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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의 즐거운 건강
병원 외래에서 진료하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지인에게서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을 선물로 받았는데 먹어도 되겠습니까.” 건강을 챙겨 준 마음은 감사하지만, 환자이다 보니 선뜩 먹기가 조심스러워 의사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치료가 끝났지만 여전히 재발을 가장 두려워하는 암 생존자들도 부작용이 있을까 걱정한다.

대표적인 건기식인 비타민 및 무기질 제품의 생산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여 2024년 건기식 생산액 1위를 차지했다. 웰에이징(Well-Aging)에 관심이 늘면서 피부 건강, 인지능력 향상 관련 제품의 매출액도 전년 대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건기식의 2024년 생산액은 2조7618억원으로 지난해과 유사한 수준이다. 건기식 사업자들이 최근 소비 침체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독보적인 히트상품’이 없고, 건기식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 판매업체가 급증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베타카로틴제 먹었더니 되레 폐암 발생
이런 가운데 건강을 위해 먹은 종합비타민이 오히려 조기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되기도 했다. 메릴랜드주 국립암연구소에서 건강한 성인 40만 명을 대상으로 20년간 진행한 연구 결과, 매일 종합비타민을 먹을 때 사망 위험이 4% 증가했다.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연구 결과들이 발표된 적이 있다. 유명한 사례가 베타카로틴과 폐암과의 관계이다.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채소를 섭취하면 폐암이 예방된다는 연구 결과에 근거해 베타카로틴 보충제만 먹었더니 오히려 폐암 발생이 늘었다는 것이다. 과일과 채소를 음식으로 섭취할 때 채소에 함께 있는 항산화물질 등 파이토케미칼(Phytochemicals)이 암 예방 효과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 탄생 때부터 지구라는 자연환경에서 과일과 채소 그대로 흡수해서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한 유전자와 시작된 수많은 경험의 결과이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는 “건강을 위해서는 다양하고 균형 잡힌 식단을 통해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즐거운 건강
만성질환자가 매일 먹는 고혈압·당뇨·이상지질혈증 의약품들은 실험실 연구이나 동물실험 등 수많은 비인체(非人體) 연구, 수많은 환자의 임상시험 등을 통해 검증되어 임상 수치를 개선하고 수명을 늘리는 것으로 확인된 약들이다. 지금은 매우 효과적이면서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들이 보급되고 있다. 반면, 건기식은 식약처가 인정한 인체에 유용한 원료나 성분을 사용해 제조하지만, 이러한 절차를 통해 검증되지 못했다. 따라서 건기식을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 의약품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의약품들은 효능만이 아니라 비용-효과 분석을 통해 비용 대비 효과가 검증되어야만 건강보험 적용의 대상이 되지만, 건기식은 이런 과정이 없다. 만성질환 약제에 비해서도 비싸다.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권장하지 않는 이유다.

이제는 건기식도 건강인이나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결과를 제시해야 소비자로부터, 의료진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식약처에서는 건기식 임상시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건기식 회사들은 이 기준에 따라 철저하게 임상시험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지에 투고해 전문가들에 의한 검증을 받아 그 결과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한다. 자신 있게 도전하는 기업에만 생존과 성장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 최근 적당량 섭취할 경우 인체에 이로움을 주는 것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프로바이오틱스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임상 연구를 통해 검증된 결과들이 발표되기를 기대한다.

환자마다 유전자의 표현형(phenotype)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약제에 따라서 효능과 부작용도 다르다. 건기식 소비자들을 등록해 효능만이 아니라 부작용을 단기적으로, 장기적으로 추적 관찰하고 분석해 맞춤 건기식을 추천하고 개선점을 찾는 노력도 중요하다. 건기식 기업들이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는 의지가 필요한 때다.

항산화 성분 함유한 호두, 암 예방에 탁월
건강을 먹는 것으로 쉽게 챙기려는 생각에 몸에 좋은 거로 뭘 먹을까, 뭘 선물할까, 고민할 때 건기식을 찾곤 한다. 건강한 식단과 운동을 무시한 채 건강의 묘약만을 쫓아서는 건강해질 수 없다. 건기식보다는 ‘채소·과일 100g 더 먹기’ ‘1000보 더 걷기’가 더 효과적이며 경제적이다. 예를 들면, 한국인도 즐겨 먹는 견과류 호두는 엘라지타닌(ellagitannin)과 같은 항산화 성분이 있어 암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호두를 먹으면 얻을 수 있는 건강의 이점이 많지만 위험은 거의 없다. 단, 견과류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피해야 한다. 운동은 단순히 신체적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도 높인다. 꾸준하고 규칙적인 운동이 건강에 더욱 효과가 뛰어나다. 건강한 음식과 운동은 많은 임상 연구를 통해 검증된 명품 건강법이다. 건강한 노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늦기 전에 건강한 음식 섭취와 함께 적절한 신체 활동을 유지하자. 그래도 건기식을 먹고자 한다면,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가격 대비 효과를 고려하는 것이 현명한 소비 선택이다.

윤영호 서울의대 교수.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장. 서울의대 교수이자 서울대병원 가정의학 전문의이다. ‘연명의료결정법’ 법제화에 앞장서기도 했다. 『삶이 의미를 잃기 전에』 『나는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습관이 건강을 만든다』 『명품건강법』 등 다수의 저작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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