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1>상속 포기 vs 상속 재산 분할 합의서

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기지만, 크고 작은 고민도 적지 않은 시기다. 중년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상속인 지위 유지’ 여부에 따라
채권자가 상속에 개입할 수도
채무 있다면, ‘상속 포기’가 안전


Q :
50대 후반 여성 E다. 최근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에서 소장이 날아왔다. 큰아들이 얼마 전 사업 실패로 빚을 진 상황이었는데, 그의 채권자가 소를 제기하면서 “모친 등 가족과 진행했던 ‘상속 분할 합의’를 취소하라"고 요구한 것.
남편 사망 후 당초 우리 가족은 내가 남편 명의 집을 물려받기로 했다. 큰아들은 "어머니가 평생 살던 집에서 계속 사시는 게 맞다"며 나를 위해 상속을 포기했고, 둘째도 같은 의견이었다. 장남은 사업 실패로 빚을 진 상황에서 내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왜 장남의 빚쟁이가 우리 가족 일까지 간섭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법정 다툼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A : 다수의 상속 관련 소송을 다룬 필자 입장에서는 E씨의 분쟁은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 E씨의 장남이 ‘상속재산을 전혀 받지 않겠다’고 결정했다면, ‘상속재산 분할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보다 법원에 '상속포기' 신고를 하는 게 훨씬 안전한 선택이었다.

상속재산을 받지 않겠다면 두 가지 절차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바로 △상속 포기와 △상속 분할 합의다. 그리고 이 두 제도는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먼저, 상속포기는 상속인 지위 자체를 완전히 포기하는 절차다.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과 동일한 법적 효과를 갖는다. 반면 상속 분할 합의서는 상속인들이 서로 간에 상속재산을 어떻게 분배할지 협의한 내용을 문서화한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가족 간 계약에 해당한다.

상속 분할 합의는 시간적 제약이 적고 절차가 유연한 장점이 있어 실무상 많이 사용한다. 상속 포기는 법원 신고기한이 정해져 있으나, 상속 분할 합의는 언제든지 상속인 합의만 있으면 가능하다. 각자 사정에 맞게 유연하게 분배할 수 있어 실용적이다.

그런데 이 차이가 실무상으로 결정적 문제를 야기한다. 상속 분할 합의를 하면, "나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합의했더라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상속인 지위’를 보유하게 된다. 마치 "나는 이번 가족회의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기로 했지만, 여전히 이 가정의 구성원"인 상태와 같다. ‘상속인 지위’를 유지했느냐 아니냐가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다. 특히 채권자의 개입이나 채무 승계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첫째 문제가 E씨와 같은 “채권자 개입 위험”이다. E씨 큰아들처럼 채무가 많은 사람이 상속 분할 합의서에 상속받을 재산을 포기한다고 합의할 경우, 채권자는 "장남이 받을 수 있는 재산을 일부러 포기해서 우리가 받을 돈을 없애버렸다"며 법원에 합의 취소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에 ‘상속 포기 신고’를 했을 경우, 대법원은 ‘채권자의 취소 대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애초에 받을 수 있는 재산이 없었던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물려준 재산은 있으나 자신이 상속받을 재산이 '0원'이라면, 상속 분할 합의서를 작성하는 것보다는 법원에 상속 포기를 신고하는 것이 안전하다.

상속 포기의 장점은 E씨 사례같이 '사해행위 취소' 방지 외에도 또 있다. 바로 채무 면제다. 상속 분할 합의서를 쓴 경우, 장남이 "저는 재산을 하나도 안 받겠습니다"라고 해도, 아버지가 남긴 빚이 있다면 그 빚에 대한 책임도 여전히 져야 한다. 아버지가 국세를 체납했다면, 장남은 재산을 상속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된다. 반면 상속 포기를 했다면 아예 상속인이 아닌 상태가 되므로 아버지의 빚도 전혀 떠안지 않는다.

그래서 △ E씨의 상황같이 상속인 중에 빚을 많이 진 채무자가 있는 경우, △피상속인(아버지)에게 상당한 채무가 있는 경우에는 상속재산 분할 합의보다는 상속 포기 신고를 우선 검토해야 한다.

필자가 가족분쟁을 상담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 아무리 복잡한 법률 문제라도 결국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둘째 아들의 효심, 장남의 배려, 그리고 평생을 함께한 집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은 모두 소중하고 이해할 만하다. 다만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법적 위험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상속은 단순히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뜻을 기리면서도 남은 가족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진정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연관기사
• 승진 누락도 아내 탓하더니, 외도 걸리자 큰소리 치는 남편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410520002407)• '불면증' 시달린 영조와 순조, 고사리와 대추 처방받았다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52716270005235)• 단독주택 상속세 신고... "감정평가, 어떻게 받으면 유리할까요?"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51512050002473)• 남편-아들이 한편이 돼 거부…"엄마는 어찌해야 하나요?"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50113550003557)• 선생님에게 '미운털' 박힌 우리 애… 부모가 따져야 할까[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41709240003315)

박은지 변호사

한국일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2951 친윤 지지 얻은 TK 송언석, 국힘 원내 사령탑 됐다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50 특검 앞두고 김건희 여사 입원…이유는? [지금뉴스]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9 “윤이 ‘국회에 1000명 보냈어야지’ 해”…김용현은 보석 거부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8 김건희 여사, 지병 악화로 서울 아산병원 입원…위독 상태는 아냐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7 [단독]어디까지 뻗었나···장병 독서용 ‘진중문고’에도 리박스쿨 서적 납품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6 “모두 동성애 택하면” 김민석 발언에 “허구적” “동성애자도 출산” 각계 비판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5 "일본보다 5배 비싸. 말도 안 돼"…오픈런해서 '5000원' 내고 먹는 '한국 빵'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4 ‘검찰’ 임은정-‘금융위’ 김은경…국정기획위, 정부 조직 대수술 예고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3 李대통령, G7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로 출국…실용 외교 첫발(종합)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2 '배관 타고 스토킹 살해' 40대 구속…"만나주지 않아 범행"(종합)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1 野 새 원내사령탑 송언석…안으로는 '쇄신', 밖으로는 '투쟁' 첩첩산중 과제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40 김건희 여사, 특검 앞두고 서울아산병원 입원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9 “윤석열!” 함성에 ‘흐뭇’ 미소…“좀 보게 가로막지 말아달라” [현장영상]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8 유류세 정상화하려던 기재부, ‘일단 멈춤’한 까닭은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7 “무조건 당첨? 실제 확률 9%”… 공정위, 배틀그라운드 ‘기만 광고’ 제재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6 "어쩐지 입냄새 심하더라"…장마철 '세균 폭탄'이라는 '칫솔', 잘 관리하려면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5 ‘화장품 제국’ 에스티로더 회장 사망…‘립스틱 지수’ 창안도 [지금뉴스]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4 “우리 아이 무조건 여기서 키워야지”…맹모 2600명 몰린 ‘이곳’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3 잔돈 떼어가 목돈 만들어준다…벌써 100만좌 돌파한 이 적금 new 랭크뉴스 2025.06.16
52932 국방장관 前보좌관 "尹, 김용현에 '국회 천명 보냈어야지' 말해" new 랭크뉴스 2025.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