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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경찰을 대동해 불법 이민자들을 체포하는 이민세관단속국

"소설가 황석영 선생님을 만났어요. 첫마디가 LA는 어떻게 된 거냐 물으시던데,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9.11 테러 혐의로 수감된 이들이 받은 불법 고문과 인권 유린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알카 프리드한 변호사의 첫마디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 상황이었다. 이민자들에 대한 무차별 구금으로 촉발된 LA 시위 사태, 어떻게 된 건지, 미국인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황석영 선생이 물었는데, 뭐라 답해야 할지 부끄러웠다 했다.

"마스크를 쓴 이민세관단속국 요원들은 자기가 누군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려주지 않고 외국인들을 체포해 갔습니다. 홈디포, 세븐일레븐 같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을 급습했어요. 길거리에서 잡혀간 이들도 많습니다. 왜 잡아가는지, 무엇 때문인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지 않았어요."

주 방위군이 투입된 LA 시위 일주일 전에는 무차별 구금이 일어났다. 이민세관단속국은 불법 체류자 명단에 오르지도 않은 이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였다. 일단 외국인이면 '묻지 마 연행'이 이뤄졌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모자를 눌러쓴 이들은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복면을 쓴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외국인으로 보이는 이들을 납치했습니다. 말 그대로 납치였어요. 불법 이민자 리스트가 있었냐고요? 아니요. 그냥 보이는 대로 납치했습니다."

이민세관국 요원들에 의해 잡혀간 이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수백 명, 수천 명이 끌려간 것으로 추정된다.

"아침에 멀쩡히 출근했던 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가족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대대적인 불법 이민자 체포에 항의하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위대에 경찰이 최루가스를 발포하고 있다.

한국의 80년대를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사람이 실종됐는데, 어디에 가서 물어봐야 할지, 찾아야 할지 알 수 없고,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잡혀갔는지도 모르는 상황.

"미국에선 누가 잡혀갔는지, 인적 사항을 알아야 변호사가 접견을 신청하고 사건을 접수할 수 있어요.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누굴 잡아갔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인권변호사들, 특히 이민 쪽 변호사들이 매일 문자와 이메일을 보내고 있어요. 혹시 누가 어딨는지 알고 있냐고요. 보세요. 이게 어제 온 메시지에요. 이민 변호사인 친구가 보냈는데, '이 사람을 아세요~'라는 절박한 문자가 곳곳에 뿌려지고 있어요."

올 초, 이민자들을 대거 잡아들여 관타나모 섬으로 보내는 사진을 공개했던 트럼프 행정부는 더 이상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 사진 속의 얼굴로 인적 사항을 파악한 변호사들이 접견 신청을 하고, 불법 구금 사실을 일일이 법원에서 고소하자, 아예 누가 잡혀갔는지를 모르게 하려는 의도다.

"갑자기 가족이 실종됐지만, 불법 이민자들은 경찰이든 어디든 찾아가서 실종 신고를 하지 못해요. 그럼 가족들도 다 쫓겨나거든요."

그래도 미국 사회가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냐고, LA에서 시작된 시위가 대도시로 퍼지고 있지 않냐고 말이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

"트럼프 1기 때는 정말 매일매일 시위가 있었어요. 워싱턴 D.C. 백악관 앞에 매일, 매 주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죠. 브런치 모임을 만들었을 정도예요. 몇 달 동안 매일 같이 나와서 얼굴을 봤으니까."

지금은요?

"트럼프 2기는 우리 모두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요. 일부는 현실을 부정하고 있죠. '설마 트럼프가 그래도 대통령이고, 사람인데 그렇게까지 하겠어'라는 자기 부정. 다른 일부는 절망감에 빠져있어요. 우리가 거리로 나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까. 앞으로 4년이나 남았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절망감이요."

알카 프리드한 변호사는 한국의 계엄과 이를 시민들이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뼈아프게 봤다며, 지금은 미국이 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알카 프리드한 변호사. 악명높은 미 구금시설 관타나모에서 벌어지는 국가의 폭력과 불법에 맞서 온 인권 변호사

"우리는, 미국인들은, 시위해서 싸워서 이긴 경험이 없어요. 물론 흑인들은 다르죠. 로사 파크스, 조지 플로이드 때 싸워봤으니까요. 하지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시위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한국이 했죠."

프리드한 변호사는 계엄이 선포됐던 날 필자에게 "괜찮냐"고 문자를 보냈다. 광주가 생각났다고 했다. 미국에 있는 사람이 한국에 있는 사람보다 더 겁에 질려 있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국회가 계엄을 무효화시키고, 한국 시민들이 매 주말 모여서 싸우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나와서 은박지를 두르고 목소리를 내는 걸 보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런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알카 프리드한 변호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을 받아 한국에 왔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 이들에 대한 국가 폭력의 용도로 사용됐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 운동 기념관으로 개관하는 것을 기념하는 자리를 위해서다.

언론에서 비치는 불타는 경찰차와 시위대를 향해 고무공을 발포하는 주 방위군들. 이미지 안쪽에 존재하는, 트럼프를 향한 미국인들의 현 상황은 아직 임계점에 이르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 그의 평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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