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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는 국내외 근로자들이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K조선 외노자 줄 선 다이소·아시아 마트
지난 5일 오후 5시쯤 경남 거제시 장평동 다이소 앞 도로변. 자전거·오토바이가 하나둘 서더니, 불과 10여분 만에 40m 긴 줄이 생겼다. 500m 떨어진 삼성중공업에서 퇴근한 베트남 등 외국인 근로자가 매장에 오면서다. 이들은 2층에서 자취방에 필요한 청소·세탁 용품 등을 골랐다. 문구·미용 제품이 있는 1층에선 해외 가족과 영상 통화로 물건을 골랐다. 다이소 직원은 “값싼 생필품은 물론 장난감·미용팩 등 본국에 보낼 선물도 많아 인기”라고 했다.

지난 5일 오후 경남 거제시 장평동 다이소 매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이 줄 서 있다. 인근 삼성중공업 조선소에서 퇴근한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송봉근 기자.
5일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 삼성중공업 외국인 노동자들이 음식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아시아마켓을 찾고 있다. 송봉근 기자. 2025.06.05.
같은 날 오후 6시쯤, 거제 다이소 인근 ‘아시아마트’와 울산시 동구 방어동 HD현대중공업 조선소 기숙사 인근 ‘프레시 푸드마켓’ 등에는 베트남 원산지 쌀부터 에그누들(계란국수), 동남아 열대 과일인 잭프루트, 코코넛 통조림 등 해외 현지산 물건을 저녁 찬거리로 사는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마트 직원은 “손님 대부분이 외국인인데 현지 식재료로 요리해 먹기 위해 이곳에 온다”고 했다. 이들 가게엔 거의 매일 조선소 퇴근 시각에 맞춰 이런 풍경이 나타난다.



손님 없는 토종 상권…17개 식탁 텅 빈 횟집
같은 시각 조선소 앞 번화가 ‘토박이 한국 가게’는 회식으로 ‘불야성(不夜城)’을 이뤘던 10여년 전과 비교하면 ‘개점휴업’ 상태였다. 거제 다이소 인근 한 소고기 해장국집 사장은 “마수걸이도 못 했다. 종교 때문인지 외국인은 한 명도 안 온다”고 했다. 인근 한 미용실은 ‘영업 중’이란 팻말과 달리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재래시장 한 횟집에서 사장이 TV를 보며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의 한 미용실이 '영업중'이란 팻말과 달리 불 꺼진 채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안대훈 기자
장평동 재래시장 상가 건물 지하 1층의 횟집 주인 김모(60)씨는 17개 식탁을 가리키며 “저녁 예약 손님은 한 테이블뿐”이라며 “외국인은 회를 안 먹는다”고 했다. 상가 관계자는 “1995년 오픈 때 거제에서 제일 큰 상가였는데 최근 2년 사이 20~30개(총 100개 점포)가 문을 닫았고, 식당은 거의 전멸했다”고 했다. 이들 자영업자는 “‘조선 호황’이 왔다고 하는데, 우린 전혀 체감이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 ‘돈 안 쓰는’ 외국인만 늘어나니 지역에 돈이 안 돈다”고 했다.



산업은 호황, 경제는 불황…“급증한 외노자 돈 안 써”
10년 넘는 긴 불황 끝에 ‘K조선’이 호황이다. 빅3 조선소(삼성중공업·한화오션·HD현대중공업) 수주액은 ‘수주 절벽’이었던 2016년 54억2000만 달러에서 2021년 338억2000만 달러로 6배 급등했고, 2022~2024년까지 220억~315억 달러로 활황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조선업 협력 ‘러브콜’을 보내고,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이 지난 4월 거제·울산 조선소를 찾는 등 호재도 잇따랐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하지만 국내 대표 ‘조선(造船) 도시’ 거제·울산 상권은 불황의 그늘이 짙다. 지역 경제계는 그 이유를 ▶코로나19 이후 회식 문화 감소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 등 전국 현상에 더해 ▶외국인 근로자 증가를 손꼽았다. 조선소 인력은 늘었지만, 기존 내국인 자리를 외국인 근로자가 대신하면서 ‘소비 진작’이 안된다는 의미다.

실제 일감이 많이 늘어난 2022~2024년 사이 이들 3개 조선소가 충원한 근로자 1만 8200명 중 1만 800명(59%)이 외국인이었다. 신규 인력 10명 중 6명 수준으로 2024년 말 현재 빅3 근로자의 16.4%를 차지하고 있다.

신재민 기자
삼성중공업·한화오션 대형 조선소 2곳이 있는 거제는 지역 근로자 7만 3308명 중 4만 1757명(57%·4월 기준)이 조선업 종사자로, 근로자 2명 중 1명 이상이 조선소에서 돈을 번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전체 거제 인구 23만명 중 상당수가 조선소 명운을 같이 하고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석유화학과 함께 HD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은 거제보다는 수치가 낮지만, 전체 광·제조업 종사자 15만 6918명 중 3만 6760명(23.4%·2023년 기준)이 조선업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내국인이 빠진 자리를 대신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돈을 쓰지 않을 경우 그 영향은 바로 지역 경제에 나타날 수밖에 없다.

실제 조선소 주변 경기는 불황 때보다 안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남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이 있는 장평동 연간 소비 매출액(KB 카드 데이터 기준)은 지난해 223억9000만원으로 조선업 불황이었던 2019년보다 12억8000만원 더 줄었다. 한화오션과 접한 옥포동(1·2동)도 같은 기간 360억5000만원에서 36억원 더 깎였다.
지난 3월 경남 거제시 옥포동 한 상가 건물 1층 정문에 임대 팻말이 붙어 있다. 안대훈 기자

상가는 텅텅 비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거제 옥포·고현동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각각 30.7%, 13.5%로 지난 4년 중 가장 높았다. 같은 해 전국 상가 공실률(13%)보다 높다. 울산도 지난해 상업용 집합상가 공실률이 20.6%로, 7대 특·광역시 중 가장 높았다. 전국 평균(10.1%)의 두 배 수준이다.



부동산도 침체…“외국인 만명보다 한국인 백명 더 낫다”
부동산 경기는 최악 수준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거제 아파트 거래량은 2021년 6609동에서 지난해 3262동으로 반 토막 났다. 같은 기간 아파트 전셋값도 떨어졌다. 아파트 전세가격지수(2021년 6월 기준 100)가 지난해 82.1로 하락했다. 울산도 올해 아파트 분양 예정 물량은 3338가구로 지난해 분양물량보다 64.3% 줄었다.

대신 외국인 근로자 숙소로 쓰이는 월세방 가격만 소폭 올랐다. 불황 때 ‘무보증·월세 15~20만원’이었던 거제 양대 조선소 주변 원룸이 ‘보증금 100만원·월세 30만원’으로 거래 중이다. 그래도 호황기(보증금 500만원·월세 50만원)’ 수준엔 못 미친다.

지난 5일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에서 퇴근한 외국인 근로자들이 인근 다이소 종이가방을 들고 귀가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김상철 장평종합시장상인회장은 “다들 ‘관리비도 못 낸다’, ‘코로나19 때보다 힘들다’고 한다”며 “외국인 1만 명 느는 것보다 여기 정착해 집도 구하고 소비도 할 한국인 100명이 더 낫다”고 했다. 이규용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외국인들로 인력난은 숨통을 텄지만, 이들의 국내 정착 여건이 미흡한 상황에서는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물가와 주거 여건을 고려한 임금 개선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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