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크모어

Menu

랭크뉴스 › [율곡로] 죄에 나이가 있을까

랭크뉴스 | 2025.06.12 12:58:05 |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최근 또래 한 명을 끌고 가 담뱃불로 지지며 폭행한 혐의로 중학생 10여명이 붙잡혔다. 지난 1월엔 장애 학생을 집단 성추행하고 때린 중학생들이 입건됐다. 작년 10월에는 중학생들이 또래를 상습적으로 때리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수사받았다. 심지어 알몸 사진을 요구하며 협박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죄질이 나쁘다. 태어난 지 십여년 밖에 안 된 아이들의 짓이라곤 믿기 어렵다. 성악설이 맞는 건가. 뭉쳐서 얻은 집단의 힘을 소수에 악용하고 항거할 힘 없는 약자를 괴롭히는 가학성을 보이는 건 어른과 똑같다. 성추행, 나체 사진 요구 등도 이런 사건들에서 유사하게 발견되는 사악한 단면이다. 어떻게 이런 잔인한 일을 할까.

시계를 더 되돌리면 끔찍한 일도 많다. 2010년엔 중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 부모와 할머니, 동생이 모두 숨지는 존속살해가 있었다. 2019년엔 한 여학생이 초등 동급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고, 2021년엔 중학 1년 남학생이 동갑 여학생을 성폭행했다. 2023년에는 중학생이 자신을 부모처럼 돌봐온 고모를 게임을 못 하게 한단 이유로 살해했다.

재판 (PG)
[김선영 제작] 삽화


주목되는 건 이들 모두 '촉법소년'(형사미성년자)이란 공통점이다. 촉법소년이란 범죄를 저지른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이다. 범법행위를 해도 소년법상 형사책임능력이 없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앞서 등장한 소년들은 모두 형사처벌을 피했다. 대신 감호위탁, 사회봉사, 보호관찰, 소년원 수용 등 보호 처분만 받는다. 10세 미만 아동은 입건 자체가 안 된다.

죄에도 나이가 있는 걸까.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죄를 미워하란 말도 있지만, 이를 두고 '뜨거운 아이스크림 같은 말장난'이라 반발하는 의견도 많다. 과거에도 촉법소년 흉악범죄가 생길 때마다 연령 하향 논란이 재연됐다. 어김없이 입법 논의도 뒤따랐지만, 언제나 똑같이 흐지부지됐다. '냄비 근성'이란 비아냥을 부인하기가 스스로 좀 부끄럽다.

법의 맹점도 악용한다. 재작년엔 촉법소년이 파출소에서 경찰관을 폭행하고 욕설하며 "맞장 까자"고 한 영상이 온라인에 떠돌았다. 외국인 촉법소년들이 노래방에서 난동을 부리며 기기를 부쉈으나 부모들이 "촉법소년이니 보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단 소식도 있다. 파출소 앞 경찰차 위에 올라가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이 정도면 무법천지다. 아이들이 범죄 불감증에 걸릴까 두렵다.

우리 혈세로 유지되는 공권력을 모욕해도, 흉악한 폭력을 가해도, 타인의 소중한 재산을 파괴해도 잘못으로 느끼지 않는 의식이 어릴 때부터 깃든다면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는가. 청소년은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살 날이 많으니 재사회화와 재발 방지에 주력하자는 법 취지에 동의한다. 다만 흉악 범죄에도 일률적 관용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고민할 문제다. 개선책도 이젠 새로운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논의돼야 한다.

연령 기준부터 보자. 무려 1953년 형법이 제정될 당시 기준이 지금도 그대로다. 당시 한국인과 지금 한국인은 다른 사람이다. 신체 및 정신 연령이 다르고 정보기술(IT) 발달로 범죄 정보 접근성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당시 14살과 지금 14살이 같을까? 영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이런 과학 데이터를 반영해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췄다. 경찰에 따르면 촉법소년은 2019년 8천615명에서 2023년 1만9천654명으로 4년 새 2배 넘게 급증했다.

죄질에 따른 구분도 필요하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한다. 한순간 실수에 의한 절도나 가벼운 폭력이라면 교화가 우선이다. 그러나 살인, 강도, 방화, 마약, 성폭행 등 흉악범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건 사회를 유지할 최소 상호 신뢰를 스스로 훼손할 수 있다. 전문가들도 국민감정을 반영한 연령 하향과 처벌 강화를 위한 방안들을 제시한다.

촉법소년 범죄 증가는 가정교육 변화, 교권과 공권력 추락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감정 존중 양육'은 과거 엄격한 양육과 달리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 정서적으로 건강한 인간을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양육법의 문제를 다룬 책 '부서지는 아이들'(The Bad Therapy)은 이렇게 키운 아이들에게서 정서적 문제가 더 많이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미국 언론인이 쓴 이 책에 따르면 1990년대~2010년대 출생한 Z세대의 약 40%가 정신 치료를 받았다. 지금 4050인 X세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수치라고 한다. 책은 또 과거보다 더 온화하게 키운 아이들이 부모를 더 많이 원망하고 감사할 줄 모르며 정신 트라우마도 더 많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볼 지점인 듯하다.

촉법소년 해외 기준 (CG)
[연합뉴스TV 제공]


[email protected]

연합뉴스

목록

랭크뉴스 [51,848]

16 / 2593

랭크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