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하던 여성을 살해한 뒤 달아나 나흘 만에 붙잡힌 피의자가 16일 대구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에서 스토킹해오던 여성을 살해하고 세종시로 도주했다가 나흘 만에 붙잡힌 40대 남성 피의자가 16일 구속됐다. 이 남성은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서영애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오후 살인 혐의를 받는 A씨(48대) 대해 “피의자는 도망갔으며 일정한 주거지가 없다”며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이날 오후 1시 40분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모습을 드러낸 A씨는 “유족들에게 할 말 없나” “스토킹 혐의 인정하나” 등의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파란색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진술을 토대로 그가 범행 당시 입었던 옷과 사용한 흉기를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A씨는 지난 10일 오전 3시 30분쯤 대구 달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5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아파트 외벽의 가스배관을 타고 6층에 사는 B씨 집에 침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사건 당일 지인 명의 차량으로 세종시 부강면 야산으로 이동했고, 이후 차량을 버리고 택시를 타고 부친 묘소로 향했다. 묘소 인근에서 소주병이 발견됐으며 이후 카드 사용과 휴대전화 신호도 끊겨 경찰은 극단적 선택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수중 수색을 벌였다. 드론과 수색견이 동원된 대규모 수색과 함께 세종 시민에게는 입산과 외출 자제도 요청됐다.
A씨는 야산에 숨어 지내다가 지난 14일 오후 10시 45분쯤 세종시 조치원읍 길가에 있는 컨테이너 창고 앞에서 검거됐다. 당시 그는 현금을 구하기 위해 지인에게 연락한 후 만나러 가다가 잠복한 경찰에게 붙잡혔다. 당시 그는 번호판이 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지난 4월에도 피해자를 찾아가 흉기로 협박(스토킹 범죄 처벌법 위반 등)한 뒤 도주해 붙잡힌 바 있다. 당시 경찰은 B씨의 안전 등을 고려해 A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검찰 역시 구속의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 대구지법 서부지원에 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A씨가) 수사에 응하고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경찰은 B씨의 신변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신변보호)를 시행했다. 또 B씨에게 위급 시 자동으로 신고가 이뤄지는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집 앞에 안면 인식이 가능한 지능형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는 등 안전조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A씨가 CCTV 사각지대를 통해 침입한 데다, B씨가 지난달 중순 스마트워치를 경찰에 반납하면서 경찰은 ‘위급 신호’를 감지할 수 없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받다가 B씨를 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