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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베니션(베네치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트코인을 들고 있는 등신대 모형이 서버에 기대어 있다. AFP 연합뉴스

제47대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사업가 대통령’이다. ‘사업가 출신 대통령’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업가와 대통령직을 함께 수행하며 ‘세계 최고의 관직’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부동산 사업 재벌인 트럼프는 2기 행정부 들어서는 백악관을 사업본부로 삼아 가상자산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상화폐로 손을 뻗으면서 나라의 정책을 움직여 돈의 흐름을 바꿨고, 그새 ‘코인업계 거물’이 됐다.

​아홉달 만에 가상자산 수익 10억달러

트럼프가 지난 아홉달 동안 가상화폐로 벌어들인 수익은 10억달러(약 1조362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5일 포브스가 보도한 수치로, 트럼프 자산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앞서 포천은 3월 말 그의 가상자산이 29억달러, 그 외 자산은 48억달러라고 집계했다.

‘전통 산업’인 부동산 사업 전문가로 인식돼온 트럼프의 가상자산 비율이 어느새 전체 자산의 37%가량이 됐다. 2022년 말 ‘트럼프 슈퍼히어로 디지털 트레이딩 카드’(대체불가능토큰·NFT)를 출시해 조롱받으며 시작한 가상자산 사업이 순식간에 불어난 것이다.

트럼프는 첫 사업을 통해서는 최소 700만달러를 챙겼다고 알려져 있다. 코인데스크는 그가 2기 집권 사흘 전 출시한 ‘오피셜 트럼프’ 밈코인($TRUMP)으로는 지난달 기준 약 3억2천만달러의 수익을 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트럼프가는 멜라니아 코인과 차남 에릭이 설립한 채굴 업체 아메리칸 비트코인 등 다양한 가상화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가의 가상자산 사업 중심에는 지난해 9월 설립한 가상자산 플랫폼 월드리버티파이낸셜(WLFI·월드리버티)이 있다. 대선 두달 전 트럼프는 이 회사의 ‘최고 암호화폐 옹호자’로 등재됐고, 맏아들 트럼프 주니어와 둘째 에릭, 막내 배런은 ‘웹3 대사’로 이름을 올렸다. 트럼프의 오랜 친구인 중동특사 스티브 윗코프와 그의 두 아들 잭, 앨릭스도 공동설립자로 이름을 올렸다. 월드리버티 지분의 60%는 트럼프가 소유이며, 윗코프가의 지분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프로젝트의 기획·운영자들은 따로 있다.

화려한 라인업에도 창업 초기 월드리버티가 발행한 토큰(WLFI)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매매가 불가능하고, 배당금 등 수익도 없어 투자자를 끌지 못했다. 회사가 벌어들이는 수입의 75%는 트럼프가로 귀속되는 설계였다.

지난해 12월29일(현지시각) 중국 출신 가상자산 사업가 저스틴 선이 620만달러(약 86억원)에 낙찰받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벽면 바나나 설치작품 ‘코미디언’의 바나나를 떼어서 먹고 있다. AFP 연합뉴스

트럼프가 사업 파트너가 된 가상자산 1인자

그런데 중국계 가상자산 억만장자 저스틴 선이 ‘WLFI’ 3천만달러어치를 매입하면서 반전이 시작된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직후였다. 블록체인 플랫폼 트론 설립자인 선은 620만달러(약 86억원)에 낙찰받은 바나나(예술 작품으로 경매에 나옴)를 먹어치우는 등 기행으로 유명해진 이다. 그는 인위적으로 거래량을 부풀렸다는 이유 등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소된 상태였다.

선은 올해 1월 4500만달러 규모의 ‘WLFI’ 추가 매입 사실을 밝힌다. 아부다비 세계 가상화폐 콘퍼런스에서 윗코프 특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된 뒤다. 이들이 어떻게 얽혔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선의 투자로만 트럼프가는 56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선은 곧 월드리버티 자문역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증권거래위와 선은 법원에 계류 중이던 소송을 일시 중단하는 데 합의하고, 법원도 이를 승인했다.

이후 월드리버티가 내놓은 토큰 5억5천만달러어치가 모두 팔려, 트럼프가는 4억달러를 챙겼을 것으로 추산된다. 트럼프의 차남 에릭은 “우리가 역대 한 일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것들 중 하나”라고 자랑했다.

선의 ‘투자’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 설립자 자오창펑에게도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오는 자금세탁 방조 혐의로 2023년 미국에서 징역 4개월에 벌금 43억달러 형을 받은 데 더해 증권거래위와의 소송도 걸려 있었다. 선이 시들했던 ‘WLFI’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면 자오는 월드리버티가 4월 출시한 스테이블코인 ‘USD1’에 날개를 달아줬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가 달러 등에 고정된 가상화폐로, ‘USD1’은 달러와 1대1로 연동돼 있다.

지난달 초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의 국부펀드가 바이낸스에 투자한 20억달러를 ‘USD1’로 지불했다고 알려져 이목을 끌었다. ‘비이성적 암호화폐’의 저자 지크 폭스는 자오가 투자금을 ‘USD1’에 맡기는 ‘선택’을 한 것이라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 증권거래위는 지난달 29일 자오에 대한 소송을 취하해, 바이낸스도 투자의 ‘대가’를 받은 셈이다.

파키스탄 정부도 올 들어 월드리버티와 손을 잡았다. 파키스탄 정부는 4월 보도자료를 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지원하는” 월드리버티가 파키스탄 정부 산하 크립토위원회와 “공식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파키스탄은 수조달러에 이르는 희귀광물 등의 거래를 타진하고 있는데, 월스트리트저널은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를 방문한 윗코프가 파키스탄 정부에 별도의 사업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파키스탄 크립토위원회는 바이낸스 창립자 자오를 전략자문으로 임명했고, 월드리버티는 파키스탄 정부 인사를 자문역으로 앉혔다. 자오는 윗코프 쪽 관계자들을 대동하고 말레이시아 총리와 외교부 장관, 키르기스스탄 대통령도 만났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디지털 트레이딩 카드’ 홍보 페이지. 컬렉트트럼프카즈닷컴 갈무리

​공직 활용 사익 추구

트럼프의 가상자산 급증은 친가상화폐 정책과도 맞물린다. 트럼프는 첫 임기 때만 해도 가상자산을 마약 거래나 탈세에나 쓰는 것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두번째 임기에서 태도가 급변한 그는 가상자산 정책을 자문하는 실무그룹을 만들고, 3월 초 첫 가상자산 정상회의를 열었다. 비트코인을 전략 비축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가상자산의 불법 사용을 조사하는 법무부 부서는 폐쇄했다.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가상화폐 활용 밀거래 플랫폼 ‘실크로드’ 창립자 로스 울브릭트를 전격 사면하기도 했다. 세금을 체납한 가상자산 이용자들을 단속하기 위한 국세청 관련 법안은 무효화했다. 여기에 2500억달러 규모의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제도화하는 법안(GENIUS Act: 미국스테이블코인국가혁신법)은 곧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의 공직을 이용한 사익 추구 행위는 가상자산에 국한되지 않는다. 카타르로부터 수억달러짜리 항공기를 선물받은 것은 이미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트럼프의 맏아들이 관장하는 트럼프 오거나이제이션(오거니제이션)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오만, 아랍에미리트연합에 걸쳐 부동산 프로젝트를 여럿 추진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15억달러 규모의 트럼프 골프클럽 사업을 승인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기에 절차를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르비아 정부는 위조된 문서에 근거해 베오그라드 유적지를 허물고 트럼프 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허가했다. 트럼프가를 위한 국제적 특혜는 다른 곳에서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서 대통령 및 백악관의 윤리, 법률 자문역을 맡았던 버지니아 캔터 변호사는 최근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핵심은 그가 공직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골적인 트럼프의 행태에 탄식이 쏟아지지만 미국 사회에서 그를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은 떠오르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미국은 최고 권력자의 거침없는 사익 추구와 부패까지 겹치면서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김지은 기자 [email protected]

트럼프 대통령의 맏아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왼쪽)가 지난달 27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베니션(베네치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서 럼블의 크리스 파블로프스키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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