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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 하나 없는 안장식 안타까워 시작”
고(故) 송영환 일병의 딸인 재숙씨가 지난달 8일 서울 동작구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열린 '6·25 전사자 유해 얼굴 복원 유가족 초청행사'에서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보며 흐느끼고 있다. 국민일보DB

여느 때처럼 평화로웠던 일요일 새벽, 갑작스러운 총성으로 시작된 6·25전쟁 탓에 스무 살 안팎의 수많은 청년이 조국을 지키다 희생된 지도 어느덧 75년이 됐다. 그들을 기억했던 가족 친척 동료는 하나둘 세상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이 간직한 기억도 많이 희미해졌을 만큼 긴 세월이 흘렀다. 특히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전사자의 유가족들은 희생자의 생전 모습조차 떠올리기 힘든 상황인데, 고(故) 송영환 일병의 유가족도 그런 경우였다. 송 일병의 딸 재숙씨는 자신이 세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른 채 70년 넘는 세월을 살았다.

재숙씨가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은 지난달이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송 일병의 생전 모습을 영정 사진으로 만들어 재숙씨에게 전달했다. 6·25 전사자의 생전 얼굴을 복원한 첫 사례였다. 그런데 송 일병의 얼굴 사진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던 걸까.

송 일병의 유해는 2013년 강원도 동해시 망상동에서 발굴됐다. 그는 1950년 12월에 입대해 이듬해 3월 정선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 유해를 찾기까지 62년이 걸렸고, 신원 확인까지는 11년이 더 필요했다. 그다음 이어진 것은 11개월에 걸친 유해 복원 과정이었다.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이규상 국유단 중앙감식소장은 “영정 사진도 없는 안장식이 안타까워서 생전 모습을 한번 그려보자고 아이디어를 내게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유가족들도 이제 워낙 고령이고 참전 용사들도 많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전사자들의 얼굴은 기억하는 분이 많지 않다”며 “유가족들에게 영정 사진이라도 만들어 선물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만난 이규상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중앙감식소장. 권현구 기자

이 소장의 설명에 따르면 생전 얼굴 복원에 성공한 송 일병의 경우 “시간 속에 묻힌 사례”였다고 한다. 앞서 설명했듯 신원 확인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얼굴 복원에 성공할 것이란 자신은 없었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두개골의 보존 상태가 양호해야 했다. 신체적 특징이 잘 드러나는 광대 아래턱 치아도 잘 보존돼 있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호국영웅 잊지 않는 게 국가 책무

하지만 송 일병의 유해엔 광대뼈 한쪽이 유실된 상태였다. 누구나 비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번 해보자”며 분위기를 반전시키려고 노력한 이는 유준열 국과수 연구원이었다. 대학에서 미술과 생물을 전공한 유 연구원은 국과수에서 신원불상자의 얼굴 복원을 도맡고 있다. 그는 오랜 경험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송 일병의 예전 얼굴을 다시 만들어냈다. 두개골 컴퓨터단층촬영(CT)을 토대로 눈 코 입을 그렸고, 피부의 두께를 정했으며, 그에 맞는 얼굴 근육을 입혔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두개골로 유추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나 눈꼬리나 콧볼의 크기, 귀의 모양 등 세밀한 부분은 생전 모습과 100% 일치하게 만들어낼 수 없었다.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가진 유준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원. 본인 제공

유 연구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가족이나 친지분들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복원을 목표로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밀한 부분은 한국인의 얼굴을 연구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제가 결정해야 했어요. 만약에 제가 잘못 결정해서 생전 모습과 많이 멀어지게 될까 봐 부담감이 컸죠.”

완성된 사진을 유가족에게 전달할 때, 유 연구원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재숙씨로부터 “집안 어른들과 사진 속 송 일병의 모습이 닮았다”는 말을 들은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는 “따님이 사진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는 걸 보며 나 역시도 가슴이 찡했다”고 말했다.

6·25 전사자 얼굴 복원 사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현재는 유해의 보존 상태 등을 바탕으로 유해 4구를 선정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송 일병의 경우 컬러를 입히고 군복, 철모까지 추가한 3D 사진을 제작 중이다. 유 연구원은 이런 작업을 벌이는 이유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국가는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올해 25개 지역서 유해 발굴작업


국유단은 올해 25개 지역에서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을 벌인다. 발굴지 선정부터 신원 확인까지 이어지는 절차 가운데 수월한 것은 없다. 유해 발굴 과정에서부터 허탕을 칠 때가 많다. 발굴지가 이미 도시로 개발됐거나 논이나 밭으로 변했을 땐 어려움이 더 커진다. 이른바 ‘토양화’되지 않은 유해를 발굴하는 일,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받아 검사를 무사히 진행하는 일도 쉽지 않다.

이 소장은 “유해는 찾았는데 신원 확인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어 “미국 DPAA(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의 경우 파병 군인의 흉부 엑스레이, 혈액 등을 갖고 있지만 6·25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던 만큼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고 했다.

국유단은 눈앞에 놓인 많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들이 벌이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유가족들을 만나러 다닌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세상을 떠나는 유가족도 많아지고, 최근엔 보이스피싱 등 ‘사칭 사기’가 극성을 부리면서 유가족 접촉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소장은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에 많은 관심을 부탁한다고 거듭 당부했다. “이곳 현충원에는 유골도 없고 위패로만 존재하는 전사자가 많습니다. 그 안에 유가족분의 유해를 같이 화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가족 구성원만 홀로 (유골함이) 있고, 전사자는 위패로만 존재하기도 해요. 그걸 보면 죽어서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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