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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놀이터에서 울다가 보육원에 맡겨져
교사에게 폭행, 원생들에게 성폭행 피해 주장
“남들이 꿈을 마음껏 펼칠 나이에
하루라도 안 맞고 살 순 없을까 전전긍긍
제 청춘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 건가요?”
지난 11일 서울 한강대교 위에서 고공농성한 송준영(55)씨가 12일 한겨레와 만나 한강대교 아치를 올라가며 손에 박힌 쇠 가시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나영 기자

왼손엔 쇠가시들이 박혔고 양쪽 무릎엔 멍이 들었다. 오른쪽에 있는 한강과 왼쪽에 있는 도로, 어느 곳에 떨어져도 크게 다칠 게 뻔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며 8m 높이 한강대교 난간을 끝내 기어 올랐다. 메고 간 배낭에서 펼침막을 꺼내 달았다. ‘정부와 서울시는 아동 집단수용시설에서 국가폭력을 당한 피해 생존자의 진실을 규명하고 배상하라’ 보육원 탈출 40여 년, 중년이 된 송준영(55)씨는 왜 한강대교에 올라 “보육원 국가폭력 진상규명”을 외쳤을까.

송씨는 지난 11일 오후 3시30분께 서울에도 국가폭력을 저지른 아동 수용시설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정부와 서울시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 한강대교 위에서 고공농성을 했다. 당시 소식을 듣고 현장에 나간 서울시청 관계자들이 오는 25일 면담을 제안하며 송씨를 설득하자 그는 6시간 만에 땅을 밟았다. 용산경찰서는 송씨를 옥외광고물법 위반 등의 혐의로 체포해 그를 유치장에 수감한 뒤 조사를 진행했다.

“한강대교에 올라서라도 온 국민한테 알리고 싶었어요. 1970년대 국가가 ‘고아 산업’을 장려했고,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는 시설에서 국가폭력이 있었으면 이걸 사과하고 배상해야 하는 거잖아요.”

지난 12일 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온 송씨가 한겨레에 말했다. 송씨는 부모가 있었지만 4살 때인 1974년 놀이터에서 울고 있다가 경찰에 의해 서울 구로구 ㄱ보육원에 맡겨졌다고 한다. 서울시는 1958~1974년 부랑아 근절을 목적으로 경찰과 공무원을 동원해 거리를 배회하는 아동·청소년을 단속해 수용시설로 보내는 정책을 폈다. ㄱ보육원은 한 사회복지법인이 설립한 아동 수용시설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ㄱ보육원이 양육하는 아동 수에 따라 시에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고 했다. 구로구 관계자는 “민간 시설이지만 구에서 ㄱ보육원의 양육 상황·인권 문제 점검 등 시설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서울 한강대교 아치 위에 오른 ㄱ보육원 출신 송준영(55)씨가 과거 보육원에서 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배상 및 보상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송씨는 ㄱ보육원에 1974년 입소한 뒤 “보육원 교사에게 폭행을, 같은 원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후유증으로 척수 손상과 공황장애가 남았다. 10년 뒤 간신히 보육원에서 도망쳐 나온 송씨는 공중화장실과 빈 정화조 통에서 자고 떡볶이집에서 또래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먹으며 “악착같이 살았다”. 간신히 취업한 공장에서 떼오라고 한 주민등록 등본에는 가족이 150명(보육원 원생들)으로 나와 ‘고아를 뭘 믿고 쓰냐’는 말을 들었고, 취업했다 잘리기를 반복했다. 이후 퀵서비스, 택시 기사 등의 일을 전전하며 오십이 넘은 지금까지도 월세방에서 살고 있다.

“내가 어디서 목소리를 난들 누가 알아주겠느냐고 생각했어요.” 농성을 해본 적도, 집회에 참여해본 적도 없다는 송씨는 최근에야 형제복지원·덕성원 등 아동 수용시설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온 사실을 알게 됐다.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 영상을 보며 많이 울었어요. 내가 지냈던 ㄱ보육원의 피해 사실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지난달부터 언론 인터뷰를 하고 국회에 나가 증언하기 시작했어요.” 지난달 6일에는 국회에서 ‘유기·수용시설 피해아동 등의 권리 회복 및 보호·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 토론회’가 열렸지만 이후 “국회도, 서울시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송씨는 고공농성에 나섰다.

지난 12일 서울 관악구의 한 병원에서 만난 송준영(55)씨가 지갑에 보관해둔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나영 기자

송씨는 “보육원에서 벌어진 폭력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고 명예회복·배상 등 피해자 권리 회복이 이뤄질 수 있는 ‘유기·수용시설 피해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경기 등 일부 지방자치 단체가 특정 아동 수용시설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례를 만들었지만 이들을 포괄할 수 있는 법이 마련되지 않아 지역마다 편차가 있다.

조윤환 고아권익연대 대표는 한겨레에 “보육원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서울시의 책임도 크다. 부산에서 형제복지원 조례를 만든 것처럼, 서울시 역시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관련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이런 요구를 오는 25일 진행되는 서울시와의 면담에서 주장할 예정이다.

어느덧 이마에 주름이 져버린 송씨가 피해를 회복할 수 있는 법과 조례가 간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몸과 마음이 다 황폐해졌어요. 남들이 꿈을 마음껏 펼칠 나이에 저는 하루라도 안 맞고 살 순 없을까 전전긍긍했어요. 제 청춘은 누가 보상해야 하는 건가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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