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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모의 논쟁적 공간]
<5>민주화운동기념관

편집자주

'안창모의 논쟁적 공간'은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가 한국 사회의 논쟁적인 공간과 건축 이슈를 풀어내는 기획입니다.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가들이 고문을 당했던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 10일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윤성중 사진작가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이 10일 문을 열었다. 1987년 1월 19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존재가 드러났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對共分室)이 38년 만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민주화 이후 우뚝 솟은 검은 벽돌 집을 둘러싼 담장이 철거되면서, 공포의 시대를 받쳐왔던 '대공분실'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고, 검은 벽돌 집의 남측 맞은편에는 야트막한 미색 건물이 역사를 마주하는 낮은 시선으로 자리하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당시 대공분실은 이름만 들어도 움츠려지던 이름이었는데, 잘 차려입은 멋쟁이 신사 같은 모습의 건물이 어둠의 정치를 지탱하는 건물이었음을 10년 이상 몰랐다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남영동 대공분실을 '악의 평범성'의 소재로 삼곤 한다.

'악의 평범성'과 남영동 대공분실

남영동 대공분실 직원들이 쓰던 테니스코트에서 연극이 진행되고 있다. 윤성중 사진작가 제공


독일 출신의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가 이야기한 '악의 평범성'의 예로 남영동 대공분실이 등장하는 것은 이 건물이 우리가 늘 지나치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우리 눈을 피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존재를 몰랐었기 때문이다. 국가를 위해 지어졌고, 그 역할에 충실(?)한 건물이었지만, 군사독재 시절에 반사회적 반민주적 역할을 한 건물이 내 일상과 함께했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경악했다. 긴급조치를 앞세워 국민을 억압하던 핵심 시설임을 알았다면 그 근처를 얼씬거리기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건물의 설계자는 당대 최고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었다.
사람들은 김수근이 설계자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겠지만, 이 사실은 건축가들에게는 시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잠시 냉정을 찾고, 김수근이 제3공화국 시기의 국가프로젝트를 책임졌고, 1972년 10월 유신으로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박정희 정권 시절에 정부프로젝트를 맡았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는 여전히 정부로부터 신뢰받는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일을 맡긴 사람은 김치열 내무부 장관이었다. 김치열은 김수근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자신이 발주했다는 사실을 정초석에 당당하게 밝혔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옥인동 대공분실의 정초석에 김치열 이름이 없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김치열이 이 일을 김수근에게 맡겼다는 사실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당시 박정희 정부 입장에서 보면, 장기집권을 불안하게 하는 사회적 저항이 거세지고, 민주화를 외치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니, 경찰조직을 치안국에서 치안본부로 확장하면서, 민주화를 억압할 수 있는 시설이 필요
했을 것이다. 이 시절을 지내온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까?" "이 말을 하면 내가 잡혀가지 않을까?" "혹시 우리 가족까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를 걱정하며 자기검열을 하곤 했다.

건축가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는 무엇인가

연극 '미궁의 설계자@남영동'의 한 장면. 김명집 사진작가 제공


기념관 개관 전 한 편의 연극이 극장 없는 이곳에서 공연됐다. 연극은 '미궁의 설계자@남영동'이었다. 이 연극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김수근을 바탕으로 허구적 서사로 구성된 작품이지만, 작가는 연극을 통해 '예술과 권력', '미학과 책임' 사이의 줄타기를 조명했다고 한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간 사람도 때론 길을 잃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자가 김수근이 아니었더라도 이 연극이 가능했을까?

이 연극은 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새로 태어나면서 현장에 맞춰 새롭게 기획됐다. 작가 김민정과 연출가 안경모는 남영동 대공분실 자체를 무대로 삼고 관객들을 곳곳으로 끌고 다니며,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이러한 일이 일상으로 펼쳐졌던 곳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건축가의 양심, 사회적 책임, 그리고 권력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드라마투르기 이은기는
'국가 건축가는 과연 시대의 윤리적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건축적 이상을 추구하던 손이 고문의 공간을 설계했다면, 그 미학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가?'
에 대해 묻는다. 질문은 의문을 가진 누구나 던질 수 있다. 그런데, 남영동 대공분실에 관한 이들의 질문은 누구를 향해야 할까?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옛 남영동 대공분실 본관의 뒷문. 진효숙 사진작가 제공


민주화운동기념관에는 세대를 달리하는 2명의 건축가가 있다.
어두운 시대의 자화상 같은 대공분실을 설계한 건축가가 있고, 대공분실에서 삶을 잃어버린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품은 낮은 자세로 대공분실을 마주한 신관을 설계한 건축가
가 있다. 후자(정현아 디아건축 대표)는 좀 더 잘했어야 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아쉬움을 가질 수 있지만, 역사 현장을 기억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부담과 함께 뿌듯함도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전자는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후학들에게 또는 그에게 실망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위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그 건축가는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답을 할 수 없으니, 건축계가 대신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가 이 일을 어떤 생각으로 진행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만들어진 결과를 보고 남영동 대공분실이 얼마나 끔찍한 시대의 산물인가를 판단할 뿐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처음 지어진 1976년에 김수근의 대표작 건축사무소 공간의 사옥도 완성됐다. 디자인이나 용도는 크게 다르지만, 공간 사옥과 남영동 대공분실은 비슷한 시기에 한 건축가에 의해 태어났고, 재료나 디자인의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건축가의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건축 공간이나 디자인을 찾아보면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육중한 철문, 고문받은 사람들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테니스코트, 눈을 가린 채 끌려와 들어가는 뒷문의 섬세한 디자인과 돌음계단, 엇갈린 조사실 배치와 유난히 좁은 중복도, 감시자가 조사실을 잠글 수 있고, 감시자만 외부에서 조절할 수 있는 조명 장치 그리고 비명을 질러도 밖으로 들리지 않도록 설치된 흡음판과 내부 감시 카메라, 한뼘 폭의 좁고 긴 창 등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성 들여 시공된 욕조의 디테일과 색채
등이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남영동 대공분실을 읽는다면 우리의 평가는 보지 않아도 명확해진다.

옛 대공분실 건물 내부의 돌음계단. 진효숙 사진작가 제공


"'민주주의와 연대' 건축도 보여줘야"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에 마련된 민주화운동기념관의 박종철 조사실. 진효숙 사진작가 제공


건축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는 건축가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자조 섞인 말로 사회를 원망하곤 한다. 우리 사회가 건축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왜 원망을 할까? 왜, 우리 사회는 건축가를 존중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식민지배, 전쟁과 분단, 독재와 민주화운동, 산업화 등을 거치며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한정해서 보면, 건축가는 사회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그들과 함께한 적이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에 기여는 했지만 사회의 한쪽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지 않았던가? 그리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지는 건축가의 삶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회에서 존중받는 사람들은 사회가 필요한 곳에서 자신의 위치를 지켰던 사람들이다. 의사나 변호가가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을 받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사회가 필요할 때 사회와 함께하려는 몇 사람들이 있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 509호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진효숙 사진작가 제공


509호의 전등스위치. 진효숙 사진작가 제공


잠시 한나 아렌트로 돌아가보자. 아렌트는 자신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홀로코스트를 주관했던 아이히만이 매우 사악한 사람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친절하고 평범한 전형적인 한 명의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은 상관의 지시를 이행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고, 아렌트는 여기에서 ‘악의 평범성’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녀는 아이히만과 같은 선한 사람들이 스스로 악한 의도를 품지 않더라도, 당연하고 평범하다고 여기며 행하는 일 중 무엇인가는 악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자신의 영달을 위해, 또는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대한 그릇된 믿음으로 인해 민주주의를 팔아넘기고 이웃에 고통과 상처를 남긴 이 땅에 아이히만은 없을까?라는 물음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악의 평범성'을 건축가에게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화운동기념관은 민주주의 성취를 기념하는 공간, 국가폭력의 역사와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공간,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를 함께하고 지켜갈 시민이 함께 공부하는 공간 그리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역을 넘어 세계인과 함께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겨울 우리는 선배와 동료들의 희생으로 가꿔온 민주주의가 크게 위협받았던 경험이 있기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의 개관과 기념관의 지향점이 갖는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기념관 개관을 계기로 누가 어떻게 이 건물을 설계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제 건축이 책임 있는 답을 해야 할 시간이다. 그래야 건축도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지향하는 가치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부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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