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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트렌드 트렌드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가치를 반영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모호함을 밝히는 한줄기 단서가 되기도 하고요.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트렌드를 건져 올립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처음엔 운동화 한 켤레만 있었는데, 이젠 각종 러닝 용품을 모으고 있어요”
코로나 이후 5년째 러닝을 즐기고 있는 직장인 권순호(31) 씨는 자신을 ‘장비빨 러너’라고 소개합니다. 연습용·대회용·트레일용까지 러닝화만 세 켤레에 스포츠 고글, 플라스크 물병, 러닝 조끼 등 장비도 하나둘씩 장만했죠. 스마트 워치, 이어폰 등 기기는 기본이고요. 지난 3월엔 바르셀로나 마라톤 참가를 위해 스페인까지 다녀왔다고 해요. 그는 이처럼 달리기와 관련한 소비를 통해 ‘러너’라는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러닝은 운동화 하나면 충분한 가성비 운동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대 규모의 소비 생태계를 형성한 하나의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유통·스포츠 업계는 국내 러닝 인구를 1000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러닝화 시장 규모만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운동화에서 출발한 시장이 이제 패션·기기·헬스케어·여행이 결합하면서 이른바 ‘런코노미(Run+Economy)’라는 새로운 경제 영역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습니다. 오늘 비크닉에서는 러닝이 만들고 있는 새로운 소비 지형을 따라가 보려 합니다.
푸마가 운영하는 러닝 크루 '런푸마팸'. 푸마
패션과 기능의 경계 허물다…일상 스며든 ‘러너 룩’ 예전엔 아무 티셔츠나 입고 뛰던 사람들이 이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러닝 전용 장비로 무장하고 달립니다. 과거 ‘아저씨 셔츠’라 불리던 싱글렛은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돌아왔고, 트레일 러닝·철인 3종 경기 등 다양한 종목의 인기가 높아지며, 초경량 바람막이, 러닝 베스트, 스포츠 고글 등 전문 장비가 주목받고 있죠.
살로몬 러닝용 베스트와 나이키 싱글렛. 살로몬·나이키 홈페이지
호카 등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를 유통하는 조이웍스의 김만희 마케팅본부 이사는 “러닝 모자·싱글렛·반바지 등 관련 의류·액세서리의 올해 1~5월 매출이 전년 동기대비 50~100% 증가했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조이웍스는 올해 3월 서울 서교동에 러닝 전문 편집샵 ‘아웃오브올’을 새롭게 열며 수요 확대에 대응하고 있죠.

러닝 의류 시장이 커지면서 기능성 의류가 아니라 하나의 패션 스타일로도 소비되고 있는 것도 또다른 변화입니다. 이른바 기능성과 감각을 모두 갖춘 ‘러닝코어(Running-core)’ 패션입니다. 레깅스·조거 팬츠·브라톱 같은 러닝 아이템들이 일상복으로 자리 잡으며, 러너의 정체성은 이제 운동장뿐만 아니라 거리에서도 드러나게 된 겁니다.
조이웍스가 지난 3월 문을 연 '아웃오브올' 내부 모습. 조이웍스
러닝도 장비빨…프리미엄 웨어러블부터 헬스케어 시장까지 단지 옷뿐 일까요. 시장의 진화는 웨어러블 기기와 헬스케어 산업의 성장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GPS 전문 브랜드 ‘가민’의 대표 제품인 스마트워치는 100만원 대 되는 가격에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가민의 지난해 글로벌 매출은 전년 대비 20% 성장한 약 8조1900억원을 기록했죠. 또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 앤 설리번’은 오픈형 이어폰 브랜드 ‘샥즈’가 2023년 해당 카테고리에서 전 세계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장비’를 중시하게 된 건 러닝의 목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심박 수, 페이스, GPS 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기록하면서 성과를 추적하고, 부상 위험도를 낮추는 방식이 대중화된 것이죠. 나이키 관계자는 “과거엔 성취 지향적 러닝이 중심이었는데 최근엔 영양과 웰니스를 중시하고, 코칭을 통한 지속가능한 러닝 방식을 추구한다”고 전했습니다.
스마트 워치 '가민'과 오픈형 이어폰 '샥즈'. 가민·샥즈 홈페이지
장거리 러닝 인구가 늘면서 체력 보강을 위한 보조 제품도 덩달아 호재를 맞았습니다. GS25는 에너지젤·비타민·아르기닌 등 에너지 보충 식품의 지난 5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90.1% 성장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자 제약사와 헬스케어 브랜드들도 ‘러닝 마케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드라이 샴푸 브랜드 ‘바티스트’는 지난달 열린 ‘나이키 애프터 다크 투어’에 홍보 부스를 열었고, 건강기능식품 ‘콘드로이친’은 러너를 위한 제품이라고 홍보하고 있죠.
요헤미티 에너지젤. 요헤미티
러닝 목적으로 여행한다…런트립이 바꾼 여행 풍경 러닝은 어느새 운동을 넘어 여행 트렌드까지 바꾸고 있습니다. 단순 관광에서 벗어나 도시의 자연과 문화를 달리며 체험하는 ‘런트립(Runtrip)’이 새로운 문화로 떠오르고 있죠. 글로벌 여행 플랫폼 ‘스카이스캐너’가 지난 4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러너의 55%가 러닝을 목적으로 여행할 의향이 있고, 이 중 22%는 해외 런트립을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런트립의 대표주자가 보스턴·뉴욕 등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입니다. 여기에 참가하기 위한 러너들이 늘면서 여행사들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NOL 인터파크투어는 올해 1~5월 기준 러닝 관련 패키지 참가자가 전년 대비 무려 655%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하나투어의 ‘2025 오사카 마라톤’ 상품은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기도 했죠. 호카 역시 올해 2월 홍콩 관광청과 협업해 러닝 행사인 ‘홍콩 아웃도어 페스티벌’을 열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홍보를 진행했습니다. 행사를 운영한 김 이사는 “런트립은 지역 구석구석 경험할 수 있는 콘텐트라 각국 관광청의 관심이 높다”고 했습니다.
삿포로 마라톤 모습. NOL 인터파크투어 홈페이지
브랜드가 만드는 커뮤니티…정체성 담은 러닝 대회까지 판이 커지면서 브랜드들도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 커뮤니티 구축에 나서고 있습니다. 나이키의 ‘나이키 런 클럽(NRC)’은 전 세계 러너들이 소통하고 러닝 기록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고, 호카(호카런클럽), 푸마(런푸마팸), 아디다스(러너스 서울) 등도 자사 브랜드 중심의 러닝 모임을 운영 중입니다. 소비자 일상 속에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려는 전략입니다.

이젠 아예 브랜드 이름을 내건 마라톤 대회도 열리고 있습니다. 굽네치킨을 운영하는 지앤푸드는 지난달 18일에 ‘굽네 오븐런’을 열어 참가자들이 오븐을 테마로 만든 코스를 달리며 오븐 치킨이라는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했습니다. 지난 4월엔 키움증권이 마라톤을 뛰면 주식을 선물로 주는 ‘키움런’을, 우아한형제들은 지난해 ‘장보기오픈런’으로 배민B마트를 홍보했죠.
굽네치킨이 연 '굽네오븐런' 베스트 드레스 시상 모습. 지앤푸드
산업 경계 허무는 러닝…진짜 ‘런웨이’가 열렸다 코로나가 촉발한 러닝 열풍은 이제 단순한 유행이 아닌 하나의 복합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운동과 건강이라는 본질에 패션·IT·헬스케어·식품·여행 등 다양한 산업이 접목되면서 하나의 산업 카테고리로 자리 잡은 셈이죠. 러닝을 중심으로 한 산업 융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요즘엔 어떤 산업이든 ‘러닝’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주목받는 분위기”라며 “달리는 순간뿐만 아니라 러닝을 준비하는 ‘pre-run(러닝 전)’ 시장과 러닝을 마친 뒤 회복을 위한 ‘post-run(러닝 후)’ 시장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어요.

러닝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 진화 중인 이 시장은 앞으로 또 어떤 산업과 맞물려 성장하게 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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