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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단절된 삶 탈피해 인생 2막 꿈꾸며 예술인 본능·열정 자극
"평생교육프로그램 놓치지 않으면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새로운 세상 열릴 것"


편집자 주
= 20대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86세대'가 노인 인구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알아요'를 외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따라 추던 엑스(X)세대도 오십 줄에 접어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활력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어쩌다 보니 시니어가 된 세대, 연합뉴스는 86세대 중 처음으로 올해 노인연령(65세 이상)에 편입되는 1960년생부터 올해 50세가 되는 1975년생까지를 액티브한 시니어 세대, 즉 '액시세대'로 보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액시세대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 살펴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액시세대의 고용, 소비, 여가 등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매주 일요일 소개합니다.

캘리그래피 작품 소개하는 손영미 작가
[촬영 천정인]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엄마가 한석봉이여? 왜 날마다 어두컴컴한 TV 앞에서 그러는 거여?"

불 꺼진 집안에서 TV 화면을 불빛 삼아 캘리그래피(손글씨)를 연습하던 손영미(57) 씨에게 딸은 걱정스러운 듯 한 마디를 던졌다.

인생 2막을 시작하게 한 캘리그래피의 매력에 빠져 붓을 내려놓을 수 없었던 손씨였다.

화물 운수업에 종사하는 남편이 초저녁에 취침해야 하는 상황을 배려해 집안을 늘 조용하고 어둡게 해둔 채 글씨 연습을 하는 모습이 꼭 한석봉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래! 나도 언젠가는 한석봉이 되련다."

그렇게 매일 A4 용지 한 박스, 2천500장씩 캘리그래피를 써 내려갔다.

손씨는 20대 중반 결혼한 직후부터 인쇄소를 개업해 26년간 주 7일을 쉴 틈 없이 일하던 워커홀릭 사장님이었다.

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실력자여서 일감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럴수록 컨베이어 벨트가 된 듯 자기 자신을 잊고 살아야 하는 시간이 많았다.

높은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는 결국 실명까지 유발할 수 있는 병을 불러왔다.

결국 자의 반, 타의 반 일을 줄여가게 되면서 조금씩 자신과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친 평생학습 홍보 현수막은 손씨의 발걸음을 운명처럼 이끌었다.

광주 동구 평생학습관 프로그램 중 하나인 '어반 스케치'를 시작으로 식물 가꾸기, 밸런스 테이핑, 캘리그래피, 우드버닝 등 관심이 가는 분야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밖에 모르고 살아오던 그에겐 새로운 세상이었다고 했다.

손씨는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사는 연예인이 은행 업무를 못 하는 것처럼 저도 사회에서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그런데 평생학습관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나고 난 뒤에는 시각장애인이 눈을 뜬 것과 같은 느낌으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고 표현했다.

손영미 작가의 우드버닝 작품
[촬영 천정인]


특히 캘리그래피와 우드 버닝은 손씨 내면에 잠자고 있던 예술인의 본능과 열정을 자극했다.

평생학습관 교육 과정만으로는 부족했던 그는 프로그램 강사로 만난 선생님의 공방을 찾아가 따로 교육을 받았고, 집에선 유튜브를 참고하며 자신의 길을 찾았다.

강사 선생님이 학교나 관공서에 강의를 나갈 때면 "일을 도와주겠다"며 따라가 노하우를 배우거나 보조 강사로 참여하며 실력을 키웠다.

나무를 태워 작품을 만드는 우드버닝도 나무 그을림 향내 속에 캘리그래피를 넣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 시작했다.

우드버닝 역시 평생학습관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강사의 공방을 찾아다니며 열정을 불태운 끝에 1년 과정을 3개월 만에 수료했다.

자격증을 따거나 과정을 수료했다고 해서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딸의 입에서 한석봉 이름 석 자가 나올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어깨에 무리가 오는 등 신체적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지만 그는 "어쩜 이렇게 예쁜 한글이 날마다 내게 다가와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코끝을 찡그리는 기쁨을 선물하게 하는지 저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노력은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것으로 꽃을 피웠다.

캘리그래피의 경우 2022년 광주광역시 미술대전에서 입선한 것을 시작으로 해마다 4~5차례씩 크고 작은 상을 휩쓸었고 올해도 빛고을미술대전에서 우수 작가상을 받는 등 수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우드버닝 역시 2023년부터 해마다 4~5점씩 입상하다 올해는 대한민국열린미술대전 특별상을 받았다.

이번 특별상 수상으로 내년에는 초대 작가로서 데뷔전을 앞두고 있다.

재활용품으로 만드는 캘리그래피
[손영미 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손씨는 자신의 작품 활동만큼 나눔과 봉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나누고 캘리그래피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이 마음은 다시 평생교육사 자격증에 도전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강사로서 다양한 학습자들을 만나고 있다.

강사로서의 경험은 장애인 평생교육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도 이어졌다.

장애인복지관에서 자원 봉사를 하게 됐다가 캘리그래피와 우드버닝이 장애인 정서 발달 및 소근육 훈련 등에 긍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다.

지난해 평생교육원이 소개해준 장애인학습센터에서 8주 교육을 종료한 뒤에도 자발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무료 강의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씨는 "잘못 쓰는 글씨지만 그래도 캘리그래피를 쓰고 싶어 하는 모습들을 보면 마음이 뭉클해진다"며 "이 시간을 무척 기다린다는데 어떻게 안 갈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각양각색의 학습자들을 만나다 보니 조금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교재가 필요하게 되자 자신이 직접 연구해 맞춤형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인쇄소를 운영했던 노하우가 돌고 돌아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를 계기로 자신이 인생 2막을 시작하게 된 동구 평생학습관에서 이제는 강사로 서는 기회를 얻게 됐다.

그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여러 가지를 접해보되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선택해서 높은 단계에 오를 때까지 수련을 하다보면 또다른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캘리그래피 작품 앞에 선 손영미 작가
[촬영 천정인]


광주 동구는 평생학습관 사업 중 하나로 '신중년 인생 3모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퇴직 후 재취업 등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실용 자격 과정을 마련했다.

산모·신생아 건강관리사를 비롯해 파크골프 지도사, 목공 지도사 등 올해에만 12개 과정이 마련됐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생애 경력 설계를 지원하거나 전직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신중년들이 인생 후반부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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