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장경태·민형배·김용민 의원(왼쪽부터) 등이 지난 6월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검찰청법 폐지법안, 공소청 신설법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간경향] “검찰개혁이라는 건 검사 DNA가 있다면 다 반대할 거다. 그런데 검찰이 자초했으니 할 말이 있나. 잘한 게 있어야 저항도 하지, 잘한 것도 없는데 저항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
“(수사·기소 분리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검찰 내부에 저항할 힘은 없을 듯하다.”
검사장을 지내고 검찰을 퇴직한 변호사 A씨와 B씨는 새 정부의 검찰개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들의 말대로 지난 정부 검찰은 수사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중립성도 보여주지 못하며 바닥을 노출했다. 더욱이 검찰의 집중 수사를 받았던 야당 대표가 대통령에 취임했고, 새로 탄생한 정권은 행정·입법부를 거머쥐었다. 참여정부 때부터 밑그림이 그려진 검찰개혁이 이번에는 완수되리라는 기대감이 높다. 개혁을 추진할 때마다 반복됐던 검찰 내부의 조직적인 저항이 재현될 것이라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조만간 검찰은 혹독한 개혁을 요구하는 청구서를 받아들 전망이다. 일부 개혁과제는 벌써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지난 6월 10일 국무회의를 열고 법무부 장관도 검사 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징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종전까지는 검찰총장만이 검사의 징계를 요구할 수 있었고, 정권의 사람인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만을 요구할 수 있었다.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제헌의회 때부터 세운 원칙이다. 그러나 불편부당과는 거리가 멀었던 지난 정부 검찰은 새 정부로 하여금 출범 일주일 만에 70년간 유지된 원칙을 손쉽게 바꾸도록 했다.
장차 검찰에 다가올 파고는 더 높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지난 6월 11일 ‘검찰청 폐지법’ 등 검찰개혁 패키지 법안을 발의했다. 당론은 아니라지만 이들 법안은 검찰개혁을 추진하며 민주당 일각이 체득한 어떤 결론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검찰은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기존 검찰청은 폐지되고, 수사 기능 없이 기소와 공소 유지만 담당하는 법무부 산하 공소청으로 재편된다. 수사 기능은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신설해 이관하기로 했다. 중수청과 기존의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수사 관할 문제는 국무총리 직속 국가수사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정리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약했듯 수사와 기소의 완전한 분리다. 이날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의원들은 오는 9월 정기국회 때 패키지 법안이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읽기에 들어간 ‘검찰개혁 시즌 3’의 관전 포인트를 살펴본다. 민주당 계열 정부에서 진행된 검찰개혁의 역사는 의도와는 다른 결괏값이 나오는 아이러니의 역사였다. 검찰이라는 ‘잘 드는 칼’을 이용하려는 정권의 욕망이 개혁 의지를 굴절시키기도 했고, 충실한 제도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개혁으로 가는 과정에서 새 정부가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장애물을 짚어봤다.
개혁은 사람이 하는 것
“개혁은 법과 제도로 하는 것.”
검찰개혁을 책임질 민정수석에 검찰 출신 오광수 수석이 내정되고 논란이 일자 대통령실은 이같이 답했다. 인사보다 법과 제도가 중요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역대로 보면 인사는 언제나 검찰개혁의 전초전이었다. 바뀐 제도를 운용하고 조정하고 안착시키는 것이 행정부의 일,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 후 법무부 첫 업무 보고에서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며 개혁을 시사했다. 이후 검찰에 큰 폭의 물갈이 인사가 진행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비검찰 출신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기수·서열 파괴 인사를 주도하며 개혁의 포문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인사를 통해 개혁 의지를 가장 극적으로 나타낸 정부였다. 취임 직후 대통령실 실장, 부처 장관 인사 등 핵심 인선도 발표하지 않은 상태에서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검찰총장보다 빨리 발탁된 중앙지검장은 이어진 검찰 간부 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윤석열 사단’을 모았고, 광범위한 적폐 수사를 벌였다. 문제는 수사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검찰이 서서히 개혁 대상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 변호사는 “문재인 정부 때는 검사 한 사람(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인사가 정부 부처의 거의 첫인사였다. 그것이 자기 발목을 잡았다”고 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검찰의 인적 쇄신은 개혁의 첫 관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쇄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전망도 있다. 배경에는 지난 정부 검찰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가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정부 때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성남FC 후원금 등 8개 사건, 12개 혐의로 기소돼 5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 수사에 참여한 검사만 연인원 150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검사장을 지낸 변호사 C씨는 “인적 쇄신도 애를 먹을 수 있다. (현 대통령) 수사를 했다고 다 내친다는 건 맞지 않지만, 옥석을 가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 권도현 기자
다른 변수는 특검이다. 이 대통령 취임 후 1호 처리 법안인 이른바 ‘3대 특검법’이 공포되면서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 상병 특검이 동시에 돌아가게 됐다. 검찰에서 특검으로 120명의 검사가 파견될 전망이다. 특검의 성패에 따라 문재인 정부 때 빚어진 ‘청산의 딜레마’가 반복될 여지가 있다. B 변호사는 “특검 파견 가서 공을 세우고 싶어하는 검사들도 있다. 그 사람들이 나중엔 무죄가 나올지언정 특검에서 공을 세우고 검찰로 돌아왔을 때, 정권에 도움이 되는 수사를 했다면 내칠 수 있겠느냐. 적폐 청산한다고 윤석열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 칼을 이용하다 문재인 정부도 실기한 게 아니냐”고 했다.
검찰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는 검찰개혁이 번번이 실패한 원인 중 하나였다. 역대 민주당 정부는 검찰 수사를 불신하면서도 검찰의 수사력에는 암묵적인 신뢰를 보냈다. 김대중 정부 때 여당이 된 국민회의는 야당 시절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자신들이 발의했던 특별검사제 도입을 철회했다. 당시 검찰이 야당인 한나라당을 거듭 수사하는 등 정권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여론이 악화되는 사건이 발생할 때도 정부는 검찰에 손을 내밀곤 했다. 2021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투기 의혹이 공분을 일으키자 문재인 정부는 직접 수사권이 없는 검찰을 배제하고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를 꾸렸다가 한 달도 못 가 검찰에 인력 투입을 지시했다. 커다란 개혁 여망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살아남은 이유다.
C 변호사는 “권력이 검찰 수사에 맛을 들이면 늪에 빠진다. 수사 성과를 내면 능력 있는 사람이니 인사로 배려하는 거고 사단이 만들어지고, 그러면 검찰 내부는 친정부 인사와 반정부 인사로 나뉜다. 검찰은 일종의 분쟁을 해결하는 기구인데 진영 논리에 빠져 이쪽, 저쪽으로 나뉘게 되면 검찰의 판단에 누구도 승복을 못 하게 된다. 그러다 조직의 존재 이유가 없어졌다. 자제하고 조심했어야 한다”고 했다.
구호보다 디테일에 달려
검찰개혁은 검찰을 대상으로 하지만, 형사사법 시스템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제도를 성기게 설계할 경우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간의 검찰개혁은 구호가 앞선 나머지 ‘디테일’이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단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 단계에서의 사건 적체와 처리 지연을 낳고 있다. 검찰이 하던 일이 경찰에 넘어갔지만, 인력은 넘어가지 않으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양홍석 변호사는 “변호사들은 피해자의 고소·고발도 대리하는데 가해자의 범죄 증거를 피해자 측이 거의 다 수집해서 가야 한다. 경찰은 사건이 자꾸 쌓이니까 적극적인 수사를 할 수 없는 상태고, 검찰 입장에선 경찰에 보완수사를 지시하는 것으로 사건을 털어버릴 수 있다. 매우 심각한 상태다”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하고 감독할 수 있는 권한(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대신 경찰이 수사한 사건에 대해 검사가 추가 수사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보완수사권)을 부여했다. 문언만 보면 개혁 전후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문구에는 없는 사건 수사에 대한 책임 소재 때문이다. A 변호사는 “수사지휘권이 있을 때는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내도 전산에는 검사의 사건으로 떠 있었다. 그러면 검사가 미제 사건을 줄이려고 빨리해달라고 경찰에 요청한다. 보완수사권이 있는 지금은 검사가 사건을 내려보내면 경찰 사건이 된다. 검사는 편하다. 예전엔 검사 미제 사건이 100~150건 됐는데, 지금은 20~30건밖에 안 되고 전부 경찰에 가 있다. 샐러리맨 검사가 늘고 있다”고 했다.
수사와 기소의 분리라는 일대 개혁 방향이 설정됐다면, 제도를 세심히 다듬어야 한다. 예컨대 신설될 공소청에 수사개시권(1차 수사권)만이 없는 것인지, 기소·공소 유지를 위한 보충적 수사권(2차 수사권)까지 없는 것인지 등도 현재로서는 불분명하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공소청법’에도 이 같은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수사지휘권과 보완수사권의 교통정리가 다시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러 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양상은 검찰이 직접수사를 거의 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면서, 무엇이 범죄인지를 아는 검사가 사법경찰관을 지휘해 범죄를 수사하는 형태다.
수사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안도 치밀하게 검토돼야 한다. 말 많고 탈 많던 검찰이 사라진 자리를, 다른 수사기관이 대체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중수청법’은 행정안전부 산하에 중수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행안부가 비대해질 수 있고, 불편부당해야 할 수사기관이 정권의 입김에 취약해질 여지도 있다. 수사기관 운용과 인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은 제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난 정부가 31년 만에 행안부 산하에 경찰국을 부활시켰듯이, 정권의 의도에 따라 수사기관의 독립성은 얼마든지 침해될 수 있다. 결국은 정권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사실 지난 정권에서 경찰청장과 서울경찰청장이 내란 주요 업무 종사자가 된 숨은 동인은 인사였다. 경찰국을 통해 빨리 승진한 인사들이 인사권자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정권의 의지에 달려 있다. 개혁 완수에 대한 의지만이 아니라 수사기관을 응징과 앙갚음에 활용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