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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오른쪽)는 지난 9일부터 영국 런던에서 희토류 등에 관해 협상했다. 사진=미국 재무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시끌벅적하게 시작되었던 관세 협상이 점차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가장 중요한 타깃이었던 중국과의 협상은 희토류 수출통제 카드를 만나 교착상태에서 임시 봉합 형태로 타결됐다. 전 세계를 뒤흔들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전쟁이 큰 소득 없이 마무리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나라들도 이 협상에 ‘진짜’를 걸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5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만나 예상외로 극적인 타결을 이뤄냈던 미·중 양국은 6월 9일부터 11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두 번째 협상을 진행했다. 이번 협상의 쟁점은 희토류였다. 제네바 회담 후 양국은 100%를 넘는 고율 관세를 각각 30%(미국의 대중관세), 10%(중국의 대미관세) 수준으로 끌어내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전 기존 관세율은 제하고 새로 부과하는 관세율만 계산한 것이다. 그러면서 비(非)관세 보복조치를 해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보복조치 해제를 약속하고도 희토류 수출을 계속 제한하고 있다면서 관세전쟁의 포문을 다시 열 수 있다고 위협했다. 6월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통화한 후 양국은 협상 끝에 희토류 수출통제 해제조치를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승리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중국과의 무역 협상이 완성됐다”고 전했다. 또 “중국은 영구자석과 필요한 모든 희토류를 선제적(up front)으로 공급할 것”이고 “우리는 중국 유학생을 포함해 합의된 것을 중국에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총 55%의 관세를 (중국에) 적용하고 중국은 (미국에) 10% 관세를 적용한다”며 “(미·중) 관계는 훌륭하다”고 적었다.

이 글만 보면 미국의 대중관세율이 55%이고 중국의 대미관세율이 10%이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 유학생에 대한 비자발급만으로 일방적인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꼼꼼히 따져 보면 상황은 그 반대다.

일단 관세율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듯 55% 대 10%가 아니다. 미국이 대중관세를 추가한 것은 없다. 미국의 대중관세율은 기존관세율+펜타닐관세 20%+상호관세(90일 유예기간 동안) 10%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관세율을 25%로 높여잡았다. 기존 대중관세율은 지금처럼 해당 국가의 상품 전체를 대상으로 일괄 적용하지 않고 품목별로 제각각이었기 때문에 계산법에 따라 12~21%로 다르게 잡힌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는 올해 1월 기준 미국의 대중관세율을 20.8%로 평가했다. 25%의 근거는 분명하지 않다. PIIE가 계산한 현재 대중관세율은 51.1%다.

같은 기준에 따르면 중국의 대미관세율은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 10%가 아니라 32.6%다. 중국의 대미관세율은 21.1% 수준이었고 현재는 미국의 상호관세(유예기간 10% 기본관세)를 똑같이 적용해 32.6%로 집계(PIIE)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추가한 관세율은 30% 대 10%이고 기존 관세율을 합산하면 51.1% 대 32.6%로 봐야 한다.

중국이 희토류를 계속 공급하겠다고 약속한 것도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중국은 미국 제조업체에 대한 희토류 수출 허가를 6개월 동안 완화하기로 했다. 중국은 미국 자동차 회사 등 제조업체들이 원하는 희토류 수입을 위한 라이선스를 즉각 승인하기로 동의했고 실제로 6월 11일부터 현장에서 승인이 나고 있다. 그러나 ‘6개월’이라는 기한을 둔 것은 이러한 조치가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중단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통화하고 양측이 희토류라는 문제에 대한 1차 합의를 이뤄내면서 큰 고비는 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언제든 무역분쟁의 불씨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이 그 대가로 무엇을 내줬는지도 관심사다. 미국은 중국 학생들의 미국 대학 입학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앞서 관심을 끌었던 반도체 수출통제를 풀어주는 것은 일단은 공개된 합의 내용 중에 없었다.

특히 이번 관세전쟁은 미국이 시작했지만 희토류가 전 세계를 쥐고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카드라는 것을 중국이 확인하게 만든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해 온 대중국 기술통제를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트럼프 정부가 내준 것이 더 많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수출통제를 협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며 “양국 경제관계에 대한 미국의 접근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린폴리시도 “합의의 세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휴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공급망에 관련된 카드를 협상 테이블에 명시적으로 올려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이 카드를 한 번만 쓸 리는 없다. 앞으로도 언제든 분쟁이 있을 때마다 이 카드를 들고 나오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한 다음 일정 기간이 지나서 상대방 태도를 보고 다시 판단하겠다고 한 것처럼 중국도 6개월 지나서 상대의 태도를 보고 희토류 라이선스 승인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도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이어갈 전망이다. 펜타닐관세 20%도 아직 카드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위 조절에 실패하면 다시 한번 희토류 카드에 가로막힐 수 있는 만큼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희토류 얼마나 중요하기에
“희토류는 중국이 오랫동안 뒷주머니에 숨겨온 강력한 카드다.”(포린폴리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백악관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부과 내용을 발표했다. ‘해방의 날’로 명명한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에 근거해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고 이 관세를 지렛대 삼아 각국과 협상을 벌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공개했다.

이틀 후 중국은 사마륨, 가돌리늄, 터븀, 디스프로슘, 루테튬, 스칸듐, 이트륨 등 일곱 가지 희토류와 이들을 함유한 자석 제품의 수출을 제한했다. 낯선 이름의 이 소재는 거의 전부 중국에서 생산 및 가공된다. 중국은 글로벌 희토류의 69.2%를 생산하고 있고 일부 희토류는 99% 중국서 생산된다. 다른 지역에서 원료를 구하더라도 가공을 위해서는 다시 중국으로 가야 한다. 세계 희토류 제련 및 분리공정의 85~90%를 중국이 장악하고 있어서다.

당장 미국 산업현장에선 난리가 났다. 원자력발전소에서 제어봉을 만드는 데 쓰이는 가돌리늄 공급이 중단되자 각국 원자로 사업장이 멈추는 일이 벌어졌다. 사마륨은 항공기와 미사일의 핵심 소재다. 디스프로슘은 전기차 생산에 필수적이다.

이익률의 문제였던 관세전쟁은 희토류 문제로 치환되면서 사실상 공급망 전쟁으로 바뀌었다. 철강이나 구리, 목재 등은 수급처를 다변화할 수 있지만 희토류는 그렇지 않다. 대체 소재를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릴뿐더러 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워싱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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