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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
문재인 정권 안보라인 수사 ①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왼쪽부터),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월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 1심 선고를 마치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윤석열이 ‘12·3 내란’으로 탄핵소추돼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결정으로 파면됐습니다.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도 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국민에게 단 한 마디의 사죄도 하지 않습니다. 반성은커녕 온갖 궤변으로 법치를 조롱하고, 극렬 지지자들에겐 궐기를 촉구합니다. 나라가 어찌 되든 말든 저만 살면 된다는 식입니다. 어떻게 이런 후안무치한 대통령이 나왔을까요.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윤석열 내란의 뿌리를 추적해 봤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4일 만인 지난 4월8일 검찰은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정의용은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1972년 외무부 공무원이 된 이래 통상·다자 분야에서 활동한 외교 전문가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이를 오가며 2018년 3월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국내 언론들은 그를 가리켜 ‘한국의 키신저’라고 했다. 1970년대 초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미국의 헨리 키신저에 견줄 만하다는 평가였다. 그런 그를 윤석열 검찰이 겨냥한 건 문재인 정권의 대북 정책에도 ‘사법적 타격’을 가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황교안, 2017년 조기 대선 직전에 사드 기습 배치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김태훈)는 정의용이 문재인 정권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정식 배치 지연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권 출범 직전인 2017년 4월26일 경북 성주에 사드 발사대 2기가 기습 배치됐는데, 새 정권에서 나머지 4기가 마저 배치되는 것을 고의로 지연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사드 체계는 발사대 6기와 사격 통제용 레이더, 교전통제소로 1개 포대를 구성한다). 검찰은 정의용이 서주석 당시 국방부 차관과 함께 ‘군사기밀’을 사드 반대 주민들과 시민단체에 알리도록 실무자에게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군사기밀인 사드 발사대 배치 일정을 알려줘서 주민들이 이를 막으려고 ‘무력시위’를 하는 바람에 사드 배치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사드 발사대 기습 배치는 2017년 3월10일 박근혜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황교안의 작품이었다. 주민들이 사드 배치에 강하게 반대하자 한밤중에 기습적으로 단행했다. 조기 대선(2017년 5월9일)을 불과 13일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앞서 박근혜 정권은 사드 배치 결정에 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했다. 사드 레이더 전자파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한 뒤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2016년 7월15일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가 경북 성주군청을 방문해 사드 배치 주민설명회에 참석하려다 반대 시위에 막혀 현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성주/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문재인 정권 첫 국방부 차관으로 임명된 서주석은 그해 6월27일 성주로 내려가 주민들을 만났다. 주민들은 ‘발사대 추가 배치를 기습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서주석에게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따졌다. 주민들은 어떤 물품이 사드에 반입되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래야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있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기지에 드나드는 물품은 골프장을 군부대로 만드는 데 필요한 공사 장비와 기지 주둔 미군들이 사용할 일상용품 등이었다. 외부에 공개되더라도 국가안보가 위태로워질 정보는 아니었다.

주민들은 나머지 발사대를 배치할 때는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하고, 배치 계획도 미리 알려달라고 요구했다. 서주석의 보고를 받은 정의용은 회의를 거쳐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와 기지 보강공사 자재 반입을 사전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드 배치의 가장 큰 피해자인 주민들의 알권리를 존중한 조처였다. 실제로 문재인 정권은 2017년 9월7일 발사대 4기 추가 배치 때 일정을 미리 공개했다. 투명한 정책 집행이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윤석열 사단, “사드 반대 단체에 이적단체 포함” 강조

윤석열 검찰은 주민의 알권리 따위는 관심 없다는 태도다. 검찰 발표 내용 중 눈에 띄는 건 ‘사드 설치 반대를 주도한 6개 주요 단체에 대법원이 이적단체로 판결한 단체도 포함됐다’는 대목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권의 안보 라인이 ‘반미나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외부 세력이 사드 반대 단체를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받고도 군사작전 정보를 누설했다’고 했다. 결국 문재인 정권이 ‘이적단체’를 이롭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이 사건 수사는 윤석열 정권의 정치보복 수사 패턴을 그대로 따랐다. ‘감사원 감사→검찰 수사’로 전 정권 인사들을 겨냥한 수법이다. 탈원전 수사(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국민권익위원회 감사(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통계조작 의혹(김상조 전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등에서 반복된 패턴이다.

윤석열 정권 들어 정권의 돌격대로 변신한 감사원이 먼저 나섰다. 유병호 사무총장(현 감사위원)이 이끄는 감사원 사무처는 2023년 10월 보수 성향 군 장성 모임인 대한민국수호예비역장성단의 공익감사 청구를 받아들여 감사를 시작했다. ‘공익감사청구’는 사무처가 감사 개시를 결정한다.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의 결정으로 감사를 개시하는 ‘국민감사청구’와 다르다. ‘공익감사청구자문위원회’가 있지만 이 기구는 결정권이 없다. 사실상 감사원 사무처 마음대로 감사를 결정한다.

감사원은 1년 뒤인 2024년 10월 정의용 등을 대검에 수사 요청했다. ‘수사 요청’은 감사위원회의 의결이 필요한 ‘고발’과 달리 감사원 사무처가 직권으로 할 수 있다. 감사원 감사사무 처리규칙(65조)은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인정될 때만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을 수 있다’고 돼 있다. 당장 구속해야 할 피의자가 아니면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식으로 고발하라는 취지다. 하지만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는 감사원 최고 의결기구인 감사위원회의를 ‘패싱’하기 위해 수사 요청을 남발했다. 전 정권을 겨냥한 감사에서 거의 예외 없이 이런 편법을 썼다.

2022년 10월6일 사드 기지 입구인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 도로에 사드 장비를 실은 군용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감사원 요청→검찰 수사 패턴으로 전 정권 겨냥

윤석열 정권의 문재인 정권 대북 정책에 대한 공격은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용공 조작 사건’을 연상케 한다. 그때처럼 직접적인 고문이나 증거 조작은 없지만, 어떻게든 ‘이적 혐의’를 씌우려고 하는 게 닮았다. 2019년 11월 동해상에서 동료 선원 16명을 죽이고 탈북한 북한 어민 2명을 강제 추방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2023년 2월 정의용과 서훈 전 국정원장,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지난 2월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재판장 허경무)는 이들에게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선고유예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형에서 재범 가능성이 전혀 없을 때 형의 선고를 유예하는 판결이다).

문재인 정권 대북 정책의 핵심 인사들이 법정에 서게 된 건 윤석열의 ‘도어스테핑’이 발단이 됐다. 2022년 6월21일 윤석열은 ‘2019년 탈북어민 북송 사건을 들여다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 어민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우리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되는데, 북송시킨 것에 대해 많은 국민이 의아해하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진상규명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했다.

윤석열의 ‘검토’는 검찰 수사를 의미했다. 국정원은 2주 뒤 서훈 전 국정원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권영세가 이끄는 통일부가 바람몰이에 나섰다. 통일부는 2019년 11월 당시 판문점 북한 어민 강제 북송 현장 사진 10여장을 공개했다. 북한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는 탈북어민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이었다. 이 사진이 공개된 당일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정의용을 비롯한 안보 라인 10여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2022년 6월21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대통령실로 들어가기 전에 취재진 질의에 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의 ‘북한 어민 강제 북송 의혹’에 대해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도어스테핑’ 직후 문 정권 안보라인 수사 시작

대통령실도 맞장구를 쳤다. 강인선 대변인은 2022년 7월13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어떻게든 끌려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모습은, 귀순 의사가 전혀 없었다던 문재인 정부 설명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자유와 인권의 보편적 가치 회복을 위해 이 사건의 진실을 낱낱이 규명하겠다”고 했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검찰은 당일 국정원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 11월 당시 야당의 고발을 ‘수사 개시 사유 불충분’으로 각하했던 검찰은 태세를 180도 전환했다.

통일부는 정의용이 ‘북한 어민들은 흉악범이고, 귀순 의사도 없었다’는 입장을 발표하자, 이번엔 당시 영상을 공개했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눈가리개가 풀린 북한 어민들이 결사적으로 저항하는 동영상은 사진보다 더 생생했다. 동영상 공개로 문재인 정권을 비난하는 보수단체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이 무렵 미국 싱크탱크 초청으로 미국에 머물던 서훈은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등이 ‘해외 도피’ 의혹을 제기하자 그해 7월 말 귀국했다. 애초 1년 동안 방문 연구원 자격으로 머물 예정이었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어 전면 취소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 안보 라인은 윤석열 정권의 여론전과 검찰 수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겨레 누리집 ‘오늘의 스페셜’ (https://www.hani.co.kr/arti/SERIES/3211) 코너에서 이어집니다.

이춘재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윤석열 부부의 친위대’를 자처한 검찰의 문제적 수사를 톺아보는 이춘재의 ‘검찰 수사의 재구성’ 더 많은 이야기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코너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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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윤’ 이창수 사표, 윤석열 사단 ‘각자도생’ 신호탄이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99518.html?h=s

검찰, 칠순 ‘문재인 전 사돈’ 목욕탕까지 찾아가…보복기소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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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사건 “모자이크식 기소” 비난한 윤석열, 문재인 정권 수사는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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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역린 건드렸다 ‘집단 린치’ 당한 검사…핵심 참모는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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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떠나도 ‘윤석열’ 건재한 검찰, 정권교체 앞장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185167.html?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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