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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령왕릉 '최고의 발견'이자 '졸속 발굴'의 대명사

1971년 가을, 우리 고고학계에서 대사건이라 부를 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백제 무령왕릉이 1,400여 년 만에 거의 원형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겁니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 현장

대부분의 왕릉은 긴 세월 동안 도굴의 피해를 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무령왕릉은 놀랍게도 기적처럼 도굴꾼의 눈길도 피해 갔습니다.

학계를 더욱 흥분시킨 건 또 있습니다. 내부 묘비석에 피장자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 수 있는 정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발굴단의 육성에는 이 흥분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 계묘년 5월 병술사 7일 임진

"저기, 윤 기사! 윤홍로 씨 보고 연대표 가져오라고 해."

"우리나라 무덤에서 아주 확실한 연대 왕을 가진 것은 처음이에요, 그것도 왕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건 이게 처음입니다. 이거 참 기막힌 일이 나왔어요."

"무슨 왕이야, 526년. 백제가 무령왕, 무령왕이야.
연대가, 돌아간 해가 523년.
무령왕, 간추려서 얘기하면 백제 무령왕의 능이다."
(1971년 발굴 현장 음성 녹취-국가유산청 제공)

추가 정밀 조사 없이 현장에서 연대표만 봐도 무덤의 주인공을 찾을 수 있었으니 발굴단 입장에서는 정말로 기막힌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흥분이 지나쳤을까요? 기막힌 일은 그리고 우리나라 발굴 역사상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 곧바로 이어집니다.

도굴 없이 오롯이 남아 있던 왕릉의 발굴이 단 하루 만에 끝나버렸습니다.

꼼꼼한 사진 촬영, 실측 조사 등 발굴 조사의 기본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은 채 유물 수천 점이 일사천리로 수습됐습니다.

▲1971년 ‘무령왕릉’ 발굴 현장

당시 발굴 책임자가 후일 "무령왕릉 발굴은 내 삶의 가장 큰 수치이자 과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고고학계의 최고 발굴이자 최악의 졸속 발굴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입니다.

■ 뼈아픈 실패가 '삼근왕'을 찾아내다

무령왕릉이 발견된 인근에는 왕릉급으로 추정돼 온 고분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다만, 일제 강점기 도굴된 이후 100년 가까이 엉망으로 방치돼 있었던 터라 누구의 무덤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무령왕릉 발굴 50여 년 뒤인 2023년.

국가유산청과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이 고분들을 재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일 중점에 둔 건 내부에서 가져온 흙.

2호 무덤 하나에서 나온 흙만 해도 5리터 분량의 자루 기준으로 200개 이상이나 됐습니다.

무령왕릉 발굴 실패를 염두에 둔 듯 연구원들은 이 흙들을 구멍이 촘촘한 채반에 놓고 거르고 또 걸러냈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4개월여. 마침내 어금니 2점을 찾아냈습니다.

어금니 하나의 높이는 겨우 0.5cm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왕릉원 2호분 출토 어금니

법의학 전문가는 "오른쪽 위턱에 있었던 치아들"이라며 "치아의 형태 등을 볼 때 20대가 되기 전 10대 연령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소 측은 웅진 도읍기 시절 왕위 계승과 가계도, 어금니를 통해 추정한 연령대 등을 고려해 2호 무덤의 주인을 백제 23대 왕인 '삼근왕(477~479)'으로 추정했습니다.

삼근왕은 무령왕과는 사촌지간으로 13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권력 다툼의 와중에 즉위 2년 만에 승하한 비운의 소년 왕입니다.

일부 기록으로만 전해졌던 삼근왕의 실체가 어금니 2점을 통해 1,500여 년 만에 밝혀진 겁니다.

연구소는 또 "2호 무덤의 주인이 삼근왕으로 추정되는 만큼 다른 무덤들은 개로왕의 직계인 문주왕을 비롯해 혈연관계에 있는 왕족들로 추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무령왕릉 발굴의 뼈아픈 실패를 교훈 삼아 삼근왕의 무덤이 확인된 셈인데, 이로써 우리 백제사의 빈칸을 채우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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