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 위험”
출퇴근.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법원이 퇴근길 운전하던 차량이 하천에 빠져 숨진 노동자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가 차량 사고 직전 심장 질환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업무상 재해가 아니라고 봤는데 이를 뒤집은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는 소방설비 배관공 ㄱ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5일 밝혔다.
판결문을 보면, ㄱ씨는 2021년 9월 전남 여수에서 근무를 마치고 차량을 운전해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 차량이 도로 경계석을 넘어 6m 아래 하천으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ㄱ씨는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서야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출퇴근재해 홍보자료. 고용노동부 누리집 갈무리
유족은 ㄱ씨의 사망 사고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급여 지급 대상이 되는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며 공단에 유족급여·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ㄱ씨 부검 결과 심장 관상동맥에서 중등도 동맥경화가 발견됐다는 점을 들어, 사고를 당하기 전 이미 급성심장병으로 숨졌을 가능성을 이유로 유족급여를 지급하지 않았다.
유족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은 ㄱ씨의 사망 원인을 심장병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검 결과는 ‘사인 불명’ 취지이고, 특별한 기저질환도 없었던 ㄱ씨가 운전을 시작하고 3분도 안 돼 심각한 급성심장병이 발병했다고 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ㄱ씨의 사인이 심장병이라고 해도, 출퇴근 재해가 맞다고 봤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출퇴근 재해를 신설한 취지는 노동자와 그 유가족의 생계·복지를 위한 것”이라며 “근로자의 건강상 문제가 사고 발생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서 그로 인한 사망을 업무상 재해에서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통상적인 출퇴근 경로를 따라 주행하다 차량이 하천으로 추락해 발생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ㄱ씨의 사망은 출퇴근 운전에 통상 수반되는 위험이 현실화된 것으로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산재보험법은 노동자의 고의, 자해행위, 범죄행위로 인한 사망을 업무상 재해의 범위에서 제외할 뿐”이라며 “건강상 문제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서 출퇴근 재해가 아니라고 보는 것은 건강상 문제를 고의나 범죄행위에 준하는 사유 평가하는 것이 돼 부당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