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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전두조씨, 10일 개관 민주화운동기념관 방문
지하 손발 묶여 온갖 고문…보안사 갈월동 분실 추정
납북 귀환 어부 전두조(왼쪽)씨와 김승호(가명)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 앞에서 자신들이 고문당하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은 현장이 보존된 채 전시 공간으로 리모델링돼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오는 10일 정식 개관한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군사독재 시절 김근태·박종철 등 재야인사와 학생들을 잔혹하게 고문했던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이 6·10 민주항쟁 38주년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오는 10일 정식 개관한다. 행정안전부 산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이사장 이재오)가 운영하는 이 기념관은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장 및 고문 피해자에 대한 기록·전시물을 볼 수 있는 구관(M2)과 대구 2·28 항쟁부터 4·19 혁명, 6·10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신관(M1)으로 구성된다. 12·3 내란사태로 예기치 않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한 가운데, 과거 국가폭력의 현장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만한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한겨레는 지난달 28일 고문 피해를 당한 납북 귀환 어부 두 사람과 함께 개관을 앞둔 기념관에 보존된 고문 현장을 찾았다.
“아, 여기는 욕조가 있었구나.”

김승호(가명·71)씨가 509호 조사실 앞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1987년 1월 서울대생이었던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을 당하다 숨진 곳이다. 내부엔 물고문하던 욕조와 침대, 취조했던 책상과 의자가 예전 그대로 재현돼 있고, 박 열사의 영정이 놓여 있다. 함께 온 전두조(71)씨도 감정이 북받치는 듯했다. “비참해지네요. 제가 물고문당한 곳과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납북 귀환 어부 김승호·전두조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옛 치안본부(현 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을 방문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고문이 자행된 공간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전시 시설로 리모델링한 민주화운동기념관 구관(M2)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를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만드는 작업은 2021년 착공 뒤 5년 동안 이어졌는데, 개관을 앞두고 1987년 이후 가장 중대한 민주주의 위기로 여겨지는 내란사태가 벌어졌다. 공간이 지닌 의미도 그만큼 커졌다.

납북 귀환 어부 김승호(가명, 왼쪽)씨와 전두조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민주화운동기념관 교육동 회의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동갑내기 두 사람이 17살 되던 1971년 8월 오징어잡이 배 승운호(선원 23명)를 타고 동해에 나갔다가 납북된 일은 어떤 운명의 시작이었다. 1년1개월간 북한에 억류돼 있다가 1972년 9월 귀환하자마자 합동심문반의 고문수사를 받았던 두 사람은, 13년 뒤인 1985년 초가을 다시 낯선 이들에 의해 각자 납치되듯 끌려갔다. 승용차 뒷좌석에 앉자마자 얼굴에 점퍼가 씌워졌다. 2박3일 고초를 겪고 나와보니 언덕배기 주택가였고, 서울 용산역이 보였다. 그들에게서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은 한 기자는 그곳이 경찰이 운영한 남영동(행정구역상으로는 갈월동) 대공분실이라고 일러줬다. 그들도 그렇게만 알았다. 드디어 그 현장을 볼 기회가 이번에 생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일단 위치가 달랐다. 이날 두 사람은 전철을 타고 1호선 남영역에서 내려 민주화운동기념관까지 걸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당시엔 큰길 건너편 쪽에서 조사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조사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엔 욕조가 없었어요. 대신 조사실 바닥에 트렌치(배수구)가 있었죠.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그리고 천장에 체인이 달려 있었고요. 결정적으로 여기처럼 5층이 아니었어요. 저희는 지하로 내려갔죠.” 김씨의 말이다.

납북 귀환 어부 김승호(왼쪽, 가명)씨와 전두조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장을 보존한 민주화운동기념관 4층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은 오는 10일 정식 개관한다. 정용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김씨는 조사실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천장에 달린 쇠사슬 같은 체인에 손과 발이 묶여 공중에 매달렸다. 수사관이 그의 얼굴에 물수건을 덮고 주전자로 물을 부었다. 과거에 받았던 질문이 되풀이됐다. “(북한으로부터) 지령받은 게 뭐냐”는 거였다.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자, 이번에는 고춧가루를 탄 물이 얼굴에 부어졌다. 그 뒤엔 전기고문이었다. 삐삐선(전선)을 양 손가락에 대고 다이얼을 돌리면 혈관과 근육이 벌떡벌떡 일어서는 느낌이었다. 전씨가 조사받은 방의 천장엔 체인이 없었다. 대신 긴 막대기에 손과 발이 묶인 채 공중에서 통닭구이 고문을 받았다. 역시 물고문과 전기고문이 이어졌다. 전씨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절규했다.

수사관들은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김씨는 온갖 고문을 당하고 나올 때까지 고문 가해자가 안기부·보안사·경찰 중 어디 소속인지 끝내 알지 못했다. 반면 전씨는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였다”고 했다. 수사관이 자신을 풀어줄 때 “어려운 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줬는데 거기 ‘안기부’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보기관의 속성상 오히려 혼선을 주려는 속임수였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날 이들은 어디로 끌려갔던 것일까.

가장 가능성이 큰 곳은 보안사(현 방첩사령부) 갈월동 대공분실이다. 1970년대 말 전두환씨가 보안사령관으로 있던 시절 보안사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갈월동 사무소 또는 갈월동 호텔이라 불렸던 조사실이 용산에서 서울역으로 가는 큰길을 기준으로 남영동 대공분실 반대쪽 언덕배기 주택가에 있었는데, 지상에는 사무실이 있었고 지하에는 조사실을 운영했다”고 말했다. 김씨·전씨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는 증언이다. 이 인사는 “보안사 대공처가 용산 인근에 있던 서빙고·동빙고 분실과 함께 갈월동 분실도 관할했다”며 “1988년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며 모두 사라진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납북 귀환 어부 김승호(가명)씨가 지난달 28일 오전 민주화운동기념관 3층 ‘국가폭력의 가해자-대공부서’라는 제목이 붙은 전시관에서 정보기관 조직도를 살펴보고 있다. 고경태 기자

이날 김씨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신을 수사한 이들이) 보안사 요원 같다”고 말했다. 기념관 3층 ‘국가폭력의 가해자―대공부서’라는 제목이 붙은 전시관에서 정보기관 조직도를 유난히 뚫어지게 쳐다보다 나온 말이었다. “군대에 갔을 때 툭하면 보안대에 끌려갔어요. 워낙 보안대 사람들을 수시로 만나다 보니 그 사람들 인상착의가 눈에 익었어요. 1985년에 저를 잡으러 온 30대 수사관들의 분위기도 딱 그랬거든요.”

경찰이 운영한 남영동 대공분실은 보안사 갈월동 분실보다 늦게 생겼다. 내무부 장관 김치열이 건축가 김수근에게 설계를 의뢰해 1976년 지어졌다. 그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시기는 1985년이다.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이 이곳에서 악랄한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다. 동시에 ‘고문 기술자’ 이근안(1938년생)의 이름이 떠올랐다. 김씨가 ‘이근안’을 입에 올렸다. “이근안만 고문 기술자인가요? 저한테 고문한 사람도 이근안 못지않았어요. 다 고문 기술자였다고요.”

김씨는 구타를 하거나 각목을 무릎에 끼우고 지근지근 밟는 고문을 ‘싸구려’라고 말했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진짜 고문은 물고문부터죠. 원하는 답이 안 나오면 한 말 주전자에 고춧가루 타서 안 죽을 만큼 부어요. 그게 고문 기술이에요. 그다음은 전기고문이잖아요. 다이얼을 빨리 돌리면 그나마 참을 수 있어요. 다이얼을 천천히 돌리면 미쳐버려요.”

그 고문 기술은 두 사람 모두 18살 되던 해에 일찍이 경험했다. 장소는 너무나 뚜렷이 기억한다. 강원도 속초시청 앞 해동여인숙, 김씨가 중학생 때 영화 보러 가끔 갔던 동보극장 바로 옆에 있던 건물이다. 1972년 9월 박정희 정권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며 남북 화해 무드를 조성하는 가운데 납북된 160명의 어부가 속초항으로 돌아왔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먼저 여인숙의 좁은 방으로 들어가 ‘벌레’가 되어야 했다. 두 사람은 이 방 저 방에서 터져 나오던 비명을 기억한다. 일주일 동안 고문을 당했다. 매일 두명씩 다른 사람이 들어와 각목으로 짓밟거나 물고문을 했다. 전기고문을 할 때는 세 명이 들어왔다. 몸부림치지 않도록 두 명이 양편에서 붙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고문을 가한 사람들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해군 보안대, 해경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합동심문반이었다.


“북한에서 무슨 지령을 받고 왔는지 대라고 했어요. ‘지령’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모르는 걸 어떻게 말해요. 끝까지 아무 말도 안 했더니 제가 자백을 한 것처럼 자기들 맘대로 진술서를 조작했어요.”(김승호)

“허위 자백을 안 하니까 나중에 수사관들이 ‘우리 모가지 날아간다’면서 애원도 했어요. 애원하고 때리고…. 그래서 불러주는 대로 (간첩과) 접선한 것처럼 말을 꾸며서 자백을 했어요.”(전두조)

두 사람은 강원 속초경찰서 유치장에서 79일을 살다 나왔다. 국가보안법·수산업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받은 결과였다.

고향(강원 고성) 친구이자 같은 배를 탔으며 같은 시기에 두 차례나 고문을 당했던 두 사람은 평생의 동반자가 됐다. 김씨가 1978년 7월 군대를 제대한 뒤 무작정 상경할 때도 둘은 함께였고, 서울 청계천8가의 여인숙 골방을 전전하며 일용직으로 3년여를 버틸 때도 함께했다. 다행히 둘 다 전기 기술을 배워 가정을 꾸리고 자리를 잡았다.

“저희가 뭘 잘못했나요? 조그만 어촌에서 오징어잡이 배 타고 나간 죄밖에 없고 납북된 거였는데, 죽어라 때리고 고문하고, 억울해서 못 견디겠어요.” 김씨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평생을 흠 잡히지 않게 조심조심 살았다. 실수할까 봐 여태 술 한모금 마신 적도 없다. 수사관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내일 예비군 훈련이니 어디를 가더라도 예비군 훈련은 받고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을 정도로 법을 지키며 살았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며 김씨는 “짠하다”고 했다. 전씨는 “소름 끼친다”고 했다. 둘이 당한 고문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여러 공간에서 당했다는 사실이 실감 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터뷰 초반 “내 마음속 지워지지 않는 기억과 상처를 또 끄집어내기 싫어 오늘 올까 말까 망설였다”고 했던 김씨는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 “오길 너무 잘했다. 나중에 식구들과 꼭 함께 와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고문당했던 장소가 강렬하게 궁금해졌노라고 했다. 아직 트라우마가 남아 있지만, 그곳을 꼭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경찰·안기부·보안사가 운영했던 그 끔찍했던 국가범죄를 증언하는 비밀 고문실은 거의 사라지거나 폐쇄됐다. 지금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 하나만 원형 그대로 남았다.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린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기자들이 대공분실을 바라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김혜윤 기자 [email protected]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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