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명절, 휴가철, 새 학기, 크리스마스 등등…. 지출이 늘어나는 시기에 '위시리스트' 적어두고 관리하는 분들 많죠.

그때마다 드는 생각. 이 중 하나만 누가 사다 주면 참 좋겠다!

대기업·중소기업과 여러 정책 사업을 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생각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위시리스트'를 들고 기업들을 찾아갔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열리는 중소기업장관회의에 필요하다면서 각종 물품과 자금을 적어 대기업들에 요구한 겁니다.

중기부가 대기업들을 돌며 '협찬'을 요청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11월. 답변을 달라며 기업들을 본격적으로 '쪼기' 시작한 건 지난달 즈음부터입니다.

사실상 위시리스트가 아닌 '갑질리스트'였습니다.

■ 이동 수단부터 와이파이까지 '인프라' 협찬 요구

중기부의 장관회의 위시리스트, 기본 인프라부터 'VIP 선물'까지 총망라했습니다.

먼저 회의장 안에 필요한 물품을 볼까요.

삼성전자에 회의용 태블릿 PC와 모니터 등 '행사 전반 시설·장비'를 요구했습니다.

태블릿을 연결해서 쓸 와이파이도 필요하겠죠. 이건 SK텔레콤 몫이었습니다. SKT에 와이파이 설치와 안내 키오스크를 담당하라고 했습니다.

해외 장관 등 VIP 손님들의 이동 수단도 기업이 챙겨야 합니다. 현대자동차에 '제네시스급' 의전차량 30대와 수소버스를 주문했습니다.

기업 행사를 중기부 입맛에 맞게 조정해달라고도 했습니다. 기업들이 여는 '클라이밋 서밋'이라는 포럼을 APEC 중소기업 장관회의 기간에 열도록 하고, 장관 축사도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카카오 재단법인인 카카오임팩트와 투자사 소풍벤처스가 함께 여는 포럼인데, 소풍벤처스는 대기업도 아닌 설립 10년 차의 중소 투자사입니다.

■ '알뜰살뜰' 기업 맞춤형 협찬도

중기부는 기업에서 조달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알뜰살뜰 받아 가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동행축제 등에 쓰일 '부스'가 대표적입니다. 협찬을 받으면 중기부는 장소만 대고, 부스 설치부터 안에 들어가는 물품과 운영까지. 장소 빼고는 다 기업이 지출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올리브영을 운영하는 CJ에는 'K-뷰티' 홍보 부스를, 삼양식품에는 'K-푸드' 부스를 차려달라고 했습니다. 행사용 부스를 마련하고 운영하는 데는 보통 2천~3천만 원이 듭니다.

유통회사들에는 'VIP용 선물'과 사은품을 달라는 요구도 함께 들어갔습니다. CJ올리브영엔 VIP용 선물세트를, 삼양식품엔 사은품용 불닭볶음면을 협찬하라고 했습니다.

제주삼다수는 삼다수 9천 병, 동아오츠카는 캔 음료 1만 개와 냉장고 10대 요청을 받았습니다.

피날레는 한화에 들어간 불꽃 협찬 요청입니다. VIP를 맞이하기 위한 불꽃쇼를 후원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런 행사용 불꽃에는 15억 원어치가 들어간다고 합니다.

NH농협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5대 은행도 중기부 연락을 받았습니다.

회사당 1억 원씩 현금을 출연하라는 거였습니다. 여기에 NH농협은 'K-푸드' 부스에 들어갈 쌀 간편식도 제공하라는 '깨알 같은' 추가 요구도 받았습니다.

■ "타 부처·기업 고려하겠다"는 기업에 "빨리 답 달라"

기업 반응은 어땠을까요.

KBS가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협업이 가능하다고 확답을 준 곳도 있지만 비용 부담으로 거절한 곳도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협찬 요청에 대한 기업 측 답변 자료. (자료 제공 :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

다른 대기업의 지원 현황과 다른 부처와의 형평성을 고려하겠다며 답변을 유보한 곳도 많습니다.

한화는 다른 기업의 지원 현황을 고려해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불꽃쇼'를 하려면 제주도청과 협의가 필요하고, 환경오염 이슈도 있다고 했네요.

현대자동차는 제주도로 차량 수송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를 댔습니다.

'진짜 이유'는 어떨까요. 협찬 요청을 받은 한 대기업 관계자는 KBS에 "홍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정부 행사"라면서 "사실상 뜯어가는 것"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이번 협찬 대상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 부처에서 개별 기업에 직접 연락해 협찬을 요구하는건 매우 이례적이고, 특히 국정농단 사태 이후로 부처도 기업도 조심하는 분위기라 이런 요청은 거의 없다"면서 "그럼에도 정부 부처가 요구하면 기업이 단칼에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기부 측은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 답변을 달라고 압박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 '자발성' 문제 지적할 수 있다면서도 "잘 개최하겠다"

이런 중기부의 협찬 요청, 평상시였다면 당연히 불법입니다.

청탁금지법은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 있는 금품은 얼마가 됐든 일절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부금품법도 기업이 자발적으로 내는 금품이어도 못 받는다고 못 박아뒀습니다.

다만, APEC의 경우 국가적인 행사인 만큼 특별법을 만들어 협찬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놓긴 했습니다.

이 특별법에 따라 협찬을 받아도 조건이 붙습니다. 기업들이 하는 기부가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중기부가 기업들과 회의를 할 때, 중기부의 '후원 요청서'와 기업들이 빈 칸을 채워 넣어야 하는 '협찬 신청서'를 함께 들고 간 이유입니다.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먼저 요청한 협찬처럼 보이기 위해섭니다.

협찬받을 물품 리스트부터 기업들이 쓸 협찬 신청서까지 중기부가 '셀프'로 만들었는데, 기업의 자발적인 협찬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KBS의 보도가 방송된 뒤, 중기부는 " 실무 차원의 협의 및 의사 타진을 추진한 바 있으나, 기업의 자발적인 의사에 반하여 협찬 등을 결정하도록 강요한 바 없다"라는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

하지만, 중기부 관계자는 "자발성 문제를 지적할 여지는 있는 것 같다"고 인정했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①] 불닭볶음면부터 제네시스까지…중기부 ‘꼼꼼한’ 협찬 요구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75692

[단독②] “점수 따려면 협찬해라”…중기부 ‘갑질’ 논란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75693

(그래픽 이영현)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네이버, 유튜브에서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KB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1465 영원의 빛 품은 그라프 나비의 날갯짓 [더 하이엔드]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64 [이상렬의 시시각각] 보수에도 ‘바보’가 필요하다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63 강세장 진입에… 증권사 잇단 ‘코스피 3000’ 전망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62 20대는 놀고 60대는 일한다?…고용 통계 뜯어보니 [잇슈 머니]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61 美 상무부, 냉장고·세탁기 철강 부품에도 50% 관세 부과... 삼성·LG 타격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60 사표 안내고 출근도 안하는 '尹정부 어공' 해임 절차 착수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9 美 투자 늘리는 GM… 인당 6300만원 더 달라는 한국 노조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8 [속보] 美, 냉장고·세탁기도 25% 철강관세 부과…韓 가전업체도 영향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7 대기업 사옥이 내것?…'빌딩 조각투자' 리츠 수익률 기지개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6 [속보] 조은석 내란 특검 "사초 쓰는 자세로 수사논리에 따라 직 수행"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5 242명 탄 인도 여객기 유일한 생존자…영국인 남성 “함께 탄 내 형제는 어디에”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4 '차명 재산 의혹' 오광수 대통령실 민정수석 사의(종합)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3 오광수 대통령실 민정수석 사의···이 대통령 수리시 ‘1호 낙마’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2 [속보] '내란 특검' 조은석 "사초 쓰는 자세로 오로지 수사논리에 따라 직 수행"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1 [2보] 조은석 내란 특검 "사초 쓰는 자세로 수사논리에 따라 직 수행"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50 ‘내란 특검’ 조은석, ‘김건희 특검’ 민중기, ‘채상병 특검’ 이명현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49 [속보] 내란 특검 조은석 "사초 쓰는 자세로 수사논리에 따라 직 수행"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48 北, 좌초했던 구축함 ‘강건호’ 사고 23일 만에 진수…김정은 참석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47 李, 3대특검 지명…내란 '조은석' 김건희는 '민중기' 순직해병 '이명현' new 랭크뉴스 2025.06.13
51446 [속보] 조은석 내란 특검 “사초 쓰는 자세로 수사논리에 따라 특검직 수행” new 랭크뉴스 2025.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