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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사진=연합뉴스

“국민이 주식투자를 통해 중간 배당도 받고 생활비도 벌 수 있게, 부동산에 버금가는 대체 투자 수단으로 만들면 기업의 자본조달도 쉬울 것이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선순환될 것이다. 그 핵심축에 증권시장이 있다.”

코스피가 2900대에 안착한 6월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를 방문해 가진 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이 독점해온 한국 투자자산 피라미드의 정점에 주식도 함께 설 수 있도록 시장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올해 초부터 줄기차게 ‘코스피의 시간’을 강조해 온 윤지호 경제평론가(전 LS증권 리서치센터장)는 “이재명 정부의 정책은 표면은 진보지만 내용은 놀라울 만큼 자유주의적”이라며 “자산 가격 상승을 통해 소비를 견인하는 금융자본주의의 구조를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과 다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미국인의 포트폴리오43.5%. JP모간이 추정한 2024년 4분기 기준 미국 가계가 전체 금융자산 중 주식에 투자한 비중이다.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 중산층 은퇴자의 상당수는 배당금으로 생활비를 조달한다. 직장인이 가입한 은퇴자금용 계좌인 401(k)의 잔고는 ‘소득’ 이상의 역할을 한다. 어느 날 주식 포트폴리오의 평가액이 10만 달러였다가 다음 날 9만8000달러로 줄어들면 소비를 줄이고 다시 10만2000달러로 오르면 고액 지출을 계획한다. 금융자산의 등락이 소비심리를 실시간으로 흔드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자들은 ‘웰스 이펙트(Wealth Effect)’, 즉 부의 효과라고 부른다. 자산 가치 상승 → 심리적 부유감 확대 → 소비 지출 증가 →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다. 실물소득은 그대로인데 자산이 오르면 ‘돈을 더 쓸 수 있다’는 심리가 작동하는 것을 뜻한다.

경제 효과도 입증됐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2019년 펴낸 ‘주식시장 부와 실물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주식시장 부가 1달러 증가할 때마다 소비 지출이 연간 2.8센트씩 늘어난다. 미국 증시가 활황이었던 지난해 무디스애널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식시장 상승에 따른 웰스 이펙트로 인해 지난해 미국의 소비 증가율이 1%포인트 높아졌고 국내총생산(GDP)은 약 0.5%포인트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재명式 부의 효과이재명 대통령의 지난 11일 발언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그는 자본시장 활성화 선언을 넘어 주식을 ‘생활 기반’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주식투자로 생활비를 벌고 배당이 국민소득이 되는 사회. 자산 불균형을 해소하고 한국 사회의 투자문화 자체를 바꾸려는 제도적 체질개선 실험이기도 하다. 이른바 ‘한국형 웰스 이펙트 실험’의 시작이다.

이는 과거 한국 정부들이 물가안정, 부동산 규제, 소득주도 성장 등 실물경제 중심의 전략에 방점을 찍어온 것과는 명확히 결을 달리하는 접근이다. 특히 배당 활성화와 자본시장 신뢰 회복은 이 구상의 핵심축이다. 이 대통령은 “다른 나라는 우량주를 사서 중간 배당을 받아 생활비도 하고 내수에도 도움이 되고 경제 선순환에 도움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배당을 안 한다”며 “그래서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개편이나 제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무조건 배당소득세를 내리는 것이 능사냐, 이건 잘 모르겠다”며 더불어민주당 이소영 의원이 발의한 소득세법 개정안을 소개했다. 이 법안은 배당성향이 국내 평균(26~27%)보다 높은 35% 이상 상장사로부터의 배당금을 종합소득에서 분리 과세하는 정책이다. 그는 “그런 것을 포함해 정상적으로 배당을 잘하는 경우 조세 재정에도 크게 타격을 주지 않는 정도라면 (세율을) 내려서 많이 배당하는 것이 좋겠다”며 “가능한 방법을 많이 찾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증시의 저평가 해소 정책도 동시에 진행된다. 그는 “주변에다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하라는 말을 차마 못 하겠더라”며 “이제는 다 바꿔서 투자할 만한, 길게 보면 괜찮은 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이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주가조작 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고 부당이득에 과징금을 물려 환수하는 등 불공정거래 행위자를 엄벌할 예정이다.
성장률 0%대의 그림자시장은 반신반의다. 경제성장률 0%대의 저성장 구조에서 이 실험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6월 17일엔 이스라엘-이란의 군사적 충돌에도 3000선 돌파를 시도하는 등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지만, 시장의 낙관론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뼈아픈 근거는 경제성장률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29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2.50%로 낮추면서 올해 성장률 전망을 1.5%에서 0.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단, 2차 추경 효과가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성장이 멈춘 경제에서 자산시장만 오르는 현상이 지속가능한지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 이코노미스트는 “(추경 등) 유동성에 기반한 단기 모멘텀”이라며 경계심을 내비쳤다. 실적 없는 랠리, 펀더멘털과의 괴리가 단기 모멘텀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저출생·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한국의 인구 구조, 떨어지는 성장률 등이 증시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그간의 GDP 성장 둔화는 한국 증시의 장기 성과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한국 증시는 과거 세 차례의 장기 강세장을 경험했으며 이들 시기에는 모두 강력한 경제성장 동력이 존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신영증권에 따르면 1차 강세장은 1972년부터 1978년까지로 중동 건설 붐에 따른 오일머니 유입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 이 시기 코스피는 493.8% 상승했으며 한국 경제는 사상 처음으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2차 강세장은 1985년부터 1988년까지로 저유가·저금리·저원화가치의 ‘3저 호황’이 배경이었다. 이 시기 한국 경제는 ‘단군 이래 최고의 호황’을 구가했고 코스피는 무려 752.9% 급등했다. 3차 강세장은 2003년부터 2007년까지로 중국 특수에 힘입어 코스피는 285.4% 상승했다.
‘뉴노멀’ 된 자산시장?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기준으로 증시를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자본주의는 구조적으로 쇠퇴하고 있으며 소비를 견인할 새로운 동력은 ‘자산’이라는 것이다.

제2의 현대차나 포항제철은 더 이상 나오기 어렵기 때문에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에 기반한 금융자본주의가 한국에도 필연적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윤지호 경제평론가는 “저성장의 구조적 한계를 부정할 순 없지만 금융시장은 실체보다 기대가 먼저 작동하는 시스템”이라며 “이재명 정부는 지금 자산 가격을 매개로 한 부의 효과 실험에 착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당장의 성장률이 낮아도 정부의 재정확대 정책, 새 정부의 정책 등 미래에 대한 기대가 생기면, 주가가 먼저 반응하는 것. 이게 바로 금융자본주의의 핵심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과거 부동산 가격 상승이 소비를 견인했듯 이제는 주식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며 “급여가 아닌 자산이 소비를 결정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위기 때마다 양적완화(QE)와 초저금리를 통해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그 자산을 기반으로 한 소비 활성화로 경기를 부양해 온 건 반복된 역사”라며 “한국 역시 자본을 중심에 둔 사회로 전환될 수 있느냐가 이번 정책 실험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선진국은 GDP 성장률과 주가지수 간의 상관성이 낮다. 독일은 2023~2024년 2년 연속 역성장을 겪었지만 DAX지수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본 역시 GDP가 정체된 상태에서도 닛케이225는 최고치 부근에서 움직인다.

이러한 흐름이 가능한 배경에는 통화의 위상 차이가 있다. 기축통화인 달러는 물론 유로와 엔도 사실상 준기축통화로 기능하면서 해당 국가 중앙은행들은 통화가치에 대한 부담 없이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행은 자산시장 부양을 위한 대규모 양적완화나 유동성 공급에 제약을 받아왔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환율 압박 기조로 원화 강세 환경이 조성되면서 한국도 돈을 풀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평론가는 “한국은 그간 원화 약세 우려 때문에 과감한 유동성 정책을 쓰지 못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위안화·원화 강세를 유도하는 환율 정책을 펼치면서 역설적으로 한국도 자산시장 부양을 위한 유동성 공급 여건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주식으로 생활비를 버는 나라’. 한국엔 낯선 실험이 성공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실물 부문에서는 효율적인 수익 창출이 어려운 반면 자산 시장에서는 풍선효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이 계속되고 있다”며 “주식이 일방적으로 오를 것이란 의미는 아니지만 실물 경기보다 자산 시장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흐름이 이제는 하나의 규칙, 일종의 ‘뉴 노멀’처럼 자리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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