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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시의 이름이 된 하천 ‘동두천(東豆川)’은 거의 대부분의 구간이 미군기지 안에서 흐르고 있다.

소위 '기지촌'으로 기억되는 동두천시는 그만큼 주한미군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미군이 처음 동두천에 둥지를 튼 건 한국전쟁 직후(실제로는 1947년 주둔한 기록이 있음)이다. 이때까지 행정구역상 동두천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1963년까지는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이었고, 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처음 '동두천읍'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이다. 이름만 놓고 보면 미군이 먼저 오고 나중에 동두천시가 생겼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동두천이란 지명은 동쪽에 머리를 두고(발원해) 북쪽으로 흐르는 하천이란 표현이다. 현재 동두천시 중심을 남북으로 흐르는 비교적 큰 하천의 이름은 '신천'이다. 동두천시라는 이름을 가져온 하천 '동두천(東豆川)'은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와 호비 기지 안에서 흐르고 있다. 동두천은 거의 모든 구간이 미군기지 내에서 흐르다가 기지 경계를 벗어나자마자 신천으로 합류한다. 동두천시 가더라도 진짜 동두천을 보기란 쉽지 않다.

한국전쟁 이후 동두천은 주한미군과 함께 서양 문화가 유입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

■ 미군과 함께 한 영욕의 세월

미군 '캠프 케이시' 앞 보산동 관광특구에는 과거와 같은 화려함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클럽이라고 불리는 외국인 전용 술집들이 있다. 면세 술을 팔기 때문에 내국인 출입을 금지된 장소이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 중에 더는 한국인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등에서 온 여성들이 미군 등 외국인 고객을 맞는다.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었던 시절엔 많은 한국인들이 그곳에서 달러를 벌었고, 정부는 불법적인 영업행위를 알면서도 눈 감았던 시절이 있었다.

동두천시 보산동 관광특구의 클럽 (금요일 밤이지만 미군 고객을 찾아보기 힘들다. 2025년 5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 전쟁까지 겪은 한국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다. 전쟁 직후에는 그야말로 입에 풀칠하기가 힘든 시기였고 주둔 미군을 쫓아다니며 먹을 것을 얻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평택처럼 가장 많은 미군이 주둔하던 동두천은 기지촌이라는 오명 속에서도 그야말로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별천지 동네였다. 세계 최강 미군 수만 명이 진을 치고 있었으니, 낮에는 군사도시였지만 밤에는 문화의 도시, 유흥의 도시로 화려하게 빛났다. 동두천의 대중문화가 오히려 한국 사회를 견인하던 때였다.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김홍탁과 신중현 씨는 동두천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대중음악가였다.

세계적인 스타였던 매릴린 먼로와 루이 암스트롱이 다녀가는 곳, 한국에서 록이나 팝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미군 무대에서 인정받으면 대한민국 최고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한국 그룹사운드를 개척한 김홍탁과 신중현이 동두천에서 활약했고, 패티 김도 미군 무대 위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기지촌이라는 불명예도 있었지만, 동두천은 현대적이지 않았던 한국에서 다양한 문화가 뒤섞이고, 춤과 음악, 그리고 돈이 흘러넘치는 곳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마릴린 먼로가 동두천 등 주한미군 위문공연을 펼쳐 큰 화제가 됐다. *1954년 2월 /KBS 아카이브

■ 동두천의 눈물....주한미군 기지 이전하는 거 맞아?

2004년 한국 정부는 미국과 협정을 맺었다.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용산기지이전협정(YRP)」과 동두천을 비롯해 전국에 흩어져 있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연합토지관리계획 개정협정(LPP)」이다. 인구가 약 10만 명 수준이었던 동두천시, 게다가 지역경제 대부분이 미군이 쓰는 소비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동두천의 입장에선 정말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편으론 새로운 도약의 희망도 피어났다. 동두천시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주한미군. 미군이 떠난 자리에 기업이나 공공기관, 대학 등을 유치해 동두천시가 기지촌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명실상부한 새로운 도시로 개조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동두천시 보산동 관광특구 (금요일 저녁인데도 거리가 한산하다. 2025년 5월)

그러나 모든 희망은 꺾여 버렸다. 캠프 케이시와 캠프 호비 등 동두천 중심을 보유하고 있는 기지가 협정 체결 20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도약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군기지는 그대로인데 과거 2만 명이 넘었던 미군의 숫자는 약 5~7천 명 수준으로 약 1/3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미군의 국방 전략에 따라 동두천의 미군은 한곳에 계속 머무르는 '주둔군'이 아니라 '기동군' 형태로 바뀌었다. 군인들이 3개월~6개월씩 계속 순환되는 개념인데, 지역 상권에는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 한 집 건너 한 곳씩 폐업…."임대료 내려 줄 게 있어 달라."

뭔가가 바뀌려면 우선 기획하고 일정이 나와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동두천시는 미래가 없는 곳이다. 도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주한미군 기지가 언제 나갈지, 나가긴 하는 것인지 전혀 가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동두천시의 명동이자 종로에 해당하는 보산동 관광특구는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미군 숫자가 줄어 소비력은 줄었고, 일부 미군들은 편리해진 교통편을 이용해 서울로 나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취재진은 그래도 기지 앞 상점을 이용하는 미군들을 촬영하기 위해 금요일에 맞춰 동두천시 보산동 취재에 나섰다. 그리고 밤 10시가 될 때까지 현장을 지켜봤다. 그러나 길거리에는 미군뿐 아니라 아예 행인들을 쉽게 보기 힘들 정도였다. 현지 상인의 협조를 얻어 외국인 전용 클럽도 몇 군데 들어가 봤다. 그러나 현장에서 취재하던 2~3시간 동안 우리가 본 미군은 딱 1팀밖에 없었다. 금요일 밤인데도 클럽 간판만 걸려 있고 문을 연 클럽은 몇 군데 없었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뉴스9 경인 : [르포] 원조 클럽 성지에서 시골 상권으로 추락…. 동두천의 눈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67474

보산동 관광특구에서도 가장 중심 위치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상인은 40여 년 만에 조만간 문을 닫을 거라고 했다. 이미 지난 5월에 영업을 접으려고 했는데, 집주인이 오히려 임대료를 더 낮춰줄 테니 조금만 더 영업해달라고 해서 그나마 가게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미군이 나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애매한 상황에선 상권을 어떤 모습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미군기지가 그대로이다 보니 상권도 과거 그대로 유지는 하고 있지만 그저 서서히 망해 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동두천시라는 이름을 가져온 하천명 동두천이 미군기지 안에서 흐르는 것처럼 주한미군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동두천의 지역경제는 아직도 미군에 종속돼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 기지 이전 사업이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연되면서 회복하기 힘든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다. 동두천시가 '기지 이전이 안 될 거라면 차라리 잔류 기지로 규정하고 정부가 그에 걸맞은 보상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주장을 하는 이유이다. 이제 한국 정부가 동두천 시민들에게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구체성 있는 설명을 해야 할 차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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