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워싱턴|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2일(현지시간) 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에 사용되는 철강 파생 제품에 50%의 고율 관세를 매기기로 하면서 국내 가전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생산 및 유통 전략을 포함한 북미 전략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 상무부는 이날 연방 관보를 통해 50% 관세 부과 대상인 철강 파생 제품 명단에 냉장고와 세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오븐 등을 추가하고 오는 23일부터 이들 제품에 관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모두 국내 가전업계의 주력 상품들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세탁기 등 일부 제품을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제품은 한국과 멕시코, 베트남 등지에서 생산해 북미로 수출하기에 관세 부과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가전제품은 철강 비중이 높아 관세가 부과되면 제조원가 상승과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실제 LG전자는 지난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제조 원가 개선, 판가(판매 가격) 인상 등 전체 로드맵은 이미 준비돼 있다”며 판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관세로 인해 판매 가격이 인상되면 가격 경쟁력은 떨어진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미국 생활 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매출 기준 합산 점유율은 42%에 이른다. 두 기업 제품 가격이 오르면 그 뒤를 쫓고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 월풀 등 현지 브랜드가 치고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가전업계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전부터 관세 부과에 대한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를 마련해왔다. 각 지역에 퍼진 공급망을 유연하게 활용해 관세 영향을 최대한 피해가겠다는 것이다.
LG전자는 세탁기, 건조기 물량을 미국 테네시 공장으로 점진적으로 옮겨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이를 통해 물량 기준 미국향 가전 매출의 10% 후반까지 커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삼성전자 역시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프리미엄 제품 확대를 추진하고 글로벌 제조 거점을 활용한 일부 물량의 생산지 이전을 고려해 관세 영향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결국 미국 내 생산 비중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따라 유리한 생산지가 시시각각 달라지는 와중에도 미국 내 생산 확대만큼은 일관성 있게 강조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생산 라인 이동에 드는 비용과 미국의 높은 인건비를 고려하면 신중한 검토가 요구된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 서울대 특별강연에서 “미국 생산 기지 건립은 마지막 수단”이라며 “우선 생산지 변경이나 가격 인상 등 순차적 시나리오에 따라 해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