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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던 고(故) 장제원 전 국민의힘 의원의 '성폭력 의혹 사건'이 결국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습니다.

형사 사건의 피의자가 숨지면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도록 규정한 수사기관의 사무규칙에 따른 조치입니다.

경찰이 장 전 의원 사건을 끝까지 수사해 성폭력 의혹의 진실을 규명해 주기를 바랐던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은 "가해자의 결정을 피해자보다 존중하는 너무나 불합리한 처사"라고 비판했습니다.

■ '혐의 부인' 장제원 전 의원 주장 반박할 증거들 경찰에 제출됐지만….

서울경찰청은 어제(10일) 오전, 장 전 의원이 준강간치상 혐의로 고소된 사건을 '피의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 종결 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 A 씨 측은 불송치 결정 통지서를 수령했는데, 여기에는 피해자와 여성단체들이 요구했던 성폭력 혐의에 대한 판단은 담기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씨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경찰의 불송치 이유서 주요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불송치(공소권 없음) 이유서 주요 내용
- 피의자는 피해자와 호텔에 간 사실이 없고 강간, 추행한 사실이 없다며 범행을 부인
- 피해자가 사건 발생 이후 작성한 메모, 사건 발생 이후 근무했던 직장 익명게시판에 피해 당시 상황 및 본건 피해로 인한 정신적, 심리적 충격을 글로 작성한 사실 확인
- 피해 직후 지인들에게 피해 사실 이야기한 사실 확인
- 피해 직후 해바라기센터에서 성폭력 응급키트 채취한 사실 확인
- 사건 당일 호텔 내부 촬영한 사진, 동영상, 피의자와 대화한 문자 캡처 사진, 병원 진료 내역 등 증거자료 제출됨
- 피해자가 사건 당일 호텔 내부 촬영한 동영상은 서울청 과학수사대 영상분석 결과 동영상 파일이 사건 당일 촬영되었고, 그 후 파일 내용 변경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됨
- 호텔 객실에 피의자의 선거 포스터 사진이 저장된 휴대전화, 남성(피의자로 추정)이 침대에 나체로 누워있는 모습, 해당 남성이 피해자에게 말하는 육성 등 확인됨
- 피해자는 사건 이후 정신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은 내역이 확인됨
- 피해자 성폭력 응급키트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결과 피해자의 특정 신체 부위 여러 곳에서 동일한 남성 유전자형 검출됨
- DNA대조 필요성이 있어 피의자 상대로 구강상피세포 채취 의사 확인하였더니 당일 채취 거부, 변호사와 상의 후 결정하겠다고 함
- 피의자 구강상피세포 채취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신청 검토 중 피의자가 사망하여 DNA형을 대조하지 못함
- 피의자는 2025.3.31. 사망함
- 공소권 없음. 끝.

2025. 6. 10. 김재련 변호사 페이스북

장 전 의원은 성폭력 의혹이 불거진 뒤,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습니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경찰은 피해자가 제출한 증거 등을 토대로 수사를 벌인 결과 장 전 의원이 사건이 발생한 호텔에 간 것으로 보이고, 이런 상황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조작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김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불송치 이유서 내용을 종합하면 피해자의 주장이 사실로 인정됐다고 추론할 수 있는데, 이 내용이 장 전 의원의 혐의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실체 판단이 빠져있는 점이 매우 아쉽다"고 말했습니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범죄 특성상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장 전 의원 사건의 경우 A 씨가 성폭력을 인지한 직후 현장 동영상을 촬영하고 DNA 검사지를 받아두는 등 비교적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해 뒀기 때문에, 장 전 의원이 숨졌더라도 경찰이 성폭력 의혹의 진실을 가리는 판단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 A 씨와 김 변호사의 주장입니다.


김 변호사는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 처분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건 사망한 자를 법정에 세울 수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처분일 뿐, 피의자의 범행에 대해 수사기관이 혐의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피의자가 스스로 자신의 방어권을 포기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피해 사실에 대한 실체 판단을 포기하는 것은 '수사기관, 국가'가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를 위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 피해자 A 씨 "사건 종결, 가해자 결정 더 존중하는 불합리한 처사"

A 씨도 입장문을 내고 "피해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회가 너무나 야속하다. 고소하기 전과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경찰의 처분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A 씨는 "더럽고 충격적이었던 그 상황을 휴대전화에 담고 보관했던 것은 저를 보호할 수 있을 때 명확히 보호받고 싶은 마음에서였지만, 객관적이고 명확한 증거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의 죽음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지 못한 채 DNA 채취 거부와 동시에 스스로 삶을 끊어냈다. 그의 잘못으로 10년을 고통 속에 살았는데, 단 한 번의 경찰 조사를 받은 후 죽음으로 증거를 인멸했다"고 덧붙였습니다.

A 씨는 "(경찰의 사건 종결로) 제가 제출한 증거들은 종이조각이 되어버렸다"며 "가해자가 수사절차를 일방적으로 중지시켜 버렸고, 수사기관은 가해자의 결정을 피해자인 저의 결정보다 존중하는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에게 너무나 불합리한 처사"라고 주장했습니다.


■ 여성단체들 "피의자 사망으로 성폭력 사건 실체 '무'로 돌리는 일 반복되어선 안 돼"

피해자 지원 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도 경찰의 수사 종결 관행을 비판했습니다.

이들은 장 전 의원이 숨진 뒤, 가해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 사건 종결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긴급 연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의혹 사건에서도 박 전 시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경찰에 고소장이 제출된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고, 이 결정이 박 전 시장의 지지자들 사이에서 '억지 피해'라는 주장의 한 근거로 활용되며 피해자가 수년간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겪게 되는 이 같은 상황이 더는 반복되어선 안 된다며 1만 1,626건의 개인·단체의 연명을 받아 서울경찰청에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성폭력상담소와 여성의전화는 "과거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서 경험했듯 피해자에게 가해질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유사한 선례가 있다는 점에서 경찰의 올바른 대응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이번 결정으로 피해자는 또다시 침묵을 강요받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피의자 사망으로 성폭력 사건의 실체를 무로 돌리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며 "10여 년의 세월과 불이익, 보복, 비난에도 진실을 지켜 낸 피해자에게 우리 사회가 정의롭게 응답하길 촉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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