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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명문·부호 우당家…못 배우고 가난한 후손의 삶 씁쓸
경남 함양군 금호마을의 이종원씨 댁. 채 33㎡(10평)에 못 미쳐 보였다. 이임태 기자


“부산에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집이라는 게 월세도 사글세도 아니었어요. 부끄럽지만 그냥 남의 집에 얹혀 근근이 살았습니다.”

만주 신흥무관학교 설립 주역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종손자 이종원(74)씨가 경남 함양군 수동면 지리산 자락 끄트머리에서 가난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씨는 우당의 바로 위 친형인 이철영(1863~1925, 건국훈장 애족장) 선생의 친손자다. 독립운동가 후손이자 명문가 후예지만 무학에 가까운 배움과 가난 속에 평생을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먹고 사는 일에 쫓겨 결혼도 하지 못했다. 5~6년 전 동생 종석씨가 사는 함양 수동 금호마을로 들어와 채소를 심어 먹고 산다.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은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 6일 현충일 기념사에서 강조해 언급했다. 공식처럼 굳어진 이 말이 조선 최고 명문가이자 부호인 우당 가문에서도 여실히 입증되는 셈이다.

이씨의 집안은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백사 이항복(선조 때 영의정)의 후예다. 조선조에 정승과 판서 10명 이상을 배출한 최고 명문가다. 이 집안의 땅을 밟지 않고는 한양을 다닐 수 없었을 정도로 일대 부호였던 것도 사실이다.

이철영·회영 등 우당 6형제는 막대한 재산을 모두 처분해 신흥강습소(무관학교 전신) 등 독립운동에 모두 바쳤다. 강습소 운영도 어려운 판에 식구들이 거친 만주 땅에서 굶기를 밥 먹듯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방 후 우당가 후손들이 돌아온 고국은 독립운동가의 후손엔 관심이 없었다. 생활전선에 내몰린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서울에 남은 이는 광복회장도, 국회의원도 됐지만 부산으로 내려온 이씨 가족들은 그대로 잊혀졌다.

이씨는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마저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0대 중반에 금세공 기술을 배워 살았고, 이후 경비원 일을 오래 했다. 나이가 들어 경비원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처자식이 없는 그는 피붙이 동생을 찾아 금호마을에 흘러들었다.

이씨의 사연이 알려진 것은 죽기 전 경복궁 구경이나 해보자며 지난 3월 40여년 만에 서울을 찾으면서였다. 당시 이씨는 경복궁 구경에 이어 힘들게 이회영기념관을 찾았다. 전시된 이철영 선생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한 촌로를 의아하게 여긴 기념관 직원이 말을 걸었고, 어렵사리 자신이 손자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씨는 국민일보와의 대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성품에 신세지거나 도움받기를 싫어한다는 게 주변 전언이다. 직접 대화는 할 수 없었지만 노동으로 다져진 듯 보이는 몸가짐이 고령에도 단단했고, 거친 손마디와 누추한 처소 등이 그의 신산한 세월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받은 혜택은 막내 동생이 딱 한 번 학비를 면제받은 것과 우당이회영기념사업회가 보내준 쌀이 전부다. 함양군과 경남도의 보훈부처는 딱히 이씨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

이종원씨는 평소 “내 힘으로 살 수 있는데 국가의 도움 같은 건 바라지 않는다”며 자신과 집안 내력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도움을 바라지 않는 그는 정작 남을 돕는데는 제일 먼저 나선다. 마을 수도를 고쳐주고 난로를 만들어 이웃에게 나눠주며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얻었다.

곽선미 금호마을 이장은 “말수가 적고 겸손한 분”이라며 “땅이 없어 농사는 짓지 않으시지만 마을 궂은일을 도맡고, 좋은 손재주로 수도나 농기계를 고쳐주는 등 이웃을 늘 잘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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