전공했는데, 2학년 때 일식, 중식, 한식, 양식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어요. 그때 중식을 지원한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왜 안 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겨서 시작하게 됐죠.
처음엔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일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사실 고등학교 졸업 후 뷔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셰프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었거든요. 오히려 현실적으로 봤죠. 재미있어서 더 배우고 싶었는데 가르쳐주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중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Q : 중국 유학생활은 어땠어요.

“진짜 힘들었어요. ‘사람 사는 곳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는데 막상 가보니 말도 안 통하고, 날씨도 춥고, 따뜻한 물도 잘 안 나오고, 화장실에 문도 없고요. 처음 3개월은 거의 울면서 보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유학에 모은 돈을 다 쓴 상태라 돌아올 수도 없었죠. 내가 좋아서 온 길이니까 어떻게든 버텨야 했어요.”


Q : 그 시간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뭔가요?

“‘안 되는 건 없다’ ‘뭐든 할 수 있다’는 거요. 중국어도 하나도 못했지만 결국 익혔고 중식도 배웠잖아요. 과정은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이니까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 한국에 돌아온 뒤 상황은 어땠나요?

“여자라는 이유로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추천이 없으면 취업도 어렵고요. 어렵게 들어간 곳에서는 ‘얘는 안 돼’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더 열심히 했어요. 남들보다 빨리 움직이고, 20kg 반죽도 혼자서 기계에 넣고 면을 뽑았죠. 그런데도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 ‘결혼하면 끝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가 많았고 무시도 많이 당했어요.”


Q : 셰프님의 메뉴는 SNS에서 자주 회자되던데, 비결이 있을까요

“매장을 운영하려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예를 들어 티엔미미를 오픈하고 나서, 어향가지처럼 흔한 요리를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죠. 그래서 가지를 스프링 모양으로 잘라 통째로 튀겨서 비주얼에 변화를 줬더니 반응이 좋았어요. 요즘은 맛은 기본이고, 비주얼이 중요하잖아요. 찹쌀공처럼 한국에선 생소한 메뉴를 보면 인플루언서들이 먼저 찾아와요. SNS에 올리면 조회수가 잘 나온다고 고맙다는 말도 듣고요. 어떤 곳은 마케팅에 수백만 원을 쓰기도 하는데, 저는 비주얼을 잘 살리면 그 자체가 마케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 ‘흑백요리사’ 방송 출연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흑백요리사애서 중국 디저트 빠스를 만들어고 있는 정지선 셰프. 사진 넷플릭스
“방송 전에는 저를 그냥 주말 예능에 나오는 사람 정도로 보는 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방송 이후에는 ‘셰프’로 봐주는 분들이 많아졌죠(웃음). 또 예전엔 ‘중식’ 하면 짜장면이나 탕수육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빠스 같은 메뉴를 소개하면서 ‘중식이 이렇게 다양하구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다른 셰프들이 사용하는 식재료나 조리 도구를 보면서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Q : 앞으로 소개하고 싶은 중국 요리가 있다면요.

“요즘은 담백한 요리를 소개하고 싶어요. 전 세계적으로 마라가 워낙 강세잖아요. 하지만 중식은 워낙 다양한 만큼, 원재료의 맛이 살아있는 담백한 메뉴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Q : 지금, 셰프님의 꿈은 뭘까요.

“저는 매년 꿈이 조금씩 달라지는 편이에요. 직원 면접을 보다 보면 ‘셰프님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막상 한 달도 못 버티는 경우도 많고요. 학생들 가르칠 때도 ‘꿈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좀 안타까워요. 그래서 저는 젊을 때는 무조건 경험하고, 부딪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즘 제 꿈은 중식을 세계에 알리는 거예요. 최근에는 한국 셰프들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걸 자주 보게 되잖아요. 저도 중식 셰프로서 해외에 매장을 열고 싶고, 그 시작은 대만이 될 것 같아요. 고량주 출시나 맥주 광고 촬영 때문에 한 달에 서너 번은 대만에 가는데, 자주 오가다 보니 현지 매장 운영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은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에요.”

송정 기자 [email protecte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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