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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 씨가 기계에 끼이는 사고로 숨졌습니다.

2018년 태안화력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 사망 사고로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 위험이 하청에만 떠넘겨지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공론화됐지만 또 다른 비극을 피하진 못했습니다.

김용균 씨 사망사고 이후 산업 현장의 안전 규제를 강화한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안)'이 2020년 1월 시행됐고 중대재해처벌법도 지난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들여다보면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 현장은 여전히 안전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고 발생 기계 (사진 제공: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

■ 속속 드러나는 부실한 안전 관리 정황

'태안화력 고(故)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차 자체 조사 결과를 내놨습니다.

대책위는 이번 사고가 위험의 외주화, 안전 시스템 공백이 만든 구조적 사고라고 짚었습니다.

김충현 씨는 사고 당시 발전 설비 장비 밸브를 여닫는 손잡이 부품을 절삭 가공하다가 기계에 빨려 들어간 걸로 보입니다.

사고 직후 원청사인 한전KPS는 설명자료를 통해 "금일 작업 오더(명령)에 포함되지 않았던 사항으로 사고의 정확한 경위를 파악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대책위는 "고인의 작업이 임의로 실시된 게 아니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은 "현장의 노동자가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겠나?"라고 반문했습니다.

예외적 긴급 작업의 경우 담당자에게 바로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고인의 작업 중 상당수가 이 긴급 작업 경로로 고인에게 직접 요청이 들어왔다는 겁니다.

최진일/태안화력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 상황실장
"상당수의, 한 절반 이상의 작업들이 바로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 긴급 작업 루트를 따라서 재해자에게 바로 요청이 들어온 것으로 파악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결국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대책위는 작업 전 관리감독자와 현장 노동자가 모여 작업 내용과 안전 작업 절차 등을 논의하는 TBM(작업 전 안전점검회의·Tool Box Meeting) 문서를 확인해 보니, 사고 당일 김 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TBM 문서에도 공사감독자란에 한전KPS 담당자 서명이 날인돼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고인의 작업 내용을 회사 측도 알고 있지 않았겠냐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회사가 서명은 했지만, TBM 문서 내용은 사실상 김 씨 혼자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대책위 설명입니다. 결국 작업 전 안전 회의도 형식적으로 진행돼 안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위험천만한 작업이었지만 고인이 작업하던 기계에 달린 방호 커버 역시 사고를 예방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접근에 대한 방지 용도가 아닌 가공 시 비산되는 쇳조각 등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겁니다.

최진일/태안화력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 상황실장
"선반 작업은 법적인 방어 장치를 어지간히 다 갖춰놨다 하더라도 여전히 사망 사고의 위험성이 높은 그런 장비인 겁니다."

■위험 작업에도 '나 홀로'…"위험은 아래로 또 아래로"

하청에 또 재하청, 다단계로 하청이 이뤄지다 보니 2인 1조가 필요한 위험한 작업도 관행처럼 1인 작업으로 이뤄졌습니다.

김 씨가 혼자 작업하던 도중 사고가 발생했을 때, 기계에는 비상정지 기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버튼을 눌러줄 동료는 없었습니다.

김 씨는 한국서부발전→한전KPS→한국 파워 O&M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하청 구조의 2차 하청 소속 노동자였습니다.

대책위는 "원청이 던져준 이윤이 줄어들자,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이 가장 먼저 위협받았고, 위험은 아래로 또 아래로 흘렀다"고 비판했습니다.

김영훈/한전KPS 비정규직지회장
"2018년도에 김용균 청년 노동자의 죽음 이후로 원청과 회사는 이제 현장을 많이 개선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2차 하청에서는 그 시스템적 구조가 여전히 그대로 바뀌지 않은 상황이었고, 불합리한 상황들이 겹쳐서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책 마련 없으면 올여름 공동파업"

지난 9일 전력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부가 김충현 씨 사망 관련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올여름 공동 파업으로 맞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인 1조 작업 의무화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등도 주장했습니다.

김 씨 동료인 김영훈 공공운수노조 한전KPS 발전비정규직지회장은 "고인도 생전에 해고 불안감과 불법 지시 등 구조적 문제로 힘들어했다"며 "원청이 하청 업체 노동자들을 위험에 빠지게 하고 교묘히 '위험의 외주화'가 진행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문화제 (사진 제공: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대책위)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어제(10일) 태안화력발전소 등 전국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감독을
본격 개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한전KPS,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특별감독에 준하는 고강도 감독에 돌입하고, 태안발전본부 등에는 대규모 감독반을 투입해 산업안전과 근로기준 합동 감독을 진행합니다.

고용부는 감독 결과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될 경우에는 처벌을 포함해 엄중하게 조치할 방침입니다.

이와 함께 태안화력발전소와 작업 방식 및 설비가 유사한 전국의 15개 석탄화력발전소와 협력업체들에 대한 산업안전 분야 기획 감독도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이번 감독에서는 법 위반 사항을 엄중히 조치할 뿐만 아니라 법령상 의무가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안전수준 제고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을 적극적으로 개선 권고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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