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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새벽, 이란 테헤란의 한 석유 저장 시설이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직후 불길과 연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UPI연합뉴스

테헤란 거리는 텅 비었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통신은 간헐적으로 끊기고, 대피소는 없다. 시민들은 밤마다 지하철역 바닥에 웅크려 공습의 굉음 속에 불안한 밤을 보낸다.

이란 수도 테헤란이 핵시설 제거를 목표로 하는 이스라엘 공습이 시작된 지 일주일째를 맞았다. 이스라엘은 이미 이란 방공망 상당 부분을 무력화했다며,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테헤란 상공을 자유롭게 날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천만 인구가 사는 이곳을 향해 “즉시 테헤란을 떠나라”고 경고했지만, 피난에 나설 여력이 없는 노인이나 어린이, 아픈 사람들은 꼼짝없이 테헤란에 발이 묶였다.

“떠날 방법도 없다”…테헤란에 발 묶인 사람들

이란 인권단체에 따르면 이번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지금까지 최소 585명이 사망하고, 13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이란국영방송은 폭격을 맞아 불탔고, 이란 당국은 공포를 조장하는 여론을 만든다며 언론을 통제하고 있어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힘들다. 국제 전화도, 인터넷 연결도 끊기기 일쑤다.

18일 에이피(AP)통신·뉴욕타임스 등은 절망에 빠진 테헤란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이란 정부의 엄격한 언론 통제 탓에 익명을 요구하거나 가명으로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테헤란 남쪽에 사는 시린(49)은 “친구나 가족에게 보내는 전화, 문자 하나하나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일 살아 있을지조차 알 수 없다”고 에이피통신에 털어놨다. 시린의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병을, 어머니는 관절염을 앓고 있어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래도 혹시나 탈출이 가능할까 싶어, 약과 연료를 구하려 애썼지만 헛수고였다. 주유소에서 새벽 3시까지 줄을 섰지만 연료가 떨어졌다고 했다.

미국에 있는 한 이란계 인권연구자는 “이번주 초, 가족들이 테헤란을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교통 정체와 연료 부족 탓에 가족들이 결국 탈출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측만 하고 있다. 그는 “함께 자란 사촌들이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겠다. 죽으면 죽는 거다’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아르시아(22)는 “20시간, 30시간, 40시간을 차를 타고 가봤자 또 폭격을 받을지도 모른다”며 집에 남았다. 그는 “대부분 가게엔 물과 식용유가 동났고 문을 닫았다”며 “지금은 떠날래야 떠날 자원도, 방법도 없다”고 말했다.

경보조차 울리지 않아…대피소 없는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13일 첫 이스라엘 선제 공격 때부터 민간인을 위한 공습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걸 직감한 순간이었다.

16일 테헤란에서 탈출했다는 한 여성(29)은 “나라가 대피소를 짓지 않은 것은 과거로부터 배우지 못한 실패”라고 지적했다. 그의 남자친구는 장을 보러 가는 길에 폭격에 휘말려 숨졌다.

1980~1988년 치렀던 이란-이라크 전쟁 때까지 테헤란은 저층 주택이 많았고, 집마다 지하실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대피 시설도 있었고 나라에서 공습 대비 훈련도 했다. 하지만 이젠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며, 지금 대피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은 지하철역과 80년대 전쟁 때 썼던 오래된 터널 정도다.

정부는 모스크, 지하철역과 학교를 임시 대피소로 개방했지만, 일부는 문을 닫았으며 나머지는 과밀 상태다. 공습이 시작됐던 13일 밤, 테헤란의 한 전철역엔 수백명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 망명해 이란으로 와 살고 있다고 밝힌 한 학생은 “가족들과 함께 12시간을 전철역에서 버텼다. 역을 나오고 나서야 테헤란에서 대피하라고 이스라엘이 밝혔단 걸 알게 됐다”며 “이민자들은 더더욱 이런 상황에서 갈 곳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무력한 정부의 모습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가디언은 지난 15일 “정부가 대피하라는 모스크, 학교, 지하철역이 안전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나. 만약 땅에 파묻힌다면 어떻게 되겠나”는 한 시민의 발언을 전하기도 했다.

이란 당국은 이스라엘의 첫 공습 때 이란의 방공 체계가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공습 직후인 13일 오전 국영 방송에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관료들의 말이 반복됐고, 이후부터는 보복을 다짐하는 보도 위주로 방송되고 있다고 비비시는 보도했다. 한 시민은 “과거 이라크와의 전쟁 땐 적어도 공습 경보는 울렸었다”고 현 정부를 비판했다.

이란인들, 정부엔 냉소

이번 충돌은 수십년간의 국제 사회 제재로 이란의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벌어졌다.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해 이란의 석유 수출길을 차단해, 경제에 어려움이 가중됐다. 이란 정부가 미국과 핵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에 대해 이란 내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보수적인 현 정권에 저항하며 이번 기회에 정권이 교체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신정 체제를 옹호하며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을 다짐하는 사람도 있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한 현 정권에는 반대하지만, 외국의 폭격으로 나라가 파괴되는 것은 원치 않는 이들도 있다. 시린은 “현 체재를 반대하지만, 외국의 개입이 아니라 이란 국민 스스로의 정권 교체였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 체포된 뒤 의문사하자, 많은 이란 국민들이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에 나섰었다.

장인이 테헤란에 발이 묶였다는 한 이란 남성은 18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부나 군 지도자들의 죽음은 동정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지만, “정보 부족, 연료 부족으로 미처 대피하지 못한 민간인의 안전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은 대피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이란은 수십년간 제재로 (경제가 어려워) 이젠 차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고도 덧붙였다.

17일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한 여성이 전화로 이란에 있는 친척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카르발라/AFP연합뉴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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