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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난치병 환아 가족위한
병원 옆 쉼터 2호점 운영 초록나무
“우리도 그 아픔 알기에… 작은 위로전하고파”
희귀질환 난치병 환아 가족들에게 '병원 옆 쉼터'를 제공하는 공익법인 초록나무가 2023년 12월 첫 문을 연 서울 은평구의 1호 쉼터의 개소식을 한 아이가 바라보고 있다. 초록나무의 김의선 대표의 둘째 아들이자 소아암 환아인 윤호다. 골수 이식 1년 차에 쉼터 개소식에 참석한 윤호는 2층 다락방에서 다른 친구들의 보금자리가 될 공간을 함께 지켜봤다. 김 대표는 치료 중 환아 가족이 모텔이나 원룸을 전전해야 하는 막막한 현실에 보탬이 되기 위해 오피스텔 한 호실을 위탁 기증하는 형태로 쉼터 사역을 시작했다. 초록나무 제공

단란하고 평온했던 한 가족이 있었다. 오랜 소망의 끝에 아이 셋과 함께 제주도에 정착하던 5년 차에 날벼락 같은 일이 생기기 전까지. 열흘 넘게 열이 떨어지지 않던 초등학교 2학년 둘째 아들이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목회자 자녀로 자라 기독교 방송 PD가 될 만큼 신앙심이 단단했던 아버지마저 기도가 나오지 않았던 때, 그 가족을 일으켜 세워준 것은 주변 사람들이었다. 아이에게 꼭 맞는 조혈모세포를 공여해준 얼굴도 모르는 30대 중반의 남성을 포함해 엄마 빈자리를 채워준 이웃들, 기도하며 함께 울어준 직장 동료와 아이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 병실에서 동고동락한 환아 가족들과 의료진까지….

김의선 초록나무 대표의 아들인 윤호가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모습. 초록나무 제공

세상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위해 이 가족은 2024년 5월 공익법인 ㈔초록나무를 세웠다. 희귀질환 난치병 어린이와 청소년 가족에게 무상으로 병원 옆 쉼터를 제공하는 이 단체의 대표이자 3년 차 소아암 환아의 아버지인 김의선(44) 초록나무 대표는 13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갑자기 찾아온 불행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 갇힌 것같던 우리 가족에게 사랑과 응원을 보내준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작은 나눔일 뿐”이라며 “집을 떠나 병원 근처 모텔이나 원룸에서 지내야 하는 환아 가족들이 마음 편히 쉬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초록나무의 제주 쉼터의 모습. 초록나무 제공


초록나무의 제주 쉼터의 모습. 초록나무 제공

이날 기자와 만난 인터뷰 장소의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오피스텔 한 호실엔 김 대표의 가족이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위탁 기증해 운영하는 환아 가족 쉼터가 있다. 김 대표는 “5년 전 암으로 돌아가신 장모님의 소유로 돼 있던 것”이라며 “병원 옆 쉼터 지원 사업을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던 저에게 아내가 ‘후원을 받기보단 우리의 것을 먼저 내놓는 게 맞지 않겠냐’고 제안해 주었다”고 했다. 환아 가족이 머물 때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에 내야 하는 1만원도 초록나무에서 대신 내고 있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초록나무 1호 쉼터에서 2023년 12월 개소 감사 예배를 드리는 모습. 초록나무 제공

서울 은평구에 있는 초록나무 1호 쉼터 내부 모습. 2층 복층 구조로 돼 있다. 초록나무 제공

초록나무 환아 쉼터 2호점은 김 대표 가족이 사는 제주도에 있다. 치료로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환아 가족에게 여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제주 쉼터에서 김 대표의 아들과 함께 치료받던 가족이 머무는 등 한 달 4~5가정이 찾고 있다. 세살 배기부터 19살 청소년까지 다양하다. 김 대표는 “화가를 꿈꾸는 한 중학생 소아암 친구는 제주 쉼터에서 현직 작가와의 그림 수업을 연계해 주기도 했다”며 “그 아이가 큰 나무 아래 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우리에게 선물해 주기도 했는데 오랜 치료 동안 몸뿐 아니라 마음이 지친 아이에게 희망이 전해진 것 같아 참 뿌듯했다”고 했다.
최근 초록나무 제주 쉼터를 찾은 중학생인 소아암 환아가 쉼터에서 쉬는 자신을 그린 모습. 푸른 잔디 위에 서서 미소 짓는 모습에서 따뜻함이 전해진다. 초록나무 제공

초록나무가 소아암 등 환아와 그 형제자매를 위해 무료로 개최한 수업의 모습. 초록나무 제공

초록나무가 소아암 등 환아와 그 형제자매를 위해 무료로 개최한 수업의 모습. 초록나무 제공

초록나무는 쉼터 제공 외에 환아와 환아 가족에게 그림 수업, 감각통합 수업, 작가와 함께하는 영화관람 등 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입원 동안 자원봉사 대학생들과 함께한 미술과 만들기 수업 동안 김 대표의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김의선 초록나무 대표의 둘째 아들인 윤호가 입원 치료 중 병원 내 수업에서 그린 그림을 자랑하고 있다. 초록나무 제공

김 대표는 “가족 단위 봉사자가 환아 가족이 머문 자리를 정리해주고,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재능 기부로 아이들에게 5가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연말에 환아 가족과 난치병 전문의 등 의료진을 초청하는 ‘작은 음악회’, 난치병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배달하는 지원도 초록나무의 주된 사업이다.
지난해 10월 난치병 16가정을 초대한 초록나무의 작은 음악회 모습. 신희영 전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장과 함준수 전 한양대병원장 등 의료진이 참석해 환아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초록나무 제공

지난해 10월 난치병 16가정을 초대한 초록나무의 작은 음악회 모습. 어린이 연주자들이 환아 가족들을 위해 공연하고 있다. 초록나무 제공

한 그루의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500명에 달하는 후원자도 초록나무의 동역자들이다. 아픈 아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사업가와 목회자 등 이사진 8명도 없어서는 안 될 든든한 초록나무 식구다. 초록나무는 내년에 서울 경기 지역 어린이병원 인근에 3호 쉼터를 연다는 계획도 세웠다. 김 대표는 “전국 어린이병원이 있는 14곳에 쉼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의선 초록나무 대표의 둘째 아들인 윤호가 서울대병원에서 조혈모세포(골수) 이식 후 퇴원하며 환아와 보호자, 의료진에게 솜사탕을 선물하는 모습. 초록나무 제공

지난 5월말 열린 초록나무 2주년 기념식 단체 사진. 병원 옆 쉼터 사업을 응원하는 '초록나무 가족들'이 제주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했다. 초록나무 제공

14년간 극동방송 PD로 일했던 김 대표는 초록나무를 위해 하던 일을 그만뒀다. 그는 “타지에 있는 어린이병원에서 장기간 병원 생활을 하면서 식구들이 각자 흩어져 지내거나 병원 근처 임시 숙소에서 머물러야 할 수밖에 없는 환아 가족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결심한 일이지만, 둘째가 막 회복한 시점에서 생업 등을 내려놓았기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초록나무 김의선 대표가 13일 서울 은평구의 한 카페에서 공익법인 설립 과정 등을 설명하고 있다. 신은정 기자

초록나무 설립에 수많은 돕는 손길이 있지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사단법인 출연금이나 쉼터 2곳의 관리비, 수업 운영비 등 현실이 그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부터 제주공항에서 새벽과 야간에 수화물 정리하는 일을 시작했다. 인터뷰와 어린이병원 선물 전달 등 서울 일정을 소화하려고 귀경한 이날도 전날 자정이 다 되도록 일했다. 그의 손톱 밑엔 까만 기름 자국이 선명했다. 김 대표는 “아픈 아이의 부모가 되면 겪게 되는 마음도, 현장 일을 하면서 맞닥뜨린 어려움도 모두 해보기 전까지 몰랐던 것들”이라며 “아들이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고, 치료하고, 퇴원하는 과정에서 우리 가족이 받은 사랑과 은혜에 비하면 지금 초록나무를 통해 나누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성경 마가복음 4장 31~32절처럼 땅에 심긴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가지를 내는 나무로 자라나 생긴 그늘에 새들이 깃들 수 있도록 초록나무 가족들과 힘을 모으고 싶다”고 했다.

초록나무의 제주 쉼터를 청소하는 자원 봉사단 '그린 마더스'의 한 가족이 봉사하는 모습. 초록나무 제공

초록나무의 제주 쉼터를 청소하는 자원 봉사단 '그린 마더스'의 한 가족이 봉사하는 모습. 초록나무 제공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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