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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대선 ‘신 스틸러’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대선 패배에 대해 “비상계엄을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과 신속히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것이 큰 이유”라고 꼽았다. 김정훈 기자
6·3 대선 개표 방송에선 결과 못지않게 이목을 끌었던 장면이 있다. 텅 빈 당사 앞자리에 홀로 앉아있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의 모습이다.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 큰 차이의 패배가 예상되자 지도부 인사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는 가운데 그는 남았다.
안 의원은 이번 대선의 ‘신스틸러’였다. 경선 탈락 후 열심히 김문수 대선후보를 돕는 모습이 사분오열 분열된 당의 상황과 대비됐다. 후보 단일화를 위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찾아가기도 했다. ‘과거와 달라졌다’는 호평과 향후 당권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동시에 나왔다. 대선 후, 국민의힘 내홍이 격화되고 있는 11일 안 의원을 만났다. 대선 소회와 당의 쇄신 방안 등을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대선을 본인 선거처럼 뛰었다는 평이다.
A :
“나는 늘 그랬다.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 때도, 오세훈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열심히 도왔다. 그런데 이번에 유독 ‘안철수가 달라졌다’는 반응들이 나와서 ‘왜 그럴까
?’하고 생각했다.”
Q : 왜 그런 것 같나.
A :
“예전에는 비교군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4강 후보 중 공교롭게도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하와이로 갔고, 한동훈 전 대표도 이탈한 듯 비쳤다. 이들과 비교가 되면서 부각된 것 같다.”
Q : 일각에선 차기 당권 등을 염두에 둔 움직임이라고도 본다.
A :
“내가 도운 이유는 딱 하나다. 그것이 조직에 몸담은 사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27세에 대학교수가 되어 대학이라는 조직에 있었고, 벤처 기업도 창업했다. 정당도 만들었다. 평생 조직 생활을 해보니 조직에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됐다.”
Q : 그게 뭔가.
A :
“좋은 일은 물론이고 나쁜 일도 함께 겪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3사 출구조사가 발표되고, 10분 정도 지나니까 첫째 줄에 나만 앉아 있더라. 우리 당 지지자들도 보고 있을 텐데 이게 뭔가 싶었다. 나까지 따라 나가면 당 전체가 욕을 먹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만이라도 김문수 후보가 승복 선언을 하러 올 때까지는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3특검, 국민 통합에 악영향 끼칠까 염려돼
3일 출구조사 발표 후 국민의힘 주요 지도부가 자리를 뜬 가운데 개표방송을 지켜보는 안철수 의원. [사진 국민의힘 유튜브 캡처]
Q : 중간에 일어설 생각은 한 번도 안 했나.
A :
“후보가 오기 전에 화장실이라도 가면, 나가는 모습만 부각될 것 같았다.(웃음) 맨 앞줄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당과 지지자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Q : ‘앙숙’인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를 찾아간 것도 화제가 됐다.
A :
“앙숙 아니다.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나를 비난하고 나는 별 대응하지 않았다. 물론 개인적인 감정은 불편하다. 그래도 승리하려면 후보단일화가 필요하니까, 그런 감정은 접고 갔다. 정치는 공적 업무 아닌가. 그렇게 안 하는 게 이상한 거다.”
Q : 이런 면이 진작 부각됐으면 경선에서 더 선전했을 거란 말도 나온다.
A :
“조직이 없으니 경선에 한계가 있었다. 정치를 거대 양당에서 시작해서 4선 의원이 됐으면 조직도 꽤 있었을 텐데
…(웃음) 결국 내 잘못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Q : 대선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나.
A :
“일단 감사드린다. 우리가 부족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41
%의 국민이 지지해주셨다. 또, 51
%의 국민이 이재명 후보를 막아야 한다는 뜻을 보여주셨다. 나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재명 대통령에게 염려되는 점이 많다.”
Q : 무엇인가.
A :
“이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하겠다면서 한편에선 바로 대규모 특검을 가동한다. 물론 특검이 필요한 측면이 있지만 자칫 정치 보복으로 흘러 국민통합에 매우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기본 사회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시즌 2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헌법재판관 후보군에 자신의 변호인을 집어넣은 것도 문제다. 중소기업도 이사회 구성을 그런 식으로 못한다. 하지만 일단 당선되었으니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국민의 삶도 나아진다. 다만, 국민의 절반가량이 반대했다는 걸 늘 되새겼으면 한다.”
Q : 단점도 적잖게 드러난 이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A :
“위헌적인 계엄의 충격이 컸는데, 이를 저지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관계를 신속히 정리하지 못한 채 선거를 치렀다. 이게 패배의 가장 큰 이유다. 김문수 후보가 뒤늦게 스탠스를 바꾸긴 했는데 너무 늦었다. 사실 탄핵에 반대했던 분은 경선에 참여하면 안 됐다.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하고 치르는 대선인데, 탄핵 반대 인사가 참여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대선 패배 후 진로를 놓고 국민의힘은 내홍에 휩싸인 상태다. 김용태 비대위원장의 거취와 당 혁신 등을 놓고 친윤계와 친한계가 대립하고 있다. 이날도 결론을 내기 위한 의원총회가 예정됐다가 취소됐다.
Q : 국민의힘 진로를 놓고도 격론 중이다.
A :
“비대위를 지속할 수도, 조기 전당대회를 열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더 시급한 것은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한 대국민 사과다.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뭘 해도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많은 조직에 있어 봤는데, 이렇게 큰 위기에 놓이면 일단은 계파를 떠나서 조직을 살릴 궁리부터 한다. 그런데 여기는 여전히 대장이 누구고, 계파가 어디라는 걸 따지면서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럴 때가 아니다.”
Q : 당과 여론의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A :
“이 당에 와서 느낀 게 ‘중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다. 내가 제3당을 해봐서 잘 안다. 중도는 분명히 있다.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스윙보터다. 지난 총선과 이번 대선에서 보지 않았나. 이제 보수층만 잡아선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Q : TK(대구·경북) 중심의 친윤계가 눈총을 사고 있다.
A :
“윤석열 정부를 탄생시킨 정당이다 보니 친윤계, 또는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엔 계파라고 할 만큼 조직적으로 움직이진 않지만, 그분들이 한마디씩만 해도 의원총회 분위기가 기운다.”
컴퓨터 백신 바이러스 보급으로 유명했던 안 의원은 2011년 ‘청춘콘서트’ 등을 통해 청년 세대를 위로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2012년 제3세력으로 대선에 도전했다가 쓴맛을 봤다. 이후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등을 창당하며 정치 도전을 이어갔다.
Q : 정치권 ‘러브콜’도 많았는데 제3세력으로 시작했다.
A :
“당시엔 양당이 상대방 실수로 별 노력도 없이 정권을 주고받았다. 이런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았고 나도 그랬다. 3당을 만들어서 외부에서 자극을 주고,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싶었다. 그런데 10년 정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 한국의 선거 제도가 양당제에 유리하다. 한계를 느꼈고 제3당으로 계속하는 게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에 2022년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에 들어왔다.”
‘정치는 가장 위대한 자선’ 전 교황 글에 재기 Q : ‘멘토’ 안철수로 남아있는 편이 좋았을 거라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A :
“바깥에선 정치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서울대 교수나 하지, 왜 저렇게 정치에 매달리나 싶을 거다. 사업도 잘 성장하고, 서울대 대학원장 자리도 얻으니 솔직히 별로 부족한 건 없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다르더라. 망하는 기업도 많고, 특히 좌절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았다. 뭔가 돕고 싶어서 ‘청춘콘서트’를 열었는데, 결국 할 수 있는 건 조언뿐이었다.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모욕과 조롱을 당하더라도 정치판에 들어가서 뭔가 바꾸는 게 조언보다 낫겠다고 생각했다.”
Q : 시행착오도 많았다. 정치에 뛰어든 걸 후회한 적은 없나.
A :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한 번 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패배하고 독일에 갔을 때다. 1년 반 정도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있다가 한국에 돌아갈 때가 되니까 정치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다시 벤처업계나 학교로 돌아가는 게 나을지 확신이 안 섰다. 하도 고민이 되어서 바티칸에 가서 추기경 한 분을 만났다.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그간의 사정과 고민을 쭉 털어놨더니 책 한 권을 주시더라. 프란체스코 교황의 신년사였는데, 읽다가 눈이 딱 멈췄다. ‘정치는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자선이다(politics is the highest and greatest form of charity)’라는 문장에서다. 정치를 시작할 때 애초에 뭔가 대가를 얻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마음을 다시 다지고, 2020년 1월 귀국해 정치를 재개했다.”
Q : 향후 정치인 안철수의 당면 목표는 뭔가.
A :
“당에 뿌리를 더욱 제대로 내리는 거다. 과거 제3당 때와 다른 것이 의원들과 매일 밥을 한 번씩 먹는데도 석 달이 걸린다. 이런 차이를 빨리 극복하지 못해서 ‘사교성 없는 사람’으로 비친 것 같다. 내가 어떤 정치인이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동료 의원들과 충분히 소통하고, 우군을 많이 얻고 싶다.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중앙일보
유성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