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은 '메이비 해피엔딩'의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두 무대에 올라 기뻐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버전 '메이비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공연계 오스카'라 불리는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을 휩쓸었다. 한국에서 창작·초연된 작품의 토니상 작품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작곡가 윌 애런슨(44)과 한국 작가 박천휴(42)가 공동으로 대본과 작사를, 애런슨이 작곡을 맡았다.

2016년 한국서 초연... 최초 토니상 작품상

'어쩌면 해피엔딩'은 8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에서 뮤지컬 신작 부문 작품상과 연출상(마이클 아던), 극본상(박천휴·윌 애런슨), 음악상(작곡 윌 애런슨, 작사 박천휴·윌 애런슨), 남우주연상(대런 크리스), 무대 디자인상(데인 래프리·조지 리브)을 수상했다.

뮤지컬 '메이비 해피엔딩'팀이 8일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공연의 일부를 시연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어쩌면 해피엔딩'은 가까운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곧 폐기 처분될 운명인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교감하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2014년 우란문화재단 개발 지원작으로 선정돼 2015년 내부 리딩 공연과 130석 규모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의 트라이아웃(시험) 공연을 거쳤다. 2016년 12월 서울 대학로의 약 300석 규모 공연장에서 초연 후 지난해까지 대학로 300~400석 규모 소극장에서 다섯 시즌 공연됐다. 지난해 11월 뉴욕의 1,000석 규모 벨라스코 시어터에서 개막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메이비 해피엔딩'. ⓒMatthew Murphy and Evan Zimmerman

'어쩌면 해피엔딩'의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메이비 해피엔딩'. ⓒMatthew Murphy and Evan Zimmerman

'윌휴'로 불리는 창작자 애런슨과 박천휴는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으로 2016년 뉴욕에서도 '우리가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What I Learned from People)이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의 리딩 공연을 진행했다. 두 번째 리딩 공연에 참석한 지금의 리드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가 브로드웨이행을 제안했다. '스프링 어웨이크닝' 등으로 토니상을 여덟 차례 받은 리처즈에 이어 마이클 아던이 연출자로 합류했고, 2020년 애틀랜타 얼라이언스 극장 트라이아웃 공연을 거쳐 지난해 11월 마침내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기존 지식재산권(IP)을 사용하고 인지도 높은 배우를 동원하는 게 대세인 브로드웨이에서 로봇이 등장하는 순수 창작물 '어쩌면 해피엔딩'은 개막 초기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평단의 찬사와 함께 입소문이 나면서 반전 흥행에 성공해 내년 1월까지 티켓이 오픈돼 있는 상태고, 내년 가을에는 볼티모어에서 시작하는 전미 투어도 예정돼 있다. 2017년 일본에서도 공연됐고, 한국 공연은 오는 10월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 뉴욕타임스는 "'어쩌면 해피엔딩'은 한국과 일본에서 공연하고 애틀랜타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공연한 후 뉴욕에서 개막하는 길고 비전통적인 여정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윌휴' 콤비, 한국 토양 토대로 성장해 성과"

토니상은 영화의 아카데미, 음악의 그래미, 방송의 에미와 함께 미국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미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이번 토니상 수상 대상인 지난해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뉴욕 브로드웨이는 팬데믹 이후 침체에서 벗어나 역대 최고 수익을 기록한 시즌이었다. 덴절 워싱턴, 조지 클루니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연극에 잇따라 출연하면서 흥행 수익이 높아진 것뿐 아니라 스타일적으로도 다양한 작품이 등장한 한 해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비롯해 4관왕에 오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쿠바가 배경이고, 에이브러햄 링컨의 배우자인 메리 토드 링컨을 그린 코미디 연극 '오, 메리!'가 깜짝 흥행했다. 연극 '퍼포스'의 카라 영은 흑인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연예 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한국에서 초연된 '어쩌면 해피엔딩'을 비롯해 영국, 쿠바, 이탈리아, 이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모두 후보에 올랐다"며 "세계가 토니상 시상식을 통해 뉴욕으로 왔다"고 묘사했다.

박천휴(왼쪽) 작가와 작곡가 윌 애런슨이 8일 미국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제78회 토니상 시상식에서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으로 극본상과 음악상을 받은 후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어쩌면 해피엔딩'은 앞서 열린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 6관왕, 드라마 리그 어워즈 2관왕, 외부 비평가 협회상 4관왕을 차지하며 일찌감치 토니상 수상의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도 본 시상식 전 열리는 사전 행사에서 극본상·음악상·무대디자인상을 받아 3관왕에 오르며 최다 부문 수상작을 예약했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우수한 연극·뮤지컬을 시상하는 토니상은 1947년 처음 열렸고 연극과 뮤지컬을 나눠 시상한 것은 1949년부터다. 후보작은 약 50명의 토니상 지명 위원이 결정했고 최종 수상자는 약 830명의 투표인단 투표로 결정했다.

전미도(왼쪽)와 정문성이 출연한 '어쩌면 해피엔딩' 2020년 공연 장면. CJ ENM 제공

토니상에서 한국 뮤지컬계의 존재감은 꾸준히 부각돼 왔다. CJ ENM이 '킹키부츠'(2013)와 '물랑루즈'(2021), 'MJ'(2022)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수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제작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의상상(린다 조)을 받았다. 서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김하나 조명디자이너가 지난해 뮤지컬 '아웃사이더'로 조명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이번에는 한국에서 초연된 뮤지컬이 작품상까지 받으며 브로드웨이에서 인정받으면서 한국 뮤지컬 토양이 그만큼 단단해지고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공연평론가인 현수정 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는 "'어쩌면 해피엔딩'은 창작자 콤비가 개발 프로듀서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며 뉴욕에서 공연을 올리겠다는 소망을 진정성 있게 실현한 경우여서 브로드웨이 진출을 전략적으로 겨냥한 사례와는 다르다"면서도 "두 창작자가 한국 뮤지컬 토양을 토대로 성장했다는 점에서 한국 뮤지컬계의 큰 성과"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