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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공연
10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음악회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파리 오케스트라,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협연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이 새로운 작품은 창의성이 부족하다. 느린 악장은 얇고 단조로우며 피날레는 끝날 무렵 지루해진다.”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피아노협주곡 4번을 초연했던 1927년 나왔던 비평가의 평가다.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의 수퍼스타급 협주곡인 2, 3번에 가려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연주·녹음 횟수 또한 현저히 적다.

하지만 10일 피아니스트 임윤찬(21)의 연주는 이 저평가된 작품의 르네상스를 예고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그는 파리 오케스트라,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29)와 함께 이 작품의 첫 화음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감정적이지 않지만 독특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임윤찬 특유의 화음이었다. 세계 음악계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는 민첩한 추진력으로 도입부의 상승하는 에너지를 함께 끌어올렸다.

임윤찬, 메켈레, 파리 오케스트라의 이날 공연은 중앙일보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이들은 유명한 작곡가의 덜 알려진 작품을 새롭게 조명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음악적 혁신을 보여줬다.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4번은 20세기 초중반의 청중에게 지나치게 현대적이었다. 예상을 깨는 불협화음, 복잡한 전개, 피아니스트에게 주어진 자유로움은 기존의 격식을 깨트렸다.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음악회가 10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이날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김종호 기자
하지만 임윤찬과 메켈레는 그러한 파격이 현재의 청중에게 창의적 영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피아니스트와 지휘자의 속도는 빠르고 거침없었다. 라흐마니노프가 산발적으로 배치해 놓은 하이라이트 구간은 두 음악가의 예리한 해석을 거쳐 도발적으로 살아났다. 2악장에서 임윤찬은 작곡가의 중얼거림 같은 노래를 가장 적당한 수준의 감정 개입으로 해석해냈다. 마지막 악장에서는 라흐마니노프가 예견한 20세기 음악의 현대성이 충분히 살아났다. 정돈된 대신 무질서하지만 그 안에서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음악이었다.

무엇보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사이의 호흡이 눈에 띄었다. 메켈레는 피아노가 들어오는 첫 소절부터 오케스트라의 음량을 미세하게 조절하며 균형을 맞췄다. 이 젊은 지휘자를 전 세계의 중요한 오케스트라들이 1순위로 초청하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와 무대 경험을 늘리고 있는 임윤찬은 노련함으로 그 경험치를 보여줬다. 특히 4분의 3박자와 4분의 4박자를 절묘하게 오가는 3악장에서 두 음악가는 묘기에 가까울 정도로 정밀한 앙상블을 선보였다.

9년 만에 내한한 파리 오케스트라는 자신들의 모국어와 같은 작품을 들고 왔다. 협연 전 공연 첫 곡으로는 프랑스 현대음악의 아버지와도 같은 피에르 불레즈(1925~2016)의 ‘7대의 금관악기를 위한 이니셜’을 들려줬다. 불레즈의 100주년을 맞아 올해 초 파리에서도 연주했던 경쾌한 작품이다. 2부에는 프랑스 낭만주의를 선도한 작곡가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연주했다. 다섯 악장으로 된 이 작품은 한 젊은이의 사랑과 파국에 대한 정확한 줄거리를 묘사하고 있다. 파리 오케스트라는 1967년 창단 이후부터 이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해 왔다. 메켈레와 함께 녹음한 음반 또한 이달 초 발매됐다.

메켈레의 ‘환상교향곡’ 실연은 음반에 비해 훨씬 다채로웠다. 1악장부터 현악기가 강렬한 사운드로 규모를 키웠다. 빠르고 거침없이 진행한 2악장의 춤곡도 독특했다. 여기에 4악장의 그로테스크함을 메켈레는 실연에서 폭발시켰다. 금관악기들은 맹렬히 소리지르며 단두대의 장면을 표현했고, 광란의 감정이 고양됐다. 마지막 악장의 마녀를 표현하기 위한 뒤틀린 소리들 또한 다이내믹의 폭을 확장했다. 또한 무대 밖에서 들려온 교회 종소리는 전혀 성스럽지 않고 거의 폭력적이었지만 사운드로 청중을 압도했다. 핀란드 태생의 메켈레는 2021년부터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으면서 프랑스 악단의 색채와 개성을 발전시키고 있다.

각자의 창의성으로 조화를 이루는 임윤찬과 메켈레는 세계의 청중이 반기는 조합이다. 이들은 파리 오케스트라와 함께 지난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공연했고, 이달 초에는 파리에서 협주곡 4번을 2회 연주했다. 내년 3월에는 협주곡 2번으로 또다시 파리 무대에 선다. 프랑스 파리의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열리는 이 둘의 공연은 이미 매진된 상태다. 올 12월에는 임윤찬, 메켈레, 시카고 심포니가 시카고에서 슈만 협주곡을 세 번 연주할 예정이다.

임윤찬은 10일 한국 공연의 앙코르로 생상스의 ‘백조’ 편곡(고도프스키)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주제 아리아를 들려줬다. 임윤찬, 메켈레, 파리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은 15일까지 이어진다. 또한 임윤찬은 “라흐마니노프 중 가장 좋아하는 협주곡”이라고 한 4번을 이달 2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일본에서 영국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네 번 연주할 예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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