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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모습. 연합뉴스

" ‘대법관의 수를 24명으로 하고 그중 3분의 1은 주된 경력이 판사가 아닌 자로 함’. "
2010년 3월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 ‘법원제도 개선안’ 중 하나로 발의된 법원조직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이재명 정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현재 추진하는 ‘대법관 30명 증원’ 법안과 유사한 이같은 대법관 증원안을 놓고 15년 전 여야가 국회에서 격돌했다.

당시 대법관 증원을 추진한 건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이었다. 이명박 정부 집권 3년 차 국회는 전체 299석 중 한나라당이 167석을 차지하고 제1 야당인 통합민주당이 84석에 그쳤던 시기다. 총 300석 중 167석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야당인 국민의힘이 107석인 2025년 6월 현재 입법권력의 구도와 정반대였다.



15년 전 한나라당 증원 추진, 민주당 “사법독립 훼손”
사개특위 전체회의.이주영 위원장,주성영 한나라당간사,김동철 민주당 간사,이귀남 법무장관,박일환 법원행정처장 출석

당시 한나라당 소속 의원 15명이 2010년 3월 24일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에 즉시 회부됐으나 검토 끝에 회송됐고, 법사위에 계류하다 18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검토 결과 신중론이 커졌고, 법원행정처도 우려 의견을 표한 끝에 결론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당시 사개특위 논의 과정에선 여당인 한나라당이 상고심 적체 등 사법불신 해소 방안으로 대법관 증원을 추진했다. 당시 대법관 증원의 표면적 명분은 연 3만건의 상고심 문제 해결이었지만 이용훈 대법원장과 독수리 5형제로 불리던 ‘진보’ 대법관이 주도하는 법원 분위기에 대한 여당의 불만이 깔렸었다. 반면에 민주당이 ‘사법독립 침해’라며 적극 반대했다.

당시 여상규 한나라당 의원은 특위 전체회의에서 “20년 전보다 판사 수는 3배가량 늘었으나, 대법관 수는 16명에서 14명으로 오히려 줄어든 만큼 24명 증원이 합리적”이라며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사법개혁에 나서는 것을 부당한 외부 간섭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 양승조 의원은 “법관 인사의 독립, 나아가 사법부의 독립을 해치고 3권 분립을 선언한 헌법질서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엔 대법관 출신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도 별도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부는 정치적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중립적 권력으로 건재해야 하며 이를 훼손하는 것은 사법부개혁이 아니라 사법제도파괴가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당시 법원행정처도 “사법제도 개선을 논의할 때 삼권분립의 대원칙과 사법부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는데, 사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진행 방식은 부적절하다”며 이례적으로 당시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결국 대법관 증원 외의 법조일원화 등 구조 개편은 논의를 지속했고, 결국 사개특위가 2011년 6월 30일 ‘대법관 증원’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보완한 별도 개정안을 발의해 같은 해 7월 18일 공포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만난 취재진에게 대법관 증원과 관련해 공론의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스1

법원행정처는 대법관 증원안에 대해 2025년 현재도 우려하는 입장이다. 상고심 남발을 줄이는 구조 개혁 없이 단순히 대법관 수만 늘리면 사법 시스템에 무리가 가해져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치밀한 조사 없이 일률적으로 대법관 수만 증원하면 사실상 4심제로 판결 확정만 늦어져, 국민에게 큰 불이익이 돌아갈 것이란 심각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희대 대법원장도 지난 5일 출근길에 이례적으로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문제고, 가장 바람직한 개편 방향을 국회에 계속 설명하고 협의할 필요가 있다”며 사실상 더 논의해야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 이후 직접 민주당의 ‘대법관 증원 속도전’에 제동을 걸면서 현재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달 2일 김용민 의원이 발의한 ‘대법관 30명’ 안과 장경태 의원이 지난달 8일 발의한 ‘대법관 100명’ 안은 이 대통령 취임 후인 4일 대안반영 폐기됐고, 지난달 23일 박범계 의원이 발의한 ‘대법관 30명 증원’ 안은 지난달 26일 철회됐다. 현재는 ‘대법관 30명으로 증원, 공포 후 1년 유예기간 뒤 4년간 4명씩 순차적 증원’을 골자로 하는 안이 법안소위를 통과한 상태다.



법조계 “독일法 차용 무리… 상고 시스템 전체 봐야”
민주당 등의 ‘대법관 증원론’은 근거로 ‘대법관이 350명’인 독일의 사법제도를 든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우리나라에 똑같이 적용하기엔 무리”라는 시각이 많다. 독일은 사실상의 최고심으로 작용하는 ‘독일연방헌법재판소’가 있고, 그 전 단계에 최종 법원에 해당하는 ‘연방법원’이 일반법원·행정법원·재정법원·사회법원 등 분야별로 5개가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 대법원의 5배에 해당하는 구조다. 독일의 법관 임용 체계나 법관 수도 우리나라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크다. 독일 사법제도에 밝은 한 고위법관 출신 변호사는 “독일과 우리나라의 사법 환경, 국민적 정서 등 배경이 다른 건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지엽적인 부분만 입맛에 맞게 가져다 쓴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또 법원조직법으로 규정된 전체 법관의 수는 그대로인데 대법원만 덩치를 키울 경우, 하급심은 오히려 인력이 줄고 부실해지거나 업무 과중으로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거 상고심 개선 논의에 참여했던 한 고법판사는 “시스템 개선 없이 대법관 수만 늘려서 해결되는 문제였으면 진작에 해결됐지 않겠나, 섣부르게 추진할 게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행정처 심의관 출신 한 변호사도 “지금의 대법관 증원 논의는 사법제도 개혁을 위한 게 아니고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하는 것일 뿐”이라며 “상고심 개선에 대한 공감대는 어느 정도 있으니, 모든 수단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열린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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