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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칠 교수의 일기는 1993년 〈역사앞에서〉란 제목으로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이 일기는 1945년 11월 29일자 뒤쪽부터 남아있었는데, 그 앞의 일기가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유물을 보관하고 있던 필자의 아들 김기목(통계학·전 고려대) 교수가 사라진 줄 알았던 일기를 최근 찾아냈다. 1945년 8월 16일에서 11월 29일(앞쪽)까지 들어 있다. 중앙일보는 이 일기를 매주 토요일 원본 이미지를 곁들여 연재한다. 필자의 다른 아들 김기협(역사학) 박사가 필요한 곳에 간략한 설명을 붙인다.



11월 23일 개다. [2시 기상]

정재륜(鄭載崙)의 〈견한록(遣閑錄)〉에 이르기를

當光海朝 有庭請廢母之擧 百官宗室 多有畏禍 不敢異者 逮仁廟改玉 有追罪之議 仁廟下敎曰 庭請之罪 余亦難免 議者不敢復言
(광해군 때 폐모(廢母)의 정청(庭請)이 있었고 백관과 종실 중에 화 입을 것이 두려워 감히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 인조로 임금이 바뀌자 그 죄를 추궁하자는 주장이 나왔는데 임금께서 하교하시기를 정청의 죄는 나 또한 면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 주장이 감히 다시 나오지 못하였다.)


이라는 구절이 있다. 오늘날 세상을 휩쓰는 친일파 단죄 주장과 비기어 흥미로운 이야기다.

또 이런 말이 있다.

仁祖改玉之初 諸勳臣意欲盡革舊事 雖其不可廢者 事在光海朝者 則必欲改革乃已 金相國尙容進于上曰 人之勤于梳頭者 或千梳 或百梳 而不能盡去垢膩 夫日以千梳之勤 不得盡去一頭之垢 則何能以一人之力 盡易一國之事乎 爲國之視其太甚 而更張之可矣 不察事之是非 一以革舊爲心 則民不勝其撓也 上嘉納之
(인조 즉위 초에 여러 공신들이 지난 일을 모두 뒤집고 싶어 했다. 비록 폐할 수 없는 것이라도 광해군 때의 것이라면 남김없이 바꾸려고 들었다. 상국 김상용이 상소했다. “머리 빗는 데 부지런한 사람이 천 번도 빗고 백 번도 빗지만 때를 완전히 없애지 못합니다. 무릇 매일 천 번씩 빗질해도 머리통 하나의 때를 다 없애지 못하는데 한 사람의 힘으로 나라의 모든 일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나라를 위해 그 너무 심한 것을 바꾸면 될 것인데 일의 옳고 그름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바꾸려고만 마음을 먹으면 백성은 그 어지러움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임금이 받아들였다.)

이것도 오늘날 시무와 관련해서 깊이 반성되는 점이다. 당로자에게 일독시키고 싶은 글이다.

〈견한록(遣閑錄)〉에 또 이르기를

人之處世 不遵正道 專任權術 則終必有禍 奇自獻宣廟兄河原君女壻也 光海時以左議政 立異於廢母之論 癸亥反正後 亦參卜相之列 而常以權數絡一世 甲子逆适之變 有告其與賊連謀者 被逮未而适兵卒逼都城 金昇平瑬盡斬在囚諸人 自獻亦與焉 盖疑其有權謀也 與賊通謀人 多稱寃 故延平李相公陳箚伸雪 而禍之所從來 盖亦自取云
(사람의 처세에 정도를 따르지 않고 권모술수에만 매달리면 끝내 화를 면할 수 없다. 기자헌은 선조임금의 형 하원군의 사위인데 광해군 때 좌의정으로 폐모 논의에 반대 의견을 내어 계해반정 후에도 재상 하마평에 오르는 등 노상 권모술수로 일세를 농락하였다. 갑자년 이괄의 난 때 역적과 내통했다는 고발로 붙잡혔는데 판결 전에 이괄의 군대가 도성을 핍박하자 김류가 감옥에 있던 사람을 모두 죽였고 기자헌도 그중에 있었다. 권모 때문에 의심을 받은 것이다. 역적과 통모했다는 사람 중 억울하다는 사람이 많아 연평 이(귀) 상공의 상소로 죄를 씻었으나 화의 유래는 스스로 만든 것이다.)

[해설: 기자헌(1562-1624)은 선조 말년 광해군의 세자 폐위에 반대하고 1608년 광해군의 즉위에 공을 세웠으나 1617년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났다. 1623년 인조 즉위 후 재상직으로 불렀으나 사양하고 있다가 이괄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체포된 후 재판 없이 살해당했고 1627년에 복관되었다. 籠, 覈 등 몇 글자는 원서와 대조해 바꿨다.]


또 이르기를

仁祖大王 天章甚高 而未嘗作一句詩 批旨文字 亦必使內侍謄書 而即沈手草於水盆 烈之以去之 故親王子家所有 亦不過七八字小紙數行宸翰矣
(인조 임금은 타고난 글이 매우 뛰어났으나 일찍이 시 한 구절도 지은 것이 없고, 글을 적은 것은 꼭 내시가 베껴 쓰게 하고 원본은 물그릇에 담갔다가 끓여 없애게 했다. 그래서 가까운 종친도 가진 것이 몇 글자 적은 쪽지뿐이다.)



11월 24일 개다. [4시 기상]

아침에는 단군조 이야기.

전재 귀환동포의 급식은 직원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2개월 이상 계속되었으나 근일 중은 전재동포가 차츰 줄어져서 별로 없다고 하므로 오늘로써 끝마치기로 하고 이 사업에 시종 협력한 역부(驛夫), 학교아동 및 직원들에게 떡을 해주기로 하고 여사무원들이 어제부터 힘쓴 결과 오늘 오후에 나눠먹을 수 있었다. 이 사업이 시종여일하게 원만히 끝났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11월 25일 개다. (일) [4시 기상]

아내는 기봉이 업고 여사무원들과 함께 바람 쏘이러 가고 나는 종일 역사 공부.

역에 다음과 같은 삐라를 써붙이다.

승무원 및 승객 여러분에게
삼가 감사의 의(意)를 표합니다.
폐 조합이 지난 9월중 전재 귀환동포의 급식을 시작한 지 우금 2개월여에 긍하여 여러분의 격별한 협력을 앙(仰)하였음을 감사하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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