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처를 국정의 중심으로
대통령은 핵심 현안만… 만기친람은 안 된다
"140억 배럴 묻혀 있다"… 尹의 말이 '족쇄로'
참담한 '정보 실패'… 부산 엑스포 유치 불발
연금개혁·킬러문항 배제… 현장 혼란만 자초
대통령은 핵심 현안만… 만기친람은 안 된다
"140억 배럴 묻혀 있다"… 尹의 말이 '족쇄로'
참담한 '정보 실패'… 부산 엑스포 유치 불발
연금개혁·킬러문항 배제… 현장 혼란만 자초
편집자주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권력의 함정에 빠졌다. 절제하지 않고 권한을 남용하거나 협치의 중용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소불위 대통령제의 한계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달라야 한다. 기회를 살리되 위험 요인은 줄여 박수받고 임기를 끝내길 바란다. 그래서 제언한다. 이것만은 꼭 지켜달라고. 5회에 걸쳐 구성해봤다.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경북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 막대한 석유와 가스 매장 가능성이 있다는 브리핑을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금세기 최대 석유 개발 사업으로 평가받는 남미 가이아나 광구의 110억 배럴보다도 더 많은 탐사 자원양입니다." 지난해 6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 첫 국정 브리핑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윤석열 전 대통령 '만기친람1'(萬機親覽)의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나선 국정 브리핑에서는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내년 상반기까진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올 것이다" 등 대통령의 발언에 어울리지 않는 구체적이고 단정적인 표현이 쓰였다. 대통령이 앞장서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탓에, 정부와 여권은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었고,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즉흥적으로 내지른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2월에야 "정무적 개입이 있었다"고 실토했다.
대통령의 말은 천금같이 무거워야 한다. '추측'에 기반해선 안 되고 '사실'만 따져 정제돼야 한다. 대통령의 엉뚱한 한마디에 부처는 요동치고, 정책의 물줄기가 바뀐다. 윤 전 대통령이 난데없이 불 지른 산유국의 꿈에 정부는 "2,200조 원에 달하는 경제 가치가 있다" 등 과장된 주장까지 이어갔다. 그러나 결국 지난 2월 1차 시추 결과, 정부는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며 실패를 인정해야만 했다.
윤석열 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출범한 이재명 정부에선 대통령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대통령은 경제와 같은 당면한 핵심 어젠다에만 집중해 국정 방향성만 제시하고, 세부적인 국정 현안은 전문성 있는 부처에 일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선택과 집중'
으로 가르마를 타주는 것만으로도 핵심 정책은 충분한 정책 동력을 확보해 추진될 수 있다. 그러나
만사에 대통령이 관여하면 목표는 흐려진다
. 정보 실패가 발생한다거나, 국민 여론을 도외시하는 등 정책 왜곡이 발생한다. 대통령의 실패는 곧 국정의 실패로 이어져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권도, 국민들도 불행해지는 악순환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은 민주화 이래 가장 강력한 대통령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회 5분의 3을 차지한 압도적인 여당의 지원을 등에 업은 만큼, 하고 싶은 일이라면 못 할 일이 없다. 정책 추진에 그만큼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 실패 사례를 되돌아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정보 실패에 따른 패착으로 2030 부산 엑스포 유치과정이 꼽힌다. 대통령실에 미래전략기획관실을 두고, 6대 그룹 총수까지 나서 범정부적 유치전을 벌였다. 결과는 29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119표)에 90표 차로 뒤진 참패였다. '최소 60개국'이 부산을 지지할 것이라는 정부 예상은 크게 엇나갔다. 외교부 차원에선
냉정하게 판세 분석을 하려 하면, 돌아오는 건 "잘리고 싶냐"는 대통령실의 압박
이었다. '1차 표결 결선, 2차 승리'라는 잘못된 판단 또한 여기에서 비롯됐다. 유치전에 참여한 민간 기업들 사이에선 '실패할 것'이란 관측이 파다했지만, 대통령실만 모르쇠였다. 한 정부 관계자는 9일 "대통령실 분위기 때문에 그랬는지 마지막까지 해볼 만하다는 보고만 사방에서 올라왔을 뿐, 냉정한 판세에 대한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11월 대국민 담화에서 세 차례나 "제 부족"이란 표현을 쓰며 사과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노력해준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윤석열 정부 핵심 과제였던 연금개혁은 또다른 실패 사례다. 지난해 4월 국회 시민대표단의 숙의 과정을 바탕으로 국민의힘(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과 민주당(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5%)이 협상안을 도출했지만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구조개혁 동시 처리 등을 명분 삼아 22대 국회로 미루려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가 국민의힘이 제시한 절충안 소득대체율 44%안을 전격 수용하며 물러났지만, 대통령실 눈치를 본 국민의힘이 거부하면서 또 한번 기회를 날렸다. "
연금개혁의 공이 민주당에 넘어갈까 봐 판을 엎은 것
"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상황이 바뀐 상태였다. 윤석열 정부에서 타결하지 못한 연금개혁은 결국 불법계엄으로 직무가 정지된 지난 3월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3% 안'으로 겨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정치권에선 "윤 전 대통령이 없으니 여야가 합의할 수 있었다
"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정권의 이익과 고집에 집착해 국가 개혁과제의 골든타임을 놓칠 뻔했다. 그래픽=김대훈 기자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수능 출제'에 관여해 현장의 혼선을 초래
한 경우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6월 '사교육 카르텔'을 언급하며 이른바 '킬러 문항' 배제를 지시했다. 그러자 교육부와 총리실은 수능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대한 감사를 벌이겠다고 엄포를 놨고, 교육부의 대입 담당 국장은 경질됐다. 윤 전 대통령의 섣부른 발언은 수능 난이도 예측을 오히려 어렵게 해 수험생들에게 더 큰 혼란을 초래했다. 입시 정책이 불확실해지면서 '사교육 카르텔'로 지목된 학원가는 더 호황을 누렸다. 사교육을 잡겠다는 윤 전 대통령의 경고가 오히려 부메랑이 된 것이다. 백승진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정책위원장은 "수험생 사이에서는 '킬러 문항'은 배제돼도 수능 변별력 확보를 위해 상급 난이도의 문제는 오히려 늘 것이라고 걱정했고, 학원가도 이를 자극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만기친람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 목소리로 지적했다. 조귀동 명지대 경제학과 객원교수는
"대통령이 개입하면 정책 리스크는 정치 리스크가 된다"며 "필요한 정책이 정치적 찬반의 대상이 돼 버리는 것
"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의 컨트롤 탓에 공무원 조직의 자율성, 유연성이 크게 훼손돼 버린다"고 설명했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만기친람 식으론 제 발에 스텝이 꼬여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면서 "실수를 한다고 해도 장관의 책임이지, 대통령의 책임이 돼 버리면 국정의 위기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1
만기친람임금이 모든 정사를 친히 보살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