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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 단속 공포에 휩싸인 LA 자바시장
"ICE, 처음부터 사람들 범죄자 취급해
히스패닉 직원 떠나고 손님도 끊길 판
한인 사회 젖줄인데... 얼마나 버틸지"
6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급습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자바시장의 한 구역이 9일 인적 없이 한산하다. ICE는 그날 히스패닉 불법 체류자 20여 명을 체포했다. 로스앤젤레스=이서희 특파원


"그나마 남은 손님들마저 다 빼앗아 가는구나 싶죠."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의 패션 디스트릭트, 이른바 '자바시장'에서 만난 한인 상인 윤모(62)씨는 최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이 시장을 겨냥해 불법 이민 단속을 벌이고 있는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요. 또 급습 나올까 봐 불안해서 주말부터 문 닫은 가게도 많아요."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윤씨는 지난 6일 밤 ICE가 중남미 출신 불법 체류자 20여 명을 체포해 간 것으로 알려진 한인 소유 대형 의류도매업체 인근에서 여성복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날 ICE는 인근의 홈디포(건축자재 판매점)도 동시에 급습해 도합 40여 명을 연행했다. 이는 6일부터 LA 곳곳에서 벌어진 단속 반대 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시위 진압에 주방위군과 해병대까지 투입하는 등 사태 파장을 더 키우려는 모습이다.

6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급습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자바시장의 거리가 9일 인적 없이 한산하다. 사진에 찍힌 매장들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로스앤젤레스=이서희 특파원


"히스패닉 채용 불가피한데" 상인들의 한숨



자바시장은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도·소매 의류점이 즐비한 곳으로, 그중에서도 한인이 운영하는 점포가 가장 많다. 1994년 미국으로 이민한 윤씨는 자바시장에서만 30년째 장사를 해 왔다. '미국판 동대문 시장'으로 불리는 자바시장엔 윤씨 같은 한인 사장이 한때 2,000여 명 있었다. 지금은 그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손님의 발길이 그만큼 뜸해진 탓이다. "코로나 (팬데믹) 때 확 줄고, 요 며칠 완전히 끊겨버렸다"고 윤씨는 말했다. "한창 좋을 때는 지금보다 7배는 더 벌었다"고 덧붙이는 그의 목소리에는 씁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자바시장에서 일하는 히스패닉 종업원 가운데 불법 체류자가 적지 않다는 건 수십 년 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상인은 "LA 인구 중 중남미 출신이 절반이나 돼(약 48%) LA에서 사업하는 사람 중 히스패닉 직원을 두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라며 "예전처럼 시장 상황이 좋으면 모를까, 벌이가 시원치 않은데 일손은 많이 필요하니 불법 체류자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채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귀띔했다.

6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이 급습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자바시장의 거리가 9일 인적 없이 한산하다. 사진에 찍힌 매장들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로스앤젤레스=이서희 특파원


"합법 체류자도 떨 수밖에" 트라우마 된 그날



그러나 당국이 6일 밤처럼 기습적, 강압적인 단속에 나선 건 처음이라고 이날 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그날의 일은 직접 당하지 않은 이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6일 단속 상황을 잘 아는 한 중년 여성 상인은 "갑자기 ICE 요원 수십 명이 가게로 들어오더니 손님들을 전부 내보낸 다음 히스패닉 종업원 60여 명을 벽 보고 일렬로 세웠다더라"라며 "그런 뒤 일일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그중에 22명을 데려갔다"고 전했다. 그는 "신분 확인 전부터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했다"며 "아무리 합법 체류자고 문제없이 장사하는 사람이라도 무섭지 않을 수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바시장을 또다시 급습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요원들을 촬영한 사진. 자바시장 상인 윤씨가 '지인이 촬영한 것'이라며 기자에게 스마트폰을 들어 보여주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이서희 특파원


단속 당국은 자바시장을 집중 타깃으로 삼은 듯하다. 일부 상인들에 따르면 ICE 요원들은 이날 오전에도 시장 내 대형 상가를 기습 방문했다. 윤씨는 "계속 나와서 사람들을 잡아가면 히스패닉 종업원들은 그만두고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위험해 보이니까 손님들도 불안해 안 올 것"이라고 걱정했다.

자바시장의 붕괴는 LA 한인 사회의 쇠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우려다. LA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한인 이민자(20만 명 추산)가 살고 있다. 윤씨는 "자바시장은 LA 한인 사회의 경제 젖줄과 같은 곳이다. 보통은 한인 사회 안에서만 돈이 도는데 여기는 외부에서 달러를 크게 벌어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LA 이민 역사와 함께한 곳인데, 이제 위험구역 낙인이 찍혀버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시빅센터 앞 도로에 전날 시위대의 방화로 불에 탄 웨이모 자율주행택시가 잿더미로 변해 있다. 로스앤젤레스=이서희 특파원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시빅센터 앞에서 한 남성이 전날 시위대가 외벽에 새긴 낙서를 지우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이서희 특파원


해병대도 보내는 트럼프... 주말 고비 될 듯



위험천만한 시위가 종일 이어진 전날과 달리 이날 오전 LA 도심은 조용했다. 그러나 자바시장 상인들의 일상이 6일 이전과는 달라진 것처럼, 분명히 전과 같지는 못했다. 연방기관들이 입주해 있는 LA 도심의 시빅센터 앞 도로에는 잿더미로 변해버린 웨이모의 자율주행택시 5대가 대낮까지 남아 있었다. 전날 밤 성난 시위대의 방화로 인해 타고 남은 잔해들이다. 시빅센터 외벽은 시위대가 새긴 반대 메시지들이 빼곡했다.

9일 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열린 불법 이민 단속 반대 시위에서 한 시위자가 진압 장비를 갖춘 경찰 앞에서 멕시코와 미국 국기를 흔들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소규모 시위만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불안한 평화'가 오후까지 이어졌으나, 밤이 되자 다시 진압 당국과 시위대 간 격렬 대치가 시작됐다. 약 1,000명의 시위자는 도심 리틀 도쿄(일본인 거주 지역)에 모여 "ICE는 LA를 떠나라" 등을 외쳤고,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은 또다시 공포탄, 섬광탄 등 비살상 무기를 꺼냈다. 6,000여 명이 거리로 나섰던 8일보다 시위대 규모가 훨씬 작았음에도, 경찰은 전날만큼 강력한 수위로 대응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주방위군에 이어 해병대 소속 군인까지 LA에 파견하기로 했다. 불법 이민 단속을 지속할 것이며, 반대 시위가 계속되면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해 강경 진압하겠다는 예고다. 군경과 시위대 간 대치는 평일 내내 이어지다 이번 주말이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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