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크모어

Menu

랭크뉴스 › 돼지 신장으로 생명 연장…한국도 내년 첫 임상시험 도전

랭크뉴스 | 2025.06.09 06:54:06 |
미국서 신장 이식 후 130일 유지, 세계 최장 기록
FDA 기준 6개월엔 미달…“1년 이상 생존 목표”
韓도 도전…사회적 합의, 윤리 기준 정립이 숙제

이종(異種) 장기 이식이 만성적인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다. 유전자를 바꿔 면역거부 반응을 없앤 돼지의 신장을 말기 신부전 환자에게 이식하기 위한 정식 임상시험이 미국에서 시작됐다./Pixabay/CC0 Public Domain


심장과 신장 같은 장기(臟器)가 돼지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는 이른바 이종(異種) 장기 이식이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돼지 장기는 크기와 형태가 사람과 비슷해 수십년 전부터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문제는 면역거부반응이다. 인체가 돼지 장기를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바람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과학자들이 마침내 답을 찾아내고 있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달 29일 ‘장기 농장(The Organ Farm)’이란 특집 기사에서 유전자 편집으로 면역거부반응을 원천적으로 없앤 돼지 신장을 이식받고 목숨을 건진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미 신장이 크게 손상돼 이식 수술만이 희망이었지만 맞는 장기를 구하지 못해 다른 대안이 없던 환자들이었다.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약 3700만 명이 만성 신장 질환을 앓고 있으며, 이 중 약 10만명이 신장 이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기증 장기가 턱없이 부족해, 2023년 한 해 동안 시행된 신장 이식은 2만5000건에 불과했다. 미국 국립신장재단은 매일 약 12명이 신장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돼지 신장, 사람 몸에서 4개월간 기능 기록
과학자들은 예전부터 장기 이식 대기자가 넘쳐 나는 상황에서 이종 이식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심장 이식 수술의 대가였던 노먼 셤웨이(Norman Shumway, 1923~2006)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는 20년 전 사이언스지에 “유전자 편집, 복제, 면역 억제 기술의 발전과 투자자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이종 이식의 실현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1968년 미국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시켰다.

셤웨이 교수의 예측은 현실이 되고 있다. 최근 돼지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는 연구가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가장 주목받는 기업 중 하나는 미국의 바이오 기업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 코퍼레이션(UTC)이다. UTC는 무균시설에서 사육한 돼지의 유전자를 변형해 사람에게 이식할 수 있는 신장인 ‘U신장(UKidney)’을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돼지 신장을 인간화하기 위해 10가지 유전자를 편집했다. 6개의 인간 유전자를 추가하고, 4개의 돼지 유전자를 억제하는 방식이다.

UTC는 올해 2월 유전자 편집을 통해 면역거부반응을 줄인 돼지의 신장을 신부전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승인받았다. 미국에서 이종장기 이식 상용화를 위한 허가용 임상시험으로는 처음이다. 회사는 최소 6개월간 투석을 받았고 다른 질환이 없는 환자 6명에게 먼저 임상시험을 하고, 성공하면 참여 환자를 5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미국의 또 다른 바이오기업 e제네시스(eGenesis)도 지난해 FDA 승인을 받고 신부전 환자에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올 1월에는 60대 남성에게 두 번째로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e제네시스는 간부전 환자에게 돼지 간을 이식한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연내 이식 수술 대상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임상 승인 신청을 FDA에 신청할 예정이다. e제네시스의 임상시험에는 영국의 오가녹스(OrganOx)도 참여한다.

중국에서도 이종 장기 이식 임상시험에 속도가 붙었다. 클론오건 바이오테크놀로지(ClonOrgan Biotechnology)는 지난 3월 60대 여성에게 돼지 신장을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이종 이식 전문가인 미국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의 데이비드 쿠퍼(David Cooper)교수는 “우리의 목표는 환자가 돼지 신장을 이식받고 최소 6개월에서 1년 이상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FDA는 이식 후 6개월간 신장이 작동해야 성공했다고 인정한다.

지난해 3월 처음으로 유전자 변형 돼지 신장을 이식받은 미국인 리처드 슬레이먼(62)씨는 수술 두 달 만에 숨졌다. 당시 수술은 e제네시스가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의 신장을 사용했다. 이식 수술을 진행한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측은 신장 이식으로 사망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지난해 11월 미국인 53세 여성 토와나 루니에 이식한 UTC의 돼지 신장이 4개월이 조금 넘는 130일간 기능을 유지한 것이 최장 기록이다. 루니는 이식 수술을 받고 올 2월 병원에서 퇴원했고 투석도 중단했다. 하지만 나중에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나 이식한 돼지 신장을 제거했다. 환자는 다시 투석 치료를 받으며 건강을 되찾았다.

사람과 유사한 돼지 이종 장기 비교./그래픽=손민균

한국도 연구 속도…“내년 임상시험 승인 목표”
이종 장기 이식은 한국에서도 수요가 많다. 만성적인 이식 장기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국내에서 2906명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가 세상을 떠났다. 최근 정부는 이종 장기 이식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3년 5년 내 이종 장기 이식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380억원 규모의 국가과제를 진행 중이다. 연구 범위는 신장·심장·간 같은 주요 장기에서부터 췌도·각막·피부 등 세포 조직까지 포함한다. 현재 윤익진 건국대병원 외과 교수(대한이종이식연구회 회장) 주도로 영장류 대상 전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국가독성과학연구소(KIT)는 ‘이종고형장기이식 영장류 수술 후 관리·생체 모니터링’ 사업을 수행 중이다. 최근 국내 기업 옵티팜이 개발한 형질전환 돼지 신장을 원숭이에 이식해 221일 생존하는 기록을 세웠다. 돼지 심장 이식 후에도 217일의 생존기록을 세워, 임상 기준으로 제시되는 180일을 모두 초과했다.

국내 민간 기업들도 이종 장기 이식에 뛰어들었다. 옵티팜, 제넨바이오 등이 대표적인 기업이다. 옵티팜은 형질전환 돼지를 개발하고 있다. 심장, 췌장 등 장기의 크기가 인간과 비슷한 미니돼지의 유전자를 변형해 면역거부반응을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회사는 국내 최초로 돼지 유전자 4가지를 제거하고 인간 유전자 6개를 넣는 ‘유전자 10개 변형 돼지’를 개발 중이다.

김현일 옵티팜 대표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원숭이는 미국산보다 체구가 작아 생존 기간이 제한되며, 뇌사자 장기를 통한 임상 연구가 제한되는 등 여러 제약이 있었다”면서도 “내년까지 돼지 췌도를 포함한 이종 장기 이식을 위한 임상시험계획(IND)을 식약처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넨바이오는 삼성서울병원 장기이식센터장, 서울실험동물연구센터장을 역임했던 김성주 전 대표가 이끌어 기대를 받았지만, 최근 수익성 악화로 회생절차에 들어갔다. 하지만 인수합병(M&A) 투자자를 확보하지 못해 지난 5일 회생절차 폐지 신청을 냈다.

의사가 이식 수술 도중에 면역거부반응이 없도록 유전자 편집을 거친 돼지 신장을 들고 있다./미국 뉴욕대 랑곤 의료센터

“해외처럼 뇌사자 이식 연구 허용돼야”
윤현익 건국대병원 교수는 “유전자 편집, 형질전환 돼지 등 기술은 이미 개발됐지만, 현재로선 이종 장기 이식을 위한 임상시험 진입에는 생존 일수 충족, 임상 대상자 선정 등 현실적인 장벽이 높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미국과 중국처럼 뇌사자에 이종 장기를 이식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뇌사자에서 먼저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하고 실제 환자로 확대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미국 의료진은 2022년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57세 남성에게 처음으로 돼지 신장을 이식했다. 당시 이식 수술 23분 만에 돼지 신장이 소변을 생성하기 시작했으며, 사흘간 정상적으로 기능했다.

중국 과학자들은 지난 3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유전자 변형 돼지의 간이 뇌사자에게 이식된 뒤 10일간 정상적으로 기능했다고 밝혔다. 돼지 간은 인체에 이식되고 2시간 뒤부터 담즙을 분비했다. 윤 교수는 “뇌사자 대상 이종 장기 이식을 위해서는 사회적인 공론화를 통해 뇌사자를 사망자로 인정하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zlopfu3

조선비즈

목록

랭크뉴스 [49,932]

15 / 2497

랭크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