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에드워드 R. 로이벌 연방청사 인근에서 열린 시위 도중 한 시민이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EPA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위대 진압을 이유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 동의 없이 로스앤젤레스에 주방위군을 배치하면서 연방 정부와 주정부 간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배치된 주방위군은 이날 로스앤젤레스 곳곳에서 시위대와 충돌했다.
주방위군 300명 LA 도심 배치…시위대와 충돌
8일(현지시각) 블룸버그 통신 등 현지 보도를 종합하면, 연방 청사 주변에 배치된 주방위군 및 국토안보부 소속 연방 요원들과 시위대간 충돌이 도심 곳곳에서 벌어졌다. 시위대는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나가라”고 외치며 단속 작전을 규탄했다. 일부 시위대가 연방 요원을 향해 물건을 던지자 경찰은 불법 집회를 선언하고 최루탄과 섬광탄을 사용하기도 했다.
단속국은 최근 이민자 단속을 강화해 하루 평균 2000명 이상을 체포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역대 최대 규모의 추방 작전의 일환이다. 단속국은 지난 6일부터 로스앤젤레스 전역에서 대규모 이민자 체포 작전을 벌였고 엘에이에서만 이번 주 118명이 체포됐다고 한다. 그 여파로 도심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3일째 이어지고 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시위를 ‘반란’으로 규정하고 주방위군 2000여명을 투입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 북부사령부는 이날부터 로스앤젤레스 지역 세 곳에 79사단 소속 300명의 병력을 배치했다. 이들은 연방 시설과 인력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다. 로스앤젤레스 시장 캐런 배스는 "도시는 시민들과 함께할 것"이라며 “이번 주방위군 투입은 혼란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에서 열린 연방정부의 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로스앤젤레스 메트로 경찰이 시위대와 충돌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로이터 연합뉴스
주지사 반대에도 주방위군 배치…1965년 이후 처음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 승인 없이 주방위군 2000명을 소집해 시위 진압에 투입하면서 법적·정치적 논란도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연방법전 제10편 제12406조(10 U.S.C. 12406)’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해당 조항은 미국 정부의 권위에 대한 반란이나 그런 위협이 존재할 경우, 대통령이 주방위군을 연방 소속으로 전환하여 동원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동시에 ‘명령은 주지사를 통해 발령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주지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방 차원에서 주방위군이 동원된 건 1965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앨라배마 주의 민권 시위를 보호하기 위해 주방위군을 투입한 이후 처음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은 권력 남용이며, 연방정부가 주방위군을 주정부와 협의 없이 내부에 투입하는 것은 위험하고 비효율적인 선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의 주방위군 배치를 ‘쇼’라고 규정하며 “트럼프가 원하는 혼란을 주지 말고, 평화적으로 행동하자”고 시민들에게 촉구했다. 뉴섬은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과 함께 비판 성명도 발표했다.
8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도심 구치소 앞에서,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방위군, 경찰,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연방군대 동원까지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나라가 이런 식으로 망가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해병대도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도 상황이 격화할 경우 샌디에이고 인근에 있는 해병대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뉴섬 주지사는 “자국민에게 군대를 배치하겠다는 발상은 광기”라고 반박했다.
1878년에 제정된 포시 코미타투스 법은 ‘헌법이나 의회 법률에 의해 명시적으로 허용된 경우와 상황을 제외하고 국내 법 집행에 군대가 관여하는 것을 금한다’는 한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법률에 명시적으로 허용된 경우는 1792년 제정된 반란법이 유일하다. 이 법은 반란, 폭동, 또는 극심한 시민 불안 상황 시 대통령이 군대를 배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회가 견제할 수 있는 권한도 없다. 국내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반란’, ‘폭동’으로 간주해야 가능한 조치라 법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블룸버그는 “이번 병력 투입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시위 대응을 넘어, 연방 권한과 주 자치권, 그리고 헌법적 권리 보장 문제를 둘러싼 중대한 정치적 충돌로 번지고 있다”고 짚었다.
한겨레
김원철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