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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개천에서 용난다'는 옛말? 베이징 의사 불륜 사건이 불지핀 '공정 논란'

랭크뉴스 | 2025.06.16 06:52:07 |
<23>  가오카오 앞두고 활활 타오른 中 '공정 논란'
4년 만에 의사 됐지만 수상한 양성 과정
'고액 교육' 하버드대 연설 장위룽도 뭇매
중국에서도 커져 가는 교육 불평등
베이징의 유명 종합병원인 중일우호병원의 흉부외과 의사 샤오페이(오른쪽 사진)와 수련의 둥시잉의 불륜이 폭로되면서 알려진 사건은, 점차 둥시잉의 학력 비리 문제로 비화됐다. 바이두 캡처


#. 지난해 7월 5일, 중국 베이징시의 중일우호병원. 폐 부분 절제 수술을 집도하던 이 병원 흉부외과 의사 샤오페이는 마취 상태의 환자를 수술대에 둔 채 40분 동안 수술실을 이탈했다. 수술실에 함께 있던 간호사와 이 병원 수련의인 둥시잉이 말싸움을 하면서다. 유부남인 샤오페이가 불륜 관계인 둥시잉을 편들면서 생긴 일이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환자의 생명을 두고 '치정극'을 벌이지 말라"고 분노했다.

처음엔 다들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그저 그런 '불륜 사건'이라고 여겼다.
샤오페이의 부인이 작성한 18쪽의 고발문을 통해 알려진 불륜의 전말은 세간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중국에서 가장 우수한 종합병원으로 취급받는 베이징 중일우호병원의 베이징대 출신 엘리트 의사가 병원 내 의사, 간호사 등 수많은 여성들과 불륜 관계를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둥시잉은 그중 한 명이었다.

중국 검색엔진 바이두에서 '중일우호병원 샤오페이'를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들. 지난달 샤오페이는 윤리 위반 등의 이유로 병원에서 해직됐고, 의사 면허도 박탈됐다. 바이두 캡처


반짝 하고 그칠 것 같았던 이 사건은, 중국 사회에 '공정 논란'에 불을 지폈다. 마치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입시 비리가 청년 세대의 거대한 박탈감을 불러왔던 것과 비견될 만하다.
네티즌들이 내연녀 둥시잉이 의사가 되는 수상한 과정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다.


1996년생인 둥시잉은
미국 바너드칼리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베이징 셰허의학원의 '4+4 과정'을 통해 의사가 됐다. 4+4 과정은 한국의 의학전문대학원과 유사한 체계로, 학부에서 의학 전공을 하지 않은 학생이 4년 만에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지난달 15일, 국가위생건강위원회가 발표한 둥시잉의 입학 과정은
그야말로 특권층의 부패한 교육카르텔을 여실히 보여줬다.
우선 애초에 입학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4+4 과정의 경우 해외파는 'QS 세계 대학 순위' 상 50위권 해외 명문대를 졸업해야 지원할 수 있는데 둥시잉이 졸업한 바너드칼리지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 입학을 위해서는 대학물리학 등 66학점 이상의 의학 예비 과정을 이수해야 했지만, 둥시잉의 수강 과목 중 16학점은 위조된 것이었다.

형식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박사 학위 논문도 비리투성이였다. 논문의 주요 부분은 베이징과기대의 같은 해 졸업생들의 학위 논문과 중복되는 비율이 20%가 넘었고, 다른 논문에서도 부당 서명과 중복 게재 등 연구 윤리 위반 요소가 적발됐다. 그런데 이런 박사 논문을 지도한 교수가 학계에서 최고 권위자로 통하는 정형외과 전문의 추귀싱 중국공정원 원사였다고 한다. 의학원 전공은 내과지만, 박사논문 지도교수는 정형외과이고, 업무는 비뇨기과로 받았다가, 레지던트 수련은 흉부외과에서 받는 등 든든한 뒷배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이력들이 추가로 드러났다.

네티즌 수사대는 둥시잉의 '금수저 배경'에 주목했다.
그의 아버지는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회사인 중예건축연구총원의 당위원회 부서기 겸 회장으로, 직급으로 따지면 지급시(지방도시를 가리키는 중국의 행정체계) 시장급이다. 어머니 역시 베이징과기대의 부원장으로 한마디로 중국에서 끗발 날리는 집안이다. 둥시잉은 비교적 입학이 쉬운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한 뒤, 바너드칼리지로 편입해 번듯한 학벌을 만들어 4년 만에 각종 편법을 동원해 의사가 됐는데, 그 과정에는 중국 특권층의 암묵적인 반칙이 도사리고 있었던 셈이다.

결국 지난달 베이징시 위생위원회는 관련 규정에 따라 둥시잉의 의사 면허를 취소했다. 또 셰허의학원도 학위 관리 관련 규정 및 법률 등에 따라 둥시잉의 졸업증 및 학위를 취소했다. 중일우호병원은 샤오페이의 임용을 취소했으며, 그 역시 의사 면허가 박탈됐다.

당국의 빠른 조사와 개입에도, 생명을 다루는 의학 분야까지 침투한 '세습형 교육 비리'가 드러나자 중국 사회의 공분은 한 달 넘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 시사 블로그는 "4+4 과정은 허점으로 인해 특권층이 추월하는 도구로 전락했고 공정성에 대한 믿음에 영향을 미쳤다"며 "둥시잉의 '육각형 전사(모든 능력치가 완벽하다는 뜻의 중국어 밈)' 이력과 가족 배경 사이의 연관성은 '의료 자원의 세습'에 대한 대중의 우려를 증폭시켰다"고 평했다.

하버드 연설 유학생은 어쩌다 대중의 미움을 받게 됐나

장위룽


비슷한 시기 미국 하버드대 졸업식 대표 연설자로 나선 중국 유학생 논란도 불거졌다.


최근 전방위적으로 '중국 때리기'에 몰두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하버드대와 중국 유학생·당국자의 연관성을 주장하며 유학생 비자 취소를 추진하는 등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최초의 중국인 여성 졸업 연사'로 선정돼 연단에 오른 장위룽은 트럼프의 편파적인 정책에 강펀치를 날린 중국의 자랑 그 자체였다. 실제 장위룽은 연설에서 "상호 연결된 세계가 분열, 두려움, 갈등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를 꾸짖었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 출신으로,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미국 듀크대 학부, 그리고 하버드 케네디스쿨(공공정책대학원)에서 국제개발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가 유학 경험을 토대로 한 연설을 내어놓자, '중국 청년의 빛'이라는 중국 매체들의 찬사까지 쏟아졌다.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됐다.
그가 하버드대에서 졸업 연설을 하기까지 밟아온 '엘리트 교육 과정'은, 평범한 중국 가정 출신에서는 전혀 꿈꿀 수도 없는 경로라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실제 장위룽이 다녔던 영국 웨일즈의 사립 기숙학교의 연간 수업료는 약 7만 파운드(약 1억3,000만 원)에 달하는데, 일반 가정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장위룽 역시 '금수저 특혜' 의혹에 휘말렸다. 아버지가 이사를 맡은 '중국 생물다양성 보존 및 녹색발전 재단'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고, 하버드대 입학 당시 이 재단 사무총장으로부터 추천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장위룽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해서 아버지와 왕래가 없었고, 재단으로부터 받은 추천서는 학교에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물론 이 같은 사회적 공분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장위룽 개인이 아닌, 더 이상 '공정하지 않은' 중국 사회다. 최근 중국에서는 청년 취업난이 심화하면서 '교육 불평등'과 '계급 고착화'가 큰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다샹신문은 3일 "장위룽은 치열한 (국내) 대학 입시 경쟁을 피해 국제 교육의 길을 선택했다"며 "이 길은 비용이 많이 들고 가족의 경제적 힘과 사회 자본에 의존해야 하는데, 일반 가정에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제 가오카오로 '개천에서 용 나는' 건 옛말

4월 26일 중국 안휘성의 고교생 마위통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모의고사 답안지에 쓴 유서. 바이두 캡처


지난 7~8일, 중국판 수학능력시험인 '가오카오'가 둥시잉과 장위룽이 촉발한 '교육 공정 논란'의 여파 속에서 진행됐다. 중국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응시생은 1,335만 명에 달했다. 한 해 중국 전역의 대학 입학 정원이 450만 명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900만 명 가까운 이들이 입학 문턱을 넘지 못하는 좌절을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가오카오를 앞두고 안휘성의 한 고교생은 모의고사 답안지에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에는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런 관문을 뚫고 겨우 대학 졸업장을 받자마자 마주하는 것이 청년 실업률 15.8%(올해 4월 기준)의 냉혹한 구직 시장이니, 점점 좁아지는 기회 속에서 중국 사회도 '공정'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양질의 교육 기회를 독점하는 특권층에 대한 반감은 중국의 '가오카오 신화 붕괴'와도 무관하지 않다. 과거 가오카오는 낙후한 시골이나 저소득 가정의 자녀도 좋은 성적만 얻으면 대학에 입학해 성공할 수 있다는 일종의 능력주의 신념을 주입하는 제도로 통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특권층의 교육 자본 축적 행태가 광범위하게 알려지면서 시험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은 휘청이고 있다. 위안창겅 윈난대 사회학과 조교수는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사람들은 교육 경쟁이 궁극적으로 가계 재정과 사회적 자본(네트워크 등)의 경쟁이라는 점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됐다"며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다'는 것과 '고등교육으로 가는 길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중국 사회의 새 화두가 됐다"고 지적했다.

중국 수험생들이 7일 대학 입시 시험인 가오카오를 치른 후 귀가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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