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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수석논설위원
6·3 대선 이후 보수 정당의 쇠락이 가속화하고 있다. 재기의 구심점도 없고, 몸부림도 없다. 무엇보다 김문수의 큰절 외에 이렇다 할 참회도 보이지 않는다. 그 뻔뻔함에 다시 한번 혀를 차는 보수층이 적지 않다. 보수 정당이 이렇게 망가지는 건 국가 전체로도 바람직하지 않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올바른 보수가 있어야 진보의 절대권력이 탈선하는 것도 견제할 수 있다. 위기의 보수 정당은 어떻게 건전 보수로 거듭날 것인가.

대선 패배 참회도 않는 국민의힘
득실 따지며 대의 경시 풍조 만연
원칙·소신 지키는 ‘바보’ 많아야

어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 전 대통령은 ‘바보 정치’의 상징이었다.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민주당의 험지였던 부산(국회의원·시장) 출마를 고집해 연거푸 낙선했다. 1998년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의 보궐선거 당선으로 재선의원이 됐지만, 2000년 4월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시 부산(북·강서 을)으로 돌아가 결국 낙선했다. 그런 그에게 시민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보’였다. 손해보더라도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우직함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런 바보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줬고, 결국 그를 대통령 자리로 이끌었다.

노무현 자신도 바보라는 별명을 좋아했다. 그는 대통령 퇴임 인터뷰에서 바보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별명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를 하면 나라가 잘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보수 진영에 가장 필요한 게 바로 바보 정신이라고 본다. 유불리를 따지고 잇속을 챙기기보다 손해보더라도 원칙을 지키고 옳은 것을 따르는 정신, 바로 바보 정신이다.

자칭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엔 그게 없다. 대선 참패 뒤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명확히 절연했더라면 선거 양상이 달랐을 거라는 분석 결과가 쏟아졌다. 투표 전에도 그런 경고가 많았다. 그들은 끝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의보다 아스팔트 극우의 아우성과 다음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더 따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엄 세력과의 정리는 계산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 당위여야 했다. 책임 있는 민주 정당이라면 설령 극우 보수층의 수백만 표가 떨어져 나간다 해도 그렇게 해야 했다.

하기야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준석이 당 대표에서 쫓겨날 때, 김기현이 당 대표에서 쫓겨날 때도 침묵했다. 심지어 당 지도부가 자신들이 뽑은 대선후보(김문수)를 외부 인사(한덕수)로 깜깜한 새벽에 교체하려 한 초유의 사건 때도 침묵했다. 침묵은 많은 경우 묵인과 동의어가 된다.

지난 3년간 그들은 노동 개혁, 연금 개혁, 의대 증원 정책이 표류할 때도 침묵했다. 권력에 찍힐까 봐 눈치를 보면서도 국민을 무서워하지는 않는 듯했다. 국민이 선출한 헌법기관이 아니라 그저 대통령의 하수인 같았다.

계엄과 대선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에 대한 재발견이라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안철수는 처음부터 계엄 반대를 분명히 했고,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 일찌감치 순직 해병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떨어졌지만, “지금은 김문수 대장선(大將船)을 따를 때”라며 몸을 사리지 않고 뛰었다. 경선 탈락 뒤 당을 떠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나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등을 요구하며 움직였던 한동훈 전 대표와 달랐다.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호불호를 논하자는 게 아니다. 보수 진영에도 당장의 이익보다 원칙과 대의를 소중히 여기는 ‘바보’가 많아져야 한다는 얘기다. 눈앞의 권력이 아무리 대단해도 대의에 맞지 않으면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하고, 아무리 당론이라도 국민 상식과 맞지 않으면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바보’들이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세워 간다면 보수에도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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