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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지난달 17일 대만 타이베이시 대만전력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녹색공민행동연맹의 추이쑤신(崔?欣)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제공


“오늘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는 1988년, 바로 이 자유광장에서 처음 반핵 시위를 하고 대만전력 본사까지 행진했기 때문입니다.”

무더운 날씨에 모든 이가 지쳐있었지만 78세 시신민(施信民) 전 국립대만대학교 교수의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그가 말한 자유광장은 독재자 장제스(蔣介石)를 기리는 중정기념당이 위치한 곳이다. 38년간 지속한 오랜 계엄령이 끝난 뒤 대만 민주화운동의 중심 무대가 된 자유광장은 대만 탈핵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지난달 17일 마지막 핵발전소가 멈추며 대만은 마침내 탈핵을 이뤘다. 무더위에 많은 이들이 지쳐 그가 바란 대로 대만전력 본사까지 행진하지 못했지만, 30대 초반부터 대만 반핵운동을 일궈온 원로는 이날 자리한 70여 명의 반핵아시아포럼 해외 참가자들에게 대만 탈핵운동의 시작을 알리고 싶어 했다.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만 탈핵운동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치열한 투쟁 역사를 가졌다. 대만전력은 란위섬(蘭嶼島) 원주민인 타오족(達悟族)에게 ‘통조림 공장’이라고 속여 핵폐기장을 세웠고, 이에 대한 저항은 수십 년간 계속됐다. 또 제1야당 대표가 단식 투쟁에 나서고 수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를 통해 핵연료 장전만 남겨둔 공정률 98%의 제4핵발전소(룽먼 핵발전소)를 폐쇄한 사건은 세계 탈핵운동사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이다. 제4핵발전소 건설 반대운동은 에너지 민주주의 실천이기도 했다. 1994년 공랴오(貢寮) 지역 주민들이 시행한 주민투표는 국경을 넘어 일본 니가타현 마키정의 1996년 핵발전소 건설 찬반 주민투표로 연결되었고, 한국에서는 2004년 전북 부안 핵폐기장 관련 주민투표에도 영향을 끼쳤다.

대만 탈핵 정책은 2016년 차이잉원 정부가 ‘비핵가원(非核家園, 핵발전소 없는 나라)’을 선언하면서 비롯되었다. 동아시아 최초의 공식적인 ‘탈핵 선언’으로, 가동 중이던 6기의 핵발전소 모두를 폐쇄해 핵 없는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결단이었다. 당시 대만 핵발전 비중은 14.1%로 절대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만 정부는 2018년 제1핵발전소 1호기 폐쇄를 시작으로 40년 설계수명 만료가 도래한 핵발전소를 하나씩 폐쇄했다. 물론 반발도 적지 않았다. 찬핵 진영은 2018년과 2021년 두 차례 국민투표를 통해 탈핵 결정을 되돌리려고 했지만, 대만 시민사회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지속적인 사회적 압력과 감시를 통해 정치권의 탈핵 공약 이행을 강제했고, 마지막 핵발전소 폐쇄일 당일 대만의 핵발전 비중은 3.2%까지 하락했다.

지난달 17일 저녁, 대만전력 본사 앞에서 열린 집회는 참가자들이 기쁨을 나누면서도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을 대비하는 자리였다. 국민당과 민중당 등 야당이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위한 법안을 통과시키고 폐쇄된 핵발전소 재가동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발의했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에서는 여소야대로 의회 다수를 차지한 야당의 독단적 입법 추진에 항의해 전국 각지에서 국회의원 파면안이 제출되는 등 정치적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야당은 총통 파면을 추진하면서 오는 8월 핵발전소 재가동 국민투표를 실시해 여당을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녹색공민행동연맹의 추이쑤신(崔愫欣) 사무총장은 이날 집회에서 “오늘은 축하할 날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고 탈핵 의지를 밝혔다. 그는 오는 8월 열릴 국민투표에 대해 “이 싸움이 마지막이 되기를 바라며, 여기서 승리한다면 대만은 진정한 핵발전소 폐지 시대로 접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당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관할 당국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제3핵발전소가 재가동되는 것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채택했다. 이는 핵발전소 안전을 전제로 재가동 동의 여부를 묻고 있어 단순한 핵발전소 찬반과는 거리가 멀고 탈핵 진영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또 정권 지지율, 중국과의 양안 관계 등 복잡한 국제정세가 맞물려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나는 지난 30여 년간 굳건히 싸워온 대만 탈핵운동과 시민사회의 저력을 믿는다. 거대한 자본과 기득권이 움직이는 핵발전소를 멈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을 만들어낸 대만 시민사회의 힘이라면 완전한 탈핵의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마지막 원자력발전소인 제3원전 2호기가 지난달 17일(현지시간)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대만 의회가 이보다 나흘 앞선 지난달 13일 원전 수명을 최대 20년 갱신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대만 정부는 당장 원전 증설이나 재가동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당분간 대만은 동아시아 최초이자 유일의 탈핵 국가로 존재할 예정입니다. 대만의 마지막 원전 폐쇄를 맞아 아시아 곳곳에서 탈핵운동을 전개하던 활동가들이 대만 타이베이시에 모였습니다. 현장을 방문한 활동가들이 아시아 핵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6회 릴레이 기고를 통해 전합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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