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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을 한들 내 말이 먹히겠어요?”

문재인 정부에서 요직을 역임한 여권 인사에게 최근 이재명 정부 인사에 관해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친문재인계 핵심 중 한 명이었던 그는 6·3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산하 보직에 이름을 올리긴 했다. 하지만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 시절 그와 함께 뭉쳤던 동료 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2023년 12월 14일 정태호 당시 더불어민주당 민구연구원장(앞줄 왼쪽)과 전해철 당시 민주주의 4.0 연구원 이사장(앞줄 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린 민주주의 4.0 연구원 창립 3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지금은 비이재명계로 통칭하는 비주류지만, 그들도 한때는 잘나가던 주류였다. 빛나던 시절 그들이 뭉쳐 만든 게 ‘부엉이모임’이다. 문재인 정부 2년차인 2018년 7월 친문계 중에서도 핵심만 모였다는 ‘부엉이모임’의 등장은 여의도 정가에서 큰 화제였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홍영표 전 의원과 이른바 ‘3철’ 중 한 명인 전해철 전 의원, 구(舊) 친노에서 친문으로 거듭난 김진표 전 국회의장, 도종환·박광온·강병원·신동근 전 의원, 윤호중·권칠승·김종민·박범계·황희 의원 등이 주축으로 참여해 당시 힘깨나 쓴다던 여권의 주력 인사가 모인 까닭이었다.

‘부엉이모임’이라는 이름 자체도 화제였다. 이름 유래를 두고도 다양한 설이 나왔기 때문이다. ‘달(Moon·문 전 대통령을 지칭)을 지키는 부엉이’에서 이름이 나왔다는 분석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장소인 부엉이바위를 잊지 않기 위해 작명했다는 분석까지 스토리가 다양했다.

하지만 계파 다툼으로 당이 분열됐던 트라우마 탓에 당내 비판 여론이 컸고, 결국 “밥 먹는 모임”이라는 해명만 남긴 채 해체를 선언했다. 물론 완전한 해체는 아니었다. 그들만의 비공식 모임은 이어졌다.

2020년 총선 후보 공천 과정도 부엉이모임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었다.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위성정당을 출범시키려고 하자, 민주당도 위성정당으로 맞불을 놓자는 논의도 이 그룹에서 나왔다. 총선 결과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대거 당선되면서 모임의 몸집도 커졌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왼쪽)과 권칠승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각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냈다. 연합뉴스

2020~2021년 전해철 전 의원과 권칠승·박범계·황희 의원이 각각 행정안전부·중소벤처기업부·법무부·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입각하면서 부엉이모임은 자타공인 실세그룹으로 거듭났다. 비슷한 시기 4기 민주정부 재창출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민주주의4.0 연구원’이란 자체 싱크탱크도 출범시켰다.

그러나 당시 비주류였던 이재명 대통령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이 대통령과 친노·친문의 악연은 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통령은 당시 성남시장 후보 경선 경쟁자였던 노무현 정부 국정홍보처장 출신 김창호 후보가 경선 절차의 공정성을 문제삼은 탓에 재심 끝에 겨우 공천장을 받을 수 있었다.

2018년 경기지사 경선에서 갈등은 본격화했다. 당시 경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전해철 의원 사이에 ‘혜경궁 김씨’ 논란 등 네거티브 공방이 고발전으로 비화하며 갈등이 극심했다. 같은 해 8월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진표 전 의장은 당시 조폭연루설 등에 휘말린 이 대통령에게 “여권에 큰 부담”이라며 탈당을 촉구하기도 했다. 친명계 중진 의원은 “경기지사 경선이 이 대통령 사법 리스크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2023년 1월 31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의 길 1차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홍영표 당시 민주당 의원. 뉴스1

갈등은 2021년 대선 경선 때 심화했다. 부엉이모임 출신 의원들은 당시 이 대통령의 기본소득 공약을 “민주당의 복지국가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일부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캠프에 합류해 이 대통령의 대장동 비리 의혹을 파고들었다.

결국 후보로 선출돼 본선에 나섰지만 패한 이 대통령이 3개월 만에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하고 당선 뒤에도 양측은 충돌했다. 이 대통령이 전당대회에 도전하려 하자 부엉이모임 의원들은 불출마를 요구했다. 이후 이 대통령이 서서히 당권을 장악하는 도중에도 친문계 중심의 비명계는 이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와 당 운영 방식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며 견제 세력으로 남았다.

하지만 2023년 9월 이 대통령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민주당 내부에서 최소 39표의 이탈표가 있었는데, 이를 찾아내려고 대대적인 색출 바람이 불었다.

그러다 결국 2024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부엉이모임은 결정타를 맞았다. 당원 표심이 반영된 후보 경선에서 모임 소속 상당수가 고배를 마셨다. 일부는 탈당 후 새로운미래(현 새미래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했으나 김종민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낙선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체포동의안 가결에 관해 “검찰과 당내 일부가 짜고 한 짓”이라며 “결국 총선에서 정리됐다”고 말했다.

2023년 9월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총 투표수 295표, 가 149표, 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가결됐다. 뉴스1

부엉이모임 의원 중에선 이 대통령과 거리를 좁힌 이들도 있다. 이재명 지도부 1기 때 권칠승 의원은 수석대변인, 정태호 의원은 민주연구원장, 한병도 의원은 전략기획위원장에 발탁됐다. 다만, 이들은 지난 7일 이 대통령과 1·2기 당 지도부 만찬에 참석하지 못했다. 전재수 의원의 경우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이 유력하고, 대선 때 총괄선대본부장을 지낸 윤호중 의원은 법무부 장관 하마평에 올랐다. 지난해 총선에서 생환한 나머지 의원들은 튀지 않는 조용한 행보 중이다.

매달 1회 모임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민주주의4.0 연구원도 최근 재정비에 들어갔다. 민주주의4.0 이사장인 송기헌 의원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조기 대선 등 일정으로 활동을 중단한 상태”라며 “당초 연구원 설립 목적이었던 4기 민주정부가 출범했으니 앞으로의 진로를 어떻게 할지는 좀 더 논의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민주주의4.0 소속 한 의원은 “당이 지금처럼 친명 일변도여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 아래 향후 우리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의원도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년 전당대회 무렵엔 다른 목소리들이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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