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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 탐구생활]
<44> 지니TV·ENA 드라마 ‘당신의 맛’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드라마 '당신의 맛'. 지니TV 제공


지니TV·ENA ‘당신의 맛’ 은 전북 전주의 한 작은 식당 주인과 그 지역에 불쑥 나타난 대기업 상속자의 만남을 다룬 정통 로맨틱 코미디다. 식당 주인 모연주(고민시)는 전기가 끊기는 것도 모를 만큼 식당 경영에는 소홀하나, 요리만큼은 직접 재배한 식재료를 고집하고 거래처를 결정하는 데에도 신중한 완벽주의자다.

그에 반해 강하늘이 연기하는 한범우는 마케팅이 요식업의 전부라 생각하는 사업가로 후계 경쟁에서 밀려 전주로 내려온 식품 대기업 상속자 중 하나다. 범우의 목적은 연주의 레시피를 훔쳐 ‘미쉐린 3스타급’ 레스토랑을 만들고 그 성공을 발판으로 그룹 내 입지를 되찾는 것이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한 연주는 그 속내를 훤히 알면서도 경영자와 셰프의 역할을 철저히 분리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맛집' '지방' 설정, 백종원의 '골목식당' 연상시켜



이윤만 추구하는 대기업 상속자와 진심 담긴 한 그릇을 준비하는 지방 요리사. 두 주인공의 상반된 설정은 누가 누구에게 감화될지,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싹틀지 예측이 가능한 구도를 만든다. 그래서 ‘당신의 맛’은 작품의 배경인 전주의 사소한 풍경들을 서정적으로 담아내 자칫 뻔하게 느껴지는 장르적 설정을 상쇄하려 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골목식당'. SBS 방송 캡처


하지만 작품 내에서 전주는 도시의 피로를 정화하는 무대로 호출되고, 지역은 ‘정겹고 느린 삶’이라는 익숙한 감각 코드로 소비된다. 또한 이 감각은 내부자의 언어가 아니라 외부의 기대와 기획을 따라 구성된다. 지방에서의 노동과 현실은 화면 바깥으로 밀려나고, 정서는 살아 있지만 맥락은 서사에 깊게 스며들지 못한다. 이처럼 지역을 ‘느낌’으로만 호출하는 방식은, 로컬을 배경으로 한 기성 드라마가 반복해 온 한계를 다시 느끼게 한다.

‘맛집’과 ‘지방’이 드라마 속에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는 무대로 그려질 때,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또 하나의 콘텐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예능일 것이다. 그가 출연한 미디어에서 지역은 대부분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는 장소’로 소환되고, 맛은 특정한 경험이 아닌, 일정한 기준과 기대를 따라야 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백종원을 직접 모델로 삼지는 않았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식품기업 ‘한상’의 대표 한여울(오민애)의 경영 철학 역시 백종원을 연상시킨다.

백종원의 대표 예능이라 할 수 있는 ‘골목식당’은 많은 자영업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었고 지역 상권의 활성화와 요식업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했지만, 동시에 맛을 ‘경험’이 아닌 ‘기준’으로 구조화하면서 맛집에 대한 평가의 권력을 대중에게 이양시켰다. 그의 등장 이후 맛집은 더 이상 발견이 아닌 인증의 대상이 됐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지방 도시들은 그의 눈길을 기다리며 맛집을 중심으로 한 관광 코스를 기획해 기꺼이 외부의 평가 대상이 되고자 한다.

리뷰가 경험을 제한하는 시대, '맛'이란 무엇일까



백종원 대표가 만든 ‘맛집 문화’를 통해 우리는 누군가가 ‘맛집’이라고 인증한 장소를 찾아가고, 그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기대한다. 또한 우리는 다른 지역을 여행할 때 다른 사람들의 추천 맛집을 찾아 방문하고, 그것을 여행의 가장 중요한 경험으로 인식한다. ‘요식업’과 ‘지방 도시’를 소재로 한 ‘당신의 맛’은 이러한 세태를 꼬집기보다는 ‘요리’와 ‘지역’이 교차하는 지점에 안전하게 머물며 다소 밋밋한 로맨스를 그려낸다.

'당신의 맛'. 지니 TV 제공


작품 전체에 등장하는 전주의 낭만적인 풍경과 모연주가 만드는 요리들은 우리에게 ‘지역의 맛’이라는 감각을 일깨우지만, 그 감각을 소화하는 방식은 맛집과 지역을 다루는 기존 미디어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평가가 감각을 대신하고 리뷰가 경험을 제한하는 시대의 창작물은 누군가의 기준에 의해 승인되어 온 ‘맛’과 ‘지역’을 대중에게 환원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서울과 자본으로부터 수탈된 경험이 만든 쿰쿰하고 비린 맛. 깔끔하지도 않고, 장사 수완 따윈 없지만 그 지역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불완전한 풍경의 맛. 어쩌면 내가 모연주에게 기대했던 맛은 미쉐린이 탐내는 파인다이닝 한 상이 아니라, 고작 ‘맛집’ 따위로 강등당한 지방의 굴욕적인 한 상,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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