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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의사 사익 추구 견제 못 하는 현실"···시골 응급실 의사 된 의료원장의 비판

랭크뉴스 | 2025.06.19 08:06:05 |
25년간 공공의료 헌신·15년간 공공병원 경영
조승연 전 인천의료원장, 영월서 응급의 근무
"응급실 뺑뺑이, 진료과목 간 높은 칸막이 탓"
"시장주의 의료체계, 공공 의사 양성 불가피"
조승연 전 인천의료원장은 지난해 말 임기를 마친 뒤 영월의료원 응급실에서 응급의로 일하고 있다. 5월 초 황금연휴 때는 도내 많은 의료기관이 문을 닫아 하루 60명씩 환자를 진료했다고 한다. 지난달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만난 조 전 인천의료원장이 직접 경험한 지역의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월=김표향 기자


25년을 공공의료에 헌신한 ‘공공의료 산증인’ 조승연 전 인천의료원장이 강원 영월의 응급실 의사로 변신했다. 지난해 12월 인천의료원장 임기를 마친 뒤 올해 4월부터 영월의료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조 전 원장은 지난달 한국일보 기자를 만나 “응급실 의사 구하기가 어렵다고 해 찾아왔다”며 “의료체계 문제를 직접 현장에서 돌파해 보자는 뜻도 있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이재명 대통령 공공의료 공약 설계에도 참여했던 그는 “의료개혁은 정권과 무관한 국가적 과제”라며 “새 정부가 새롭게 보완·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달 9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 응급실에서 조승연 전 인천의료원장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확인하고 있다. 영월=김표향 기자


-환자 곁으로 돌아온 소감은.


“원장으로 일할 때도 가끔 진료를 했지만(그는 지난해 의정갈등으로 응급실 뺑뺑이를 돌던 충수염 환자를 직접 수술해 목숨을 구했다), 현장으로 완전히 복귀한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역시 의사는 환자를 진료할 때 가장 행복하다.”

-왜 응급실을 택했나.


“평소 응급의료체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고 직접 부딪혀 보고 싶었다. 실제로 겪어 보니 상황이 심각하다. 얼마 전 차로 2시간 거리 지역에서 소아 복통 환자가 119로 이송돼 왔다. 도내 병원들이 전부 환자를 못 받겠다고 했다더라. 진찰해 보니 단순 배탈이었다. 다들 환자를 보지도 않고 거부했던 거다.
무턱대고 환자 수용했다가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들 하던데, 책임을 지라고 의사한테 의료 독점권을 주는 것 아닌가
. 응급실에 허락받고 가는 게 정상은 아니다.”

-응급실 뺑뺑이 원인은.


“올 초 외국인 임신부가 구급차 안에서 출산한 일이 있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지만, 산부인과 의사가 없다며 문전박대당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이면 응급 분만 정도는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응급구조사도 받아낸 아기를 의사가 왜 못 받나. 특정 과목 의사가 없어서 환자를 수용 못 한다는 논리라면 과목별 전문의 20여 명이 24시간 응급실을 뒷받침해 줘야 한다는 얘기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니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한다.”

-응급의료체계 문제는.


인력이 부족해 응급실이 무너진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 의료가 지나치게 분절화, 세분화된 게 문제다. 각 전문 분야는 고도로 발전했으나 포괄적, 종합적으로 질병을 보는 능력은 떨어지고 의료현장이 파편화되고 있다. 협력보다 전문성, 환자 회복보다 의료진 위험 회피를 우선시하는 구조 속에 응급의학과는 다른 과의 비협조를 원망하고, 최종 진료과는 응급실 환자를 남의 일로 여긴다. 이런 칸막이를 없애야 협업이 가능해진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응급실은 필수의료 중의 필수의료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환자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중요 기능에 문제가 생긴다.
병원 전체가 응급환자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 외상센터 모델을 참고할 만하다. 외상센터는 외과,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이 팀을 이뤄 환자를 진료하도록 규정돼 있다. 응급실도 응급의학과 위주에서 벗어나 주요 필수과가 상시적으로 함께 대응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예산이 이중으로 들어가는 응급센터와 외상센터를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달 9일 강원 영월군 영월의료원에서 만난 조승연 전 인천의료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에는 공공의료가 빠져 있다"고 지적하며 "새 정부가 지역 간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해 공공의료를 무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월=김표향 기자


-새 정부가 공공의료 강화를 약속했다.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에는 공공의료가 통째로 빠져 있다. 공공의료는 사회 안전망이다. 이재명 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공공의료 필요성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정책과 예산이 뒤따르지 않으니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더는 실수를 반복해선 안 된다.”

-공공병원은 어떻게 육성해야 할까.


“현재 공공병원 병상 수는 국립대병원 포함해 10%에 불과하다. 공공의료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0%)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20%는 돼야 한다. 일본만 해도 300~500병상 규모 적십자병원이 전국 100여 곳에 있다. 한국에서 그 정도 규모 공공병원은 서울의료원과 성남의료원밖에 없다. 지역의료원은 지역책임의료기관으로서 지역의료 시스템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 동시에 진료과목 20개, 전문의 70명, 진료 가능 상병 350종 이상, 병상 500개 수준으로 진료 역량을 갖춰야 한다.
공공의료가 의료의 표준이 돼야 민간병원도 공공적으로 운영하도록 유인할 수 있다.
매년 1조 원만 투입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담뱃세 등을 활용해 안정적인 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지역의료원은 의사가 없다고 난리다.


한국은 시장주의 의료시스템이라 의사들의 사익 추구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결국 의사를 공공적 관점에서 양성하지 않으면 구인난은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적 대안은 공공의대, 지역의사제뿐이다. 공부하고 싶은 학교, 일하고 싶은 공공병원을 만들고, 지역사회에 친밀감을 가진 학생을 선발해야 한다. 순환 근무, 충분한 보상, 신분 안정 등 정책적 지원도 뒤따라야 의사들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다.”

-의사들은 공공의대를 반대한다.


“일본과 대만은 공공의대를 만들어 일정 수준 성공했다. 일본 자치의대는 전국 최고 수준이고 의사 면허시험 1등도 배출한다.
실력 떨어지는 의사가 양산될 것이라는 일부 의료계 주장은 특권의식, 배타주의에 불과
하다. 공공의대 출신 의사들이 강남에서 미용 성형을 할 것도 아닌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

-공공병원은 세금을 낭비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논리라면 소방, 경찰, 군대도 다 없애야 한다. 더구나 공공병원을 무작정 늘리자는 얘기도 아니다. 나날이 심화되는 지역 간 의료 격차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일종의 ‘정규군’이 필요한데, 그게 바로 공공병원이다. 공공병원을 전체 보건의료 시장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무기로 삼자는 거다. 이제는 진정한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조 전 원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소아외과 전문의로, 가천의대 길병원 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1년 인천적십자병원으로 옮긴 이후 줄곧 공공병원에만 몸담았다. 2005~2006년 인천적십자병원장, 2010~2016년과 2018~2024년 인천의료원장을 지냈고, 2016년 성남의료원 신축 당시 초대 원장으로 개원 준비를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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