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열 열사 38주기 …12·3 계엄 겪은 후배들 ‘특별한 추모’
9일 연세대 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8주기 이한열 추모제에서 학생대표들이 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입장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연세대 상경대생들 ‘추모기획단’
“민주 열사들의 행보 밑거름 되어
계엄 해제하고 선거까지 치러내”
1987년 6월9일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2학년생 이한열씨는 학교에서 열린 집회에 참여했다.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항의하는 전국 규모 집회가 열리기 전날이었다. 교문 앞에서 ‘독재 타도’를 외치던 그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병원으로 실려갔고 그해 7월5일 숨졌다. 그의 죽음은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38년이 지난 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학생회관 옆 한열동산에선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는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식엔 검은 옷을 갖춰 입은 청년들이 자리를 지켰다. 이 열사의 연세대 상경대학 후배들이다. 지난해 12·3 불법계엄을 겪은 이들은 “민주주의의 위협을 이겨낸 이번 6월은 더욱 특별하다”고 말했다.
매년 6월이면 연세대 상경대학 학생들이 모여 ‘이한열추모기획단’을 꾸린다. 38주기 기획단 단장을 맡은 김민결씨(21)는 “올해는 계엄과 탄핵을 거쳐 6월 항쟁의 결과물이었던 국민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은 해”라며 “의미가 큰 만큼 열심히 추모행사를 꾸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추모식에 입장했다. 한열동산에 세워진 기념비 위에 영정을 조심히 올려둔 김씨는 뒤따른 학생들과 함께 묵념했다.
기념비에는 ‘198769757922’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이 열사가 최루탄을 맞은 1987년 6월9일·병원에서 사망한 7월5일·민주국민장이 치러진 7월9일·그의 나이 22세를 가리키는 숫자들이다.
청년들은 “1987년 6월이 없었다면 올해의 민주주의 선거도 치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 처음 참여한 최병준씨(20)는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민주 열사들의 행보가 밑거름이 되어 12·3 계엄을 해제하고 선거까지 올 수 있었다”며 “후배로서 이한열 열사를 마음에 되새기고 싶어 추모식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권여민씨(21)도 “역사책으로만 봤던 비상계엄을 직접 겪으면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체감했다”며 “정권이 바뀌고 맞이한 추모기간이라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단에 참여한 조현수씨(22)는 “이번 탄핵 촉구 광장에 나왔던 시민 한 명 한 명도 하나의 이한열이었다”며 “민주정부가 탄생한 만큼 광장의 요구처럼 다양한 목소리가 앞으로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황준우씨(20)도 “앞으로도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앞서 세운 민주주의를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추모식에서 김씨는 말했다. “선배님 우리는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걸었던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