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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물류센터 대주단, 신탁사와 소송서 ‘완승’
유사 소송 알려진 것만 15건…신탁사 부담 커지나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시내 한 건설 현장. 사진=연합뉴스


중소 규모 건설회사를 대신해 준공 책임을 떠안은 신탁회사가 기한 내에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면 해당 사업에 자금을 댄 대주단 등이 본 손해를 신탁사가 전액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책임준공확약’이 단순히 무형의 담보물이 아닌, 유형의 금전적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 최초의 법원 판단이다.

이번 판결에서 적용된 법리가 유사한 구조의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주요 신탁사들을 상대로 제기된 책임준공 의무 위반 관련 소송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만 15건에 이르기 때문이다.

신탁사들의 배상 의무가 줄줄이 인정되면 가뜩이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신탁사들의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민법상 “손해배상액의 예정” 법리 적용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2민사부(최누림 부장판사)는 23개 새마을금고로 구성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주단이 신한자산신탁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신한자산신탁이 대주단 측에서 청구한 대출 원리금(256억원)과 지연이자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지난 5월 30일 판결했다.

이 대주단은 2022년 5월 경기 평택시에서 추진된 물류센터 신축·분양 사업에 300억원어치의 자금을 댔다. 이 대출 약정에 따른 대출금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건설사와 대주단, 시공사, 시행사, 신탁사 등은 사업 부지를 신탁재산으로, 대주단을 우선수익자로 하는 관리형토지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는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 사유를 제외하고 어떠한 사유로든 공사를 중단하거나 지연하지 아니하고 대출금 최초 인출일로부터 16개월 이내에 준공을 완료”하기로, 신탁사는 “시공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대출금 최초 인출일로부터 22개월이 되는 날까지 이를 대신 이행”하기로 약정했다.

신용도가 낮은 건설사의 준공 책임을 신탁사가 대신 약속하는, 이른바 ‘책임준공확약’이다. 부동산 활황기 PF사업의 대출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심심찮게 활용됐다. 수수료가 꽤 높은 편이어서 한때는 신탁사들의 주요 먹거리로 효자 노릇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새 건설 경기 악화, 공사비 급등에 따른 PF 부실 위기가 신탁업계로 전이되고 있는 모양새다. 시공사와 신탁사 모두 약속한 기한까지 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자 대주단은 신탁사에 미상환 대출 원금 256억원과 지연손해금을 물어내라며 소송을 냈다.

대주단 측은 책임준공이행확약서에 대주의 손해를 ‘대출 원리금 및 연체 이자’로 일관되게 명시한 것이 민법 398조에서 규정하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해당하므로 신탁사가 이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재판부는 이런 주장에 수긍했다. 확약서상 문언을 보면 “신탁사가 대주단에 배상해야 할 손해의 범위를 ‘대출 원리금 및 연체 이자’로 (사전에) 정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반드시 특정 금액으로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위약금 등 명시적인 문구가 없더라도 분쟁 없이 액수를 확정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정해도 된다”고 판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책임준공확약에 따른 신탁사의 의무를 ‘시공사를 대신해 물류센터를 준공’하는 1차 의무와 ‘대출 약정에 따른 손해를 직접 배상’하는 2차 의무로 나눴다.

이어 “공사 완성 여부에 관한 위험이 현실화하면 대주단은 책임준공 의무 이행을 강제해 완성된 물적 담보로부터 대출 원리금을 회수하기보다는 이로 인해 입은 손해를 배상하게 해 한도 내에서 대출 원리금 상당액을 직접 회수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확약서에 신탁사들의 직접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확약서에 손해배상액을 예정하지 않았다면 대주단이 대출 약정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양측 모두가 사전에 신탁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고 재판부는 강조했다.

재판부는 “책임준공 의무 불이행과 손해 간 인과관계 등을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을뿐더러 증명하더라도 상대방이 이를 다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쟁의 사전 방지 차원에서 (손배액을) 미리 정해 둔 것”이라고 짚었다.

“신탁사, 책준형 사업으로 고수익…손배액 과하지 않아”


신탁사 측은 확약서상 문구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보는 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상 손실 보전 금지 규정 등에 반한다는 주장을 폈다. 자본시장법 55조는 금융회사가 투자자가 입을 손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사전에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신탁계약에 따른 대주단의 우선수익권은 금융 투자 상품이 아니므로 자본시장법을 적용되지 않으며 신탁사의 채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은 PF사업으로 인한 수탁 재산 손실의 보전과는 구별되므로 손실 보전 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신탁사 측은 늦게라도 물류센터가 완공됐고 이를 매각해 미상환 대출 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됐으므로 전보배상(이행에 갈음한 배상) 책임을 부담하지는 않는다고도 주장했다. 실제로 신탁사는 약속한 기한으로부터 5개월 뒤 물류센터를 준공해 사용승인을 받았고 감정평가를 통해 403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민법 395조에 따르면 이행 지체 후의 이행이 채권자에게 이익이 없는 때에는 전보배상을 해야 한다”며 “신탁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위반해 채무를 불이행한 이상 예정된 손해배상액을 모두 지급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기한 이후 준공을 완료했더라도 마찬가지”라고 적시했다.

신탁사는 손해배상액 규모가 민법 398조 2항에 규정된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 해당해 감액돼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해당 조항의 해석과 관련 “계약자의 경제적 지위, 계약의 목적, 손해배상액 예정의 경위 및 거래 관행 기타 제반 사정을 고려해 그와 같은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해 공정성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뜻한다는 1991년 대법원 판례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손해배상액이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신한자산신탁이 책임준공형 신탁 사업으로 통상의 경우보다 높은 수준의 보수를 취득한 반면 대주단은 규모가 크지 않은 지역 단위 금고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다.

재판부는 “신탁사의 의무 위반으로 대주단은 물류센터를 선매수인에게 360억원에 팔아 대출 원리금 전액을 상환받을 기회를 잃었다”며 “손해배상 예정액이 대주단이 본 손해를 과도하게 넘어선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돋보기]

수천억 배상 가능성…신탁업계 ‘긴장’


신탁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100% 인정한 이번 판결의 파급 효과는 상당할 전망이다. 유사 소송에서도 같은 판단이 내려지면 신탁사들의 추가 배상이 급격히 커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2024년 2월 이후 현재까지 제기된 책임준공 소송만 15건, 총 소송가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욱 늘어날 거란 관측마저 제기되고 있다. 신한자산신탁 측이 항소 의사를 밝힌 만큼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남아 있다.

신탁 측은 “일부 법률적 다툼의 소지가 있어 소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책임준공 소송의 경우 판례가 충분히 축적됐다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개별 사안별로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다.

한 건설 전문 변호사는 “유사한 구조의 관리형토지신탁 계약에서 동일한 법리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신탁사와 대주단 양측이 계약 체결 단계에서 책임 구조와 손해배상 조항을 설계하는 데 각별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장서우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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