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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변호사가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서울지방변호사회 앱의 복대리 중개 기능을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다. 김태욱 기자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민사법정에 출석한 변호사 A씨의 차림은 단출했다. 묵직한 서류가방과 노트북을 든 다른 변호사들과 달리 A씨의 손엔 손바닥만한 수첩과 스마트폰뿐이었다. A씨가 피고석에 앉자 재판장은 “복대리인이신가요?”라고 물었다. “네”하고 짧게 답한 A씨는 ‘본대리’ 변호사의 짧은 요청사항만 재판부에 전했다. 4분만에 재판을 마치고 A씨는 법정을 나섰다. A씨는 변호사의 변호사, 일명 ‘복대리 전업 변호사’다.

10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법조계에는 A씨처럼 민사사건 변호사의 일을 대리하는 ‘복대리’를 전업으로 하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변호사 수가 늘면서 수임에 어려움을 겪는 변호사 등이 자구책으로 복대리를 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앱) 등을 이용해 복대리 사건을 공유하고 수임한다. 이들은 자신을 “사실상 대리기사 같다”고 했다. 부업으로 복대리 사건을 맡으려는 변호사도 덩달아 늘면서 수임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복대리는 ‘대리의 대리’란 뜻이다. 사건 당사자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본대리인’이라면, 그 변호사를 대신해 법정에 대리 출석하는 변호사가 복대리인이다. A씨는 복대리 사건 외에 다른 사건은 거의 수임하지 않는다. 주로 복대리 중개 앱이나 변호사들의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복대리 사건을 수임한다. 사무실은 공유오피스에 주소만 두고 업무는 대부분 자택에서 한다.

A씨는 대리기사처럼 수시로 스마트폰을 보며 사건을 잡아도 “서면 작성에서 오는 고충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5분 대기조처럼 생활한다”는 A씨가 받는 수임료는 통상 건당 10만원 정도다. 지방의 외진 법원일수록 가격은 더 붙는다. 적게는 달에 50~60건, 많게는 80건까지도 맡는다. 이제는 자신을 찾는 ‘단골 로펌’까지도 생겼다. 법원 복도에서 기자와 대화를 나누던 와중에도 사건 수임이 가능한지 물어오는 전화를 받은 A씨는 “지금 일정이 바쁘다”며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불가피하게 기일에 출석하지 못하는 변호사가 급히 복대리를 구하는 것은 오래된 법조계 관행이다. 그러나 최근 복대리 전업 변호사까지 등장한 것을 두고 변호사들은 “어려운 업계 상황 탓”이라고 자평했다. B변호사는 “변호사는 늘어 사건 수임은 어려운데 최근엔 전국에 지점을 내고 온라인 등을 통해 공격적인 고객 마케팅을 하는 ‘네트워크 로펌’도 급성장해 소액사건을 흡수하고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C변호사는“비용절감을 위해 채용을 줄인 로펌들이 한편에선 무리하게 사건을 맡으니 재판기일을 소화하지 못해 복대리를 찾는 경우가 늘었다”며 “수요와 공급이 맞는 상황”이라고 했다.

수임료가 전반적으로 낮아져 “제값을 못 받는다”고 느낀 변호사들의 복대리 선호도 늘었다. D변호사는 “서면작성은 고도의 지식노동인데 지금은 수임료가 너무 낮다”며 “복대리만 맡는 게 훨씬 편하고 좋지 않겠냐”고 했다.

현직 변호사 2700여 명이 입장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지난달 29일과 30일 사건 복대리를 의뢰·수임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C변호사 제공


부업으로 복대리를 함께 뛰려는 변호사들도 늘자 수임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C변호사는 “몇 년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졌다”며 “단체 대화방에 의뢰가 올라오면 몇 초 만에도 마감된다”고 했다. B변호사도 “배달앱·택시 콜처럼 대화방에서 경쟁적으로 댓글이 달린다”고 했다. 실제로 현직 변호사 2700여명이 입장해있는 단체 대화방을 보면 하루에도 여러 차례 복대리 의뢰가 올라오고 금세 마감되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는 변호사들을 위한 ‘복대리 중개’ 앱도 여럿 출시됐다. A씨가 “제일 (이용자 규모가) 크다”고 소개한 앱은 1년 반쯤 전부터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했다. 수임 사건당 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지불한다.

자칫 의뢰인 피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C변호사는 “복대리인은 요청사항만 전달할 뿐 내용을 잘 몰라 사건이 지연되기도 한다”며 “판사가 ‘본대리인 좀 나오시라고 하라’고 핀잔하는 걸 본 적도 있다”고 했다. E변호사도 “변호사를 보고 사건을 맡긴 의뢰인 입장에선 (복대리인이) 달가울 리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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